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 생존기)①대형 M&A서 사라졌다…미드캡 시대 개막
조단위 대형 딜 급감…엑시트 쉬운 미드캡 대체
IPO, 2차 매각 등 선택지 다양…회수 설계 쉬워
공개 2025-12-09 06:00:00
이 기사는 2025년 12월 04일 18:36분 IB토마토 유료사이트에 노출된 기사입니다.
올해 국내 사모펀드(PE) 시장은 대형 딜 가뭄을 겪었다. 인수·합병(M&A) 시장에선 대기업들의 사업 재편에 따른 비핵심 사업부 매각과 미드캡에 딜이 집중되어 있고, 1조원대 이상 딜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투자금 회수(엑시트) 불확실성이 커지자 리스크 대비 수익성이 더 확실한 곳으로 전략을 수정했다는 평가다. <IB토마토>는 올 한 해 나타난 PE 업계 지형 변화와 그 배경을 종합적으로 짚어보고자 한다.(편집자주)
 
[IB토마토 홍준표 기자] 올해 국내 PE가 대형 인수·합병(M&A) 시장에서 사실상 모습을 감췄다. 일부 대기업의 비핵심 사업부 매각 건을 제외하면 대부분 1조원 미만의 미드캡에 집중되면서 투자 지형이 바뀌었다. 관련 업계에선 대형 M&A 성사 이후 엑시트 가능성이 약화된 점이 사모펀드들의 투자 의사 결정에 영향을 미쳤다는 진단이 나온다.
 
 
2조원대 PEF 딜, 한앤코의 SK스페셜티 인수 유일
 
올해 성사된 국내 딜 가운데 가장 큰 규모는 한앤컴퍼니의 SK스페셜티 인수다. 한앤컴퍼니는 4호 블라인드 펀드를 통해 올 3월 SK스페셜티 지분 85%를 SK(003600)㈜로부터 약 2조6000억원에 매입하며 거래를 마무리했다. 이 외 2조원대 딜은 더 이상 나오지 않았다.
 
1조원 이상 딜도 두 건에 그쳤다. KKR의 SK에코플랜트 환경 자회사(리뉴원·리뉴어스) 인수 규모는 약 1조7800억원이었으며, 글랜우드프라이빗에쿼티의 LG화학(051910) 수처리 사업부는 1조4000억원 수준이었다. 세 건 모두 대기업의 비핵심 사업부를 떼내는 ‘카브아웃(Carve-out)’ 구조다.
 
이는 최근 3년간의 흐름과 확연히 대비된다. 지난해만 해도 한앤컴퍼니의 SK스페셜티 인수(약 2조7000억원), IMM PE·IMM인베스트먼트 컨소시엄의 에코비트 인수(약 2조700억원) 등 2조원대 거래가 연이어 성사됐다. 2023년에는 EQT파트너스의 SK쉴더스(약 3조원), MBK·UCK 컨소시엄의 오스템임플란트(약 2조5000억원) 인수 등 굵직한 바이아웃이 잇따랐다.
 
대형딜이 실종된 사이 시장은 사실상 미드캡 딜이 대체하고 있다. 대표적인 거래로는 ▲KKR의 삼화 인수(약 8000억원) ▲블랙스톤의 준오헤어 인수(약 8000억원) ▲스틱인베스트먼트의 크린토피아 인수(약 6000억원) ▲EQT의 리멤버 운영사 드라마앤컴퍼니 인수(약 5000억원) ▲VIG파트너스의 LG화학 에스테틱 사업부 인수(약 5000억원대) 등이 꼽힌다.
 
관련 업계선 이 같은 변화의 배경으로 ‘대형 딜의 엑시트 난항’을 지목한다. 실제로 MBK파트너스의 홈플러스 엑시트는 수년째 답보 상태를 이어가다 파산신청에 따른 여론의 뭇매를 맞고 있고, 롯데카드 매각 시도도 연이어 무산된 상황이다. JKL파트너스 역시 롯데손해보험(000400) 매각을 성공시키지 못한 채 오랜 시간 보유하고 있다. 카카오모빌리티의 경우, IPO가 기약 없이 미뤄진 가운데 VIG파트너스에 경영권 매각도 좌절됐다. 
 
한 PE 업계 관계자는 “대형 딜은 매수자 풀이 제한적이라 매각이 장기화되기 쉽고, 금리나 경기 변수에 따라 기업가치가 크게 흔들린다”며 “지금 같은 환경에서는 딜을 성사시켜도 회수 가능성을 담보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시장 분석 기관들도 비슷한 시각을 내놓고 있다.
 
딜로이트는 최근 보고서에서 "대형 매물이 줄어들면서 평균 딜 사이즈가 감소하고 있다"라며 "펀드 간 클럽 딜 등 공동투자 구조가 늘고 있다"고라 분석했다.
 
‘대형 딜’ 성사 쉽지 않아…엑시트 쉬운 미드캡 주목
 
국내 사모펀드가 미드캡·스몰캡으로 이동한 이유는 다양하지만, 우선 성장 여력이 큰 중소·중견기업은 구조 개선 여지가 넓어 내부수익률(IRR) 달성이 쉽다는 장점을 꼽는다. 리스크 대비 수익성이 나쁘지 않다는 것이다. 실제로 관련 업계서 올해 PEF 주도 아래 가장 수익성이 좋았던 딜을 꼽는다면 칼립스캐피탈의 서린컴퍼니 매각 건이 먼저 입에 오른다.
 
칼립스캐피탈은 지난 2023년 서린컴퍼니 지분 100%를 2353억원에 인수, 2년 만에 몸값을 3배가량 끌어올리며 약 7000억원에 엑시트하는 성과를 거뒀다. 성과보수가 최근 몇 년간 업계 내에서 역대급이었다는 평가가 공공연하게 돌기도 했다. 거래 규모도 크지 않아 인수금융 조달이 상대적으로 용이했고, 고금리 기조 속에서는 과도한 레버리지를 활용하기 어려운 만큼 미드마켓이 리스크 대비 효율적이라는 평가도 뒤따랐다.
 
회수 전략이 대형 딜에 비해 상대적으로 유연하다는 것도 미드캡 집중 현상의 원인 중 하나로 꼽는다. 글로벌 전략적 투자자(SI)나 국내 상장사 등 매수자 풀이 넓어 IPO나 2차 매각 등 선택지가 다양하기 때문이다.
 
한 PEF 운용사 관계자는 “대형 딜은 실적 개선 폭이 제한적이지만, 미드캡은 밸류업이 상대적으로 용이하다”라며 “회수 전략 측면에서도 매수자 풀이 넓어 상대적으로 유연하게 엑시트를 설계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대기업의 카브아웃 거래는 확대될 가능성이 크지만, 최근 사모펀드 업계에 조성된 분위기를 고려하면 대형 바이아웃 거래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홍준표 기자 junpyo@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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