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력슈퍼사이클)⑤수요는 장기전…중국 추격에 투자 '가속'
전력 3사, 초고압 중심 대규모 CAPA 확장
중국, 가격·납기 앞세워 글로벌 공세 강화
공개 2025-12-22 06:00:00
이 기사는 2025년 12월 18일 14:16분 IB토마토 유료사이트에 노출된 기사입니다.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의 확산은 이제 단순한 IT 산업 성장의 차원을 넘어 글로벌 전력 인프라 수요 구조까지 뒤흔들고 있다. 초대형 연산을 기반으로 하는 AI 데이터센터는 기존 산업시설과 비교할 수 없는 수준의 전력 공급을 요구하며, 송배전망과 변압기 등 중전기 설비 수요를 구조적으로 끌어올리고 있다. 업계에서는 이번 전력 투자 사이클을 일시적 호황이 아닌 10년 이상 이어질 구조적 슈퍼사이클로 전망한다. 이에 <IB토마토>는 AI가 촉발한 전력 수요 급증이 중전기 산업의 수주 구조와 생산 전략, 재무 체질을 어떻게 바꾸고 있는지 살펴보고, 전력 3사가 선점한 성장 기회를 심층 분석하고자 한다.(편집자주)
 
[IB토마토 권영지 기자]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 확산이 촉발한 전력 수요 증가는 일시적 현상이 아니라, 글로벌 전력 인프라 지형을 재편하는 구조적 변화로 이어지고 있다. 특히 중국 전력기기 업체들이 가격과 속도를 앞세워 추격에 나선 가운데, 국내 전력기기 3사는 지금의 설비 투자 경쟁이 단순한 수주 대응을 넘어 글로벌 전력 시장의 주도권을 가르는 분기점이 될 수 있다는 판단 아래 ‘CAPA 선점전’에 돌입한 모습이다.
 
(사진=효성중공업, HD현대일렉트릭, LS일렉트릭)
 
2030년 전력수요 ‘두 배’ 늘어난다
 
18일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전 세계 데이터센터 전력 소비가 2030년 945테라와트시(TWh)에 이를 전망이다. 이는 지난해 415TWh의 두 배를 웃도는 규모다.  이러한 가운데 국내 전력기기 3사인 효성중공업(298040), LS(006260)일렉트릭, HD현대일렉트릭(267260)은 공격적인 설비투자(CAPEX)에 나서고 있다.
 
효성중공업은 초고압 변압기 중심의 CAPA 확대에 집중하고 있다. 회사는 미국 테네시주 멤피스 초고압 변압기 공장에 약 1억 5700만달러를 투자해 생산설비를 증설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2028년까지 초고압 변압기 생산역량을 50% 이상 늘릴 계획이다. 멤피스 공장은 미국 내에서 유일하게 765킬로볼트(kV)급 초고압 변압기를 생산할 수 있는 기지로, 북미 송전망 교체 수요와 AI 데이터센터 전력 인프라 수요를 동시에 흡수할 핵심 거점으로 평가된다.
 
LS일렉트릭은 배전반 중심 구조에서 벗어나 초고압 변압기 시장 진입을 본격화하고 있다. 회사는 부산 공장 증설을 통해 초고압 변압기 CAPA를 단계적으로 확대하고 있다. 이와 함께 회사는.최근 미국 민간 전력 유틸리티로부터 4500억원이 넘는 초고압 변압기 수주를 확보하며 북미 시장 레퍼런스를 빠르게 쌓고 있다.
 
HD현대일렉트릭은 초고압 변압기 강자라는 기존 포지션을 유지하는 동시에 중저압 배전반 시장으로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AI 데이터센터 내부 전력 분배 수요가 급증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한 전략이다. 회사는 지난해 미국 UL 인증을 확보한 기중차단기(ACB) 등 중저압 차단기 제품군을 앞세워 북미 데이터센터 시장 진입을 가속화하고 있다. 송전 구간을 담당하는 초고압 변압기에서 데이터센터 내부 배전까지 아우르는 밸류체인 구축을 통해 수주 범위를 넓히겠다는 구상이다.
 
