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듀2025)AI·상법·관세 삼중 압박…재계, '전면 재설계'의 해
AI 투자·조직 재편 가속…삼성·SK 기술 패권 경쟁
트럼프 관세 변수…현대차, 공급망·현지화 시험대
상법 개정·중대재해 부담 확대
공개 2025-12-22 06:00:00
이 기사는 2025년 12월 18일 15:56분 IB토마토 유료사이트에 노출된 기사입니다.
[IB토마토 김규리 기자] 올해 국내 재계는 그 어느 때보다 복합적인 압력 속에서 경영 전략 전반의 재설계를 요구받았다. 단기 성과보다 기업의 구조적 체질과 위기 대응 역량이 핵심 경쟁력으로 부상한 한 해였다. 인공지능(AI) 기술 패권 경쟁이 전 산업으로 확산되며 대규모 투자와 조직 개편이 일상화됐고 상법 개정 논의가 본격화되면서 지배구조와 주주환원 정책을 둘러싼 부담도 동시에 커졌다. 여기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 이후 보호무역 기조가 재부상하면서 수출 중심 산업 전반에 관세와 공급망 리스크가 현실적인 변수로 떠올랐다. 재계는 성장과 방어라는 상충된 과제를 동시에 떠안은 채 미래 기술 확보와 제도 변화 대응, 글로벌 리스크 관리라는 세 가지 숙제를 한꺼번에 풀어야 하는 복잡한 국면에 놓였다.
 

(사진=삼성전자)
 
삼성, 반도체 회복과 컨트롤타워 재편…뉴삼성 시동
 
올해 반도체 시장이 회복되면서 삼성전자(005930)는 오랫동안 짓눌렀던 사업 불확실성 국면에서 벗어나 본격적인 회복 궤도에 진입하면서 최대 실적을 썼다. 고대역폭메모리(HBM)를 중심으로 한 AI 반도체 경쟁력이 실적 반등으로 이어졌다. 올 4분기 역대급 실적을 낼 것으로 예상되면서 연간 영업이익 추정치는 38조 8280억원으로 집계된다. 2022년 이후 3년 만에 40조 클럽에 재진입할 것이라는 긍정적 전망이 이어진다.
 
또한 이재용 회장이 지난 10년간 짊어졌던 사법 리스크 부담도 사실상 해소 국면에 접어들면서 조직 측면에서도 변화가 뚜렷하게 나타났다. 지난 2017년 미래전략실이 해체된 이후 사업지원TF가 사실상 컨트롤타워의 공백을 메꿨으나, 올해 사업지원실이 출범하며 조직 재편 신호를 명확히 했다. 정현호 부회장이 용퇴하면서 박학규 사장이 사업지원실을 총괄할 예정이다. 글로벌 불확실성이 상존하는 환경에서 실적과 전략을 동시에 관리하는 내부 엔진을 강화하겠다는 의지가 반영된 개편인 셈이다.
 
SK, 4차 퀀텀점프 가속…AI 투자와 리밸런싱 마무리
  

(사진=SK하이닉스)
 
SK그룹은 올해 AI 중심 대전환의 실행 원년으로 삼았다. SK(003600)는 ‘제4차 퀀텀 점프’를 전략을 공개하면서 AI 데이터센터를 비롯해 AI 에이전트, 로보틱스, 제조 AI, 에너지, AI 기반 바이오 등 반도체·에너지·통신 전반에 걸친 대규모 투자 집행이 본격화하겠다는 포부를 내비쳤다. 동시에 비주력 자산 정리와 계열사 정리 등 강도높은 리밸런싱이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다.
 
최태원 회장은 “AI에 어떻게 적응하느냐가 기업의 지속가능한 생존을 좌우한다”며 “AI와 사업모델의 연관성이 큰 정보기술(IT) 분야는 물론 전기·에너지, 바이오 등 다양한 영역에서 AI 활용도를 높여 외연을 확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게다가 최 회장의 이혼 관련 사법 리스크가 일단락되며 지배구조 불확실성이 해소된 점도 투자 속도를 높인 배경으로 꼽힌다. 특히 SK하이닉스(000660)는 AI 메모리 수요 확대의 최대 수혜자로 부상했다. HBM 공급 확대와 수익성 개선이 동시에 나타나며 실적과 주가 모두 고공행진을 이어갔다. 그룹 전반의 현금 창출력이 강화되면서 AI 인프라 투자와 신사업 확장에 대한 시장의 신뢰도도 회복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트럼프 관세 쇼크 점화…현대차부터 LG엔솔까지 비상 체제
 

정의선 현대차 회장(왼쪽 두 번째)이 현대차그룹 대미 투자 계획 발표.(출처=연합뉴스, 백악관공동기자단)
 
트럼프 대통령 당선 이후 관세 리스크는 올해 내내 재계를 짓눌렀다. 반도체·철강·자동차 등 전통 수출 산업은 물론 식품과 화장품까지 관세 부담 가능성을 전제로 한 시나리오 점검에 들어갔다. 현대차(005380)그룹은 미국 현지 생산 확대와 공급망 재편에 속도를 냈다. 특히 지난 3월 정의선 그룹 회장이 직접 트럼프 대통령과 만나 오는 2028년까지 210억달러 대미 투자를 약속하는 등 사태 해결에 적극 나섰다.
 
