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급등한 원·달러 환율의 원인으로 개인투자자의 해외주식 투자를 지목하면서, 서학개미를 둘러싼 논쟁이 본격화됐다. 이후 금융당국은 해외투자 리스크를 경고하며 관련 규제를 강화하는 움직임에 나섰다. 한때 금융투자업계의 핵심 성장 동력이었던 해외주식 사업은 정부의 눈초리를 받으며 위축되고 있다. <IB토마토>는 개인투자자의 선택이 어떻게 정책 리스크로 전환됐는지를 짚고, 이 같은 변화가 국내 주식시장에 미칠 영향을 전망한다.(편집자주)
[IB토마토 최윤석 기자] 외화 유출 주요 원인으로 해외주식 기반 상장지수펀드(ETF)가 지목되면서 금융당국의 규제 기조가 강화되고 있다. 해외자산 ETF에 대한 마케팅 제한이 본격화되자 자산운용사 간 희비도 엇갈리는 모습이다. 당국은 규제와 함께 국내 자산 기반 고위험 상품 허용이라는 ‘당근책’도 검토하고 있어, 운용사들의 전략 전환 여부가 주목된다.
외화 유출 통로로 찍힌 해외주식 ETF
23일 한국은행 국제수지통계 자본계정에 따르면 지난해 해외주식 ETF를 통한 투자 규모는 401억5000만달러에 달했다. 이는 직전 연도인 2024년 기록한 235억9500만달러 대비 두 배에 가까운 수준이다.
한국은행 자본계정 통계에서 해외주식 ETF는 기타금융기관 항목으로 분류된다. 해외주식 ETF 투자 규모는 저금리 시기였던 2021년 278억9870만달러를 기록한 이후 2022~2023년 감소세를 보였지만, 2024년부터 다시 증가세로 전환돼 2025년에는 사상 최고 수준을 나타내고 있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시진=연합뉴스)
실제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지난 13일 기준 해외 ETF 순자산총액은 사상 처음으로 100조원을 돌파해 100조8230억원을 기록했다. 이는 2024년 연간 해외 ETF 순자산 규모(54조7730억원)의 두 배에 육박하는 수치다.
이 같은 급증세에 자산운용사들은 앞다퉈 해외주식 섹터 ETF를 출시했고, 증권사 역시 관련 마케팅에 적극 나섰다. 그러나 지난해 말부터 금융당국이 해외투자 관리 강화에 나서면서 분위기는 급변했다.
올해 들어 국내 자산운용사와 증권사들은 해외주식 ETF 관련 마케팅을 사실상 전면 중단한 상태다. 특히 지난해 12월 금융감독원이 해외투자 실태 점검에 착수한 이후 현금성 이벤트와 개별 고객 대상 마케팅 메시지 발송은 모두 금지됐다.
해외주식 ETF 규제가 강화되면서 자산운용사 간 희비도 뚜렷이 갈린다. 관건은 해외자산 비중이다.
운용자산(AUM) 점유율 기준 1위인 삼성자산운용은 이번 금융당국의 제재 조치에도 여유가 있다. 지난 21일 기준 국내 자산 비중은 73.38%다. 국내 자산이 압도적으로 높은 편으로 삼성자산운용의 혼합형을 제외한 해외자산 상품 비중은 24.63%에 불과하다.
국내 자산 비중이 높은 삼성자산운용은 최근 국내 주식시장 활황 수혜를 고스란히 받았다. 삼성자산운용 ETF의 AUM은 지난 2024년 64조574억원에 불과했지만, 불과 1년여 사이 AUM 규모는 125조9865억원까지 증가했다.
반면 해외자산 비중이 높은 운용사들은 전략 수정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미래에셋자산운용의 국내 자산 비중은 48.61%로 절반에 못 미치는 반면 해외자산 비중은 49.58%에 달한다. 과거 삼성자산운용과 AUM 점유율 격차를 2~3%까지 좁혔지만, 올해 국내 증시 랠리의 수혜를 상대적으로 덜 받은 데다 해외 ETF 상품 개발과 마케팅까지 막히며 격차가 다시 벌어지고 있다.
