LG, 11개 상장사 사외이사 의장 체제…SK, 2019년 선제 도입이사 충실의무 주주 확대 상법 개정에 보편화 전망실질적 지배구조 변화 이뤄질지 의구심 남아
상법 개정으로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이 기존 '회사'에서 '주주'로 확대되면서 국내 대기업 이사회에도 변화의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과거에는 총수가 이사회 의장을 겸임하며 경영과 주요 의사결정을 직접 주도하는 구조가 일반적이었다면, 최근에는 총수와 이사회 의장을 분리해 견제와 감시 기능을 강화하려는 흐름이 확산되고 있다. 반면 일부 그룹은 여전히 총수 중심의 책임경영 체제를 유지하며 기존 지배구조를 이어가고 있다. 이에 <IB토마토>는 상법 개정 이후 달라지고 있는 총수와 이사회 간 권한 구조, 책임 범위, 그리고 새롭게 요구되는 이사회의 역할을 짚어보고자 한다.(편집자주)
[IB토마토 김규리 기자] 국내 주요 그룹들이 최근 잇따라 총수와 이사회 의장을 분리하는 방향으로 지배구조를 재편하고 있다. 상법 개정으로 이사회 책임이 강화되는 가운데 사외이사 중심 체제를 확대하며 이사회 독립성을 강조하는 모습이다. 다만 총수가 의장직에서는 물러나더라도 지배력 자체는 유지되는 만큼, 재계 안팎에서는 실질적 변화보다는 절차적 정당성을 강화하려는 움직임이라는 해석도 함께 나온다.
(사진=LG)
사외이사 의장 체제 전면화…LG·SK 선도
13일 재계에 따르면 LG그룹은 올해 3월 지주사 ㈜LG를 포함한 상장 계열사 11곳의 이사회 의장 전원을 사외이사로 교체하는 작업을 마무리했다. 구광모 회장은 2018년 대표이사 회장 취임 이후 약 8년간 맡아온 LG 이사회 의장직에서 물러난 후 신임 의장에는 박종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선임됐다. 구 회장은 대표직은 유지하며 책임 경영에 집중하되, 이사회 운영 권한은 독립적인 사외이사에게 넘겨 견제와 감시 기능을 강화하겠다는 취지로 해석된다.
글로벌 투자자와 의결권 자문사들은 실제로 사외이사 의장 체제는 대표이사가 이사회 의장을 겸임할 때 발생할 수 있는 이해상충을 방지하고, 이사회의 독립성과 견제 기능을 높일 수 있는 지배구조로 평가한다. 국내에서는 대표와 이사회 의장을 분리하지 않아 이사회의 견제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한다는 지적을 받기도 했다.
LG그룹 측은 <IB토마토>에 "주주 가치 제고를 위해 이사회 독립성이 강조되는 가운데, 지주사 LG를 포함해 그룹 전반에 이 같은 투명 경영 체계를 확대 도입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SK(003600)그룹은 10대 그룹 중 이사회 독립에 가장 빠른 행보를 보인 곳이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2019년 2월 지주사 SK㈜ 이사회 의장직을 내려놓은 이후 현재까지 사외이사 의장 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회사는 같은 해 정관을 변경해 대표이사와 이사회 의장을 분리하며 독립성을 제고했다. 2020년부터는 이사회 결의 안건에서 사외이사가 종종 반대표를 던지는 사례도 나타나는 등 실질적 견제 기능이 작동하고 있다는 평가다.
올해 기준 SK그룹 상장 계열사 20곳 중 사외이사가 이사회 의장을 맡고 있는 기업은 15곳으로 75%에 달한다. 대표가 이사회 의장을 겸임하고 있는 SK 상장사는
SK리츠(395400)를 포함해
인크로스(216050),
드림어스컴퍼니(060570) 등에 불과하다. 국내 상장사 평균 86%가 대표이사 의장 겸임 체제임을 감안하면 현격한 차이를 보이고 있는 셈이다.
이사회 구성 변화…독립성 강화의 명과 암
강화된 상법 개정으로 이 같은 흐름이 더욱 보편화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7월 국회를 통과한 개정 상법은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을 기존 회사에서 회사 및 주주로 확대했다. 이사가 직무를 수행함에 있어 총주주의 이익을 보호하고 전체 주주의 이익을 공평하게 대우해야 한다는 의무가 명문화된 것이다. 이사회 책임이 법적으로 강화되면서 총수와 이사회 간 견제 구조를 재편하려는 움직임이 가속화되고 있다는 해석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다만 총수의 의장직 분리가 실질적 지배구조 변화로 이어질지 의견이 엇갈린다. 총수가 의장직을 내려놓더라도 지주사 지분과 인사권을 통한 실질 지배력은 그대로 유지되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LG그룹의 경우 구 회장이 LG 지분을 직간접적으로 보유하며 그룹 전략 방향을 결정하는 권한은 여전히 유효하다. SK그룹 역시 최 회장이 SK 대표로서 등기임원직을 유지하고 있어 이사회 내 영향력을 완전히 배제하기는 어렵다.
문성 법무법인 율촌 변호사는 <IB토마토>에 "총수의 이사회 의장직 분리는 일부 실질적 견제 기능 강화 효과도 있지만, 최근에는 확대된 충실의무와 주주대표소송 리스크에 대비해 절차적 정당성과 방어 가능성을 높이려는 목적도 상당히 클 것"이라며 "의장 분리 자체만으로도 일부 기업지배구조 개선 효과도 있지만, 실제로는 사외이사의 독립성·전문성·주주와의 소통 수준까지 함께 작동할 때 시장의 긍정적 평가가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김규리 기자 kkr@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