반면, LG에너지솔루션(373220)은 북미 사업 과정에서 현지 비자 문제로 초유의 직원 구금 사태까지 겪으며 글로벌 인력 운영 리스크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 단순한 비용 부담을 넘어 통상 정책 인력 이동 규제까지 경영 변수로 부상한 한 해였다. 기업들은 생산 거점 다변화와 원가 절감 현지화 전략을 동시에 추진하며 위기 대응에 총력을 기울였다.
 
상법 개정 압박과 자사주 소각 논쟁…지주사 경영 시험대
 
여야가 합의한 상법개정안이 지난 7월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됐다. (사진=연합뉴스)
 
상법 개정 논의는 2025년 재계 전반의 불확실성을 키운 또 다른 축이었다. 이사 충실의무 확대와 주주 권한 강화 기조 속에서 지주사를 중심으로 자사주 소각 압박이 가시화됐다. 특히 지주사 체제를 운영하는 기업들은 해당 요구에 고심이 깊어졌다. 최근 여당에서는 자사주 소각을 의무화하는 방안을 담은 '3차 상법 개정안'을 연내 처리하겠다고 못을 박은 상태다.
 
대표적으로 롯데지주와 SK가 거론된다. 롯데지주(004990)는 27.51%, SK(003600)는 24.8% 수준의 자사주를 보유하고 있다. 자사주를 소각할 경우 주주친화 정책이 확대될 수 있다는 기대도 나오지만 재계 속사정은 사뭇 다르다. 자사주 소각이 경영 방어 수단이 사라질 수 있다는 점에서 민감한 이슈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자사주를 대규모로 소각하거나 처분하면 유통 주식 수가 줄어들어 적대 세력이 적은 지분으로도 경영권을 위협하기가 훨씬 용이해질 수 있다.
 
이외에도 주요 그룹 지주사는 주주환원 확대 요구와 재무 전략 간 균형을 두고 고심이 깊어졌다. 재계는 경영 자율성이 위축될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하며 투자 의사결정과 장기 전략 수립에 부담이 될 수 있다고 반박했다. 반면 일각에서는 지배구조 투명성과 기업가치 제고를 위한 불가피한 변화라는 시각도 있다.
 
중대재해에 안전경영 도마 위…포스코·SPC 등 ESG 성적표 직격탄
 

(사진=포스코)
 
올해는 ESG 가운데서도 안전이 핵심 의제로 부상한 한 해였다. 지난 10월 이재명 대통령이 직접 안전 문제를 질타하면서 산업 현장의 책임 경영이 전면에 올랐다. 특히나 포스코이앤씨와 SPC 등에서 발생한 중대재해는 단순한 개별 사고를 넘어 그룹 차원의 관리 체계와 경영진 책임 문제로 확산됐다. 투자 성과와 실적 못지않게 안전 관리 역량이 기업 평가의 핵심 요소로 자리 잡았다는 얘기가 나온다.
 
포스코이앤씨는 광양제철소 건설 현장에서 사고로 올해만 5명이 사망하는 참사가 발생했다. 사고 원인으로 안전 수칙 미준수와 관리 감독 소홀이 지목됐다. 이밖에도 포스코 포항제철소에서 가스 중독 사고가 발생해 하청 노동자 2명이 중태에 빠졌고, 이 중 1명은 결국 숨졌다.
 
SPC그은 계열사 공장에서 노동자가 작업 중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하며 또다시 안전 문제로 도마에 올랐다. 2022년 파리바게뜨 공장 사고 이후 재발이라는 점에서 비판 여론이 거셌다. 허영인 회장은 사과문을 발표하고 안전 관리 체계 전면 재점검을 약속했지만 실효성에 대한 의구심은 여전하다.
 
정부는 중대재해처벌법 적용을 강화하고 처벌 수위를 높이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재계에서도 더 이상 안전을 비용으로 여겨서는 안 된다는 자성의 목소리가 나온다. 내년부터는 주요 그룹들이 안전 관리 조직을 확대하고 예방 시스템 구축에 대규모 투자를 집행할 것으로 예상된다.
 
김규리 기자 kkr@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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