(사진=삼성자산운용, 미래에셋자산운용, 한국투자신탁운용)
앞서 미래에셋자산운용은 2024년까지 AUM 점유율에서 삼성자산운용과 불과 2~3% 격차까지 따라잡았은 적도 있다. 하지만 2025년 국내 주식 시장의 성장의 수혜를 상대적으로 덜 받은 반면, 해외자산 기반 ETF 상품 개발과 마케팅도 막히면서 시장 확대는 삼성자산운용에 뒤질 수 밖에 없었다.
해외주식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은 한국투자신탁운용도 고심이 깊다. 지난 2024년 한국투자신탁운용의 약진을 이끈 것은 해외주식 그 중에서도 엔비디아와 같은 미국 반도체 기업이 주요 포트폴리오로 있는 'ACE 미국빅테크TOP7 Plus' 와 같은 히트상품 덕분이었다. 실제 한국투자신탁운용의 해외자산 비중은 63.16%에 달한다. 반면 한국투자신탁운용의 국내자산 비중은 35.34%로 불과하다.
국내 개인투자자들이 해외주식 기반 ETF 투자에 나서는 이유는 고수익을 노릴 수 있는 상품군 덕분이다. 실제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지난해 개인투자자가 가장 많이 순매수한 종목은 Direxion Daily Semiconductor Bull 3X Shares(SOXL)다. 해당상품은 필라델피아 반도체 지수(SOX)의 일일 수익률을 3배로 추종하는 레버리지 상품이다. 이외에도 미국 전기차 기업 테슬라의 주가 수익률을 추종하는 3배 레버리지 상품인 Direxion Daily TSLA Bull 2X Shares(TSLL)도 3위를 기록했다.
이 같은 고위험 상품 선호는 그간 금융당국의 관리 대상이었다. 고위험 레버리지 상품에서 발생한 손실이 외화 유출로 직결된다는 판단에서다. 교육 의무 강화와 위험성 고지에도 불구하고 개인투자자의 선호는 쉽게 바뀌지 않았다.
결국 최근 금융당국은 고위험 투자 자제보다는 국내 금융시장에서의 고위험 투자를 어느정도 허용해주는 것으로 방향을 선회했다. 고위험 선호를 바꿀 수 없다면, 고위험 선호 자금을 국내로 돌리자는 판단이다.
(사진=금융위원회)
금융위원회는 국내 레버리지 ETF 규제 손질에 착수했다. 금융위원회는 자본시장법 하위 규정인 금융투자업규정과 한국거래소 유가증권시장규정 등을 점검할 계획이다. 현재 거론되는 방안은
삼성전자(005930)·
SK하이닉스(000660) 등 개별 종목 수익률을 2배 이상 추종하는 ETF와 코스피 등 주요 지수를 3배로 추종하는 상품 허용이다 .
현행 제도상 국내 ETF는 기초지수를 최소 10개 이상 종목으로 구성해야 한다. 한편 단일 종목 비중은 30% 이내로 제한된다. 이에 따라 개별 종목을 기초자산으로 한 레버리지 ETF는 구조적으로 출시가 불가능하고 지수 레버리지 역시 최대 2배까지로 제한돼 있다.
만일 금융당국이 해당 규제안 완화를 이룬다면 삼성전자 단일 추종 상품이나 지수 3배 추종 상품이 시장에 선보일 수 있다. 물론 우려하는 목소리도 크다. 장기적으로 해외 주식시장보다 높은 변동성을 보인 국내 주식시장에서 이를 허용할 경우 심각한 시장왜곡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자산운용업계는 당국의 최종 판단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해외자산 ETF 성장에 제동이 걸린 상황에서 국내 자산 기반 ETF 규제 완화가 새로운 돌파구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자산운용업계 관계자는 <IB토마토>에 “현재로서는 당국의 규제안을 면밀하게 지켜보고 있다”라며 “결과적으로 해외자산 ETF 운영이 현재로서는 한계에 달했지만 국내자산의 ETF 규제 완화가 새로운 기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최윤석 기자 cys55@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