시장 환경도 우호적이다. 시장조사업체 테크사이리서치는 북미 송배전 장비 시장 규모가 지난해 870억달러에서 2030년 1215억달러로 연평균 5.7% 성장할 것으로 전망했다. AI 데이터센터 확산과 노후 송전망 교체가 동시에 진행되면서 중전기 수요가 구조적으로 확대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전력 시장 몸집 키우는 중국…글로벌 ‘각축전’ 서막
 
다만 글로벌 경쟁은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다. AI 급성장을 배경으로 중국 배터리·전력기기 업체들이 빠르게 몸집을 키우고 있다. CATL과 선그로우 등 중국 기업들은 가격 경쟁력과 빠른 납기를 앞세워 미국과 유럽 시장에서도 존재감을 확대하고 있다. 실제로 미국이 중국산 ESS용 배터리에 30%가 넘는 고율 관세를 부과하고 있음에도, 올해 미국이 수입한 리튬이온 배터리 중 약 60%가 중국산인 것으로 나타났다.
 
중국 전력기기 업체들의 경쟁력은 단순히 가격에 국한되지 않는다. 중국 기업들은 대규모 내수 시장을 기반으로 생산 규모를 빠르게 키우며, 변압기·전력변환장치·배터리·ESS를 묶은 ‘패키지 공급’ 역량을 강화하고 있다. 특히 AI 데이터센터와 전기차, 재생에너지 확산이 동시에 진행되면서 중국 내에서는 110킬로볼트(kV) 이상 고전압 변압기와 건식변압기, 위상 이동 변압기 등 고부가 제품 수요가 빠르게 늘고 있다.
 
납기 경쟁력 역시 중국 업체들의 강점으로 꼽힌다. 중국 기업들은 설비 표준화와 정부 주도의 인프라 투자 경험을 바탕으로 비교적 짧은 리드타임을 제시할 수 있는 구조를 갖추고 있다. 실제로 일부 글로벌 프로젝트에서는 중국 업체들이 서방 경쟁사 대비 수개월 이상 빠른 납기를 제안하며 입찰 경쟁력을 확보한 사례도 나타나고 있다. 가격 경쟁력에 납기 우위까지 더해지면서, AI 데이터센터와 연계된 중저압 전력기기 시장에서는 중국산 비중이 빠르게 확대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여기에 중국 정부의 정책적 지원도 강점으로 꼽힌다. 중국은 전력망 고도화와 데이터센터 인프라 구축을 전략 산업으로 분류하고, 전력기기·에너지 저장장치 분야에 대한 금융 지원과 연구개발(R&D) 투자를 병행하고 있다. 이러한 환경은 중국 전력기기 업체들이 기술 고도화와 해외 진출을 동시에 추진할 수 있는 토대가 되고 있다.
 
하지만 중국 기업의 확장에는 구조적 한계도 존재한다. 북미 전력 인프라는 단순 가격 경쟁보다 안전 규격, 인증, 장기 신뢰성이 중요한 시장이다. 초고압 변압기와 핵심 송전 설비는 한 번 설치되면 20~30년 이상 운영되는 장기 자산으로, 현지 납품 실적과 운영 레퍼런스가 사실상 진입 장벽으로 작용한다. 여기에 관세 인상, 세액공제 제한, 지정학적 리스크 등 정책 변수도 중국 기업에는 부담 요인이다.
 
업계 안팎에서는 AI발 전력 수요를 둘러싼 경쟁력의 핵심은 결국 ‘속도’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누가 먼저 CAPA를 확보해 글로벌 공급망에 진입하느냐에 따라 이후 교체·증설 수요까지 선점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전력 인프라는 한 번 구축되면 쉽게 바뀌지 않는 특성이 있기 때문이다.
 
업계 한 전문연구원은 <IB토마토>와의 통화에서 “AI 이후에도 전력 수요는 산업과 에너지 전환과 함께 지속해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며 “전력 수요가 커지는 현시점 전력기기 기업들의 CAPA 투자는 향후 글로벌 시장 영향력 확대의 기반이 될 전망”이라고 진단했다.
 
권영지 기자 0zz@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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