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 상품의 제조와 판매를 분리하는 ‘제판분리’ 추세에 따라 보험판매전문회사 도입 필요성이 다시 부각되고 있다. 상품 판매를 맡는 법인보험대리점(GA)은 영업 전문성을 높이는 동시에 판매 책임을 강화해 소비자 보호 역할을 확대할 수 있다는 기대가 크다. 최근 금융당국 수장 자리에 소비자 보호를 중시하는 인사들이 잇따라 기용되면서 제도 논의에도 다시금 힘이 실리고 있다. 다만 GA와 원수 보험사 간 이해관계가 엇갈리고 쟁점이 남아 있어 제도 도입은 더디게 진행되는 모습이다. <IB토마토>는 제도 도입의 배경과 필요성부터 효과와 발전 방향, 그리고 주요 쟁점까지 다뤄본다.(편집자주)
[IB토마토 황양택 기자] 보험사와 법인보험대리점(GA) 영업 양상이 보험판매전문회사 도입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상품 판매를 외부 조직에 넘기는 것이다. 보험판매전문회사는 그중에서도 가장 높은 단계로의 전환이다. 이는 GA의 업무 영역을 넓히고 전문성과 독립성을 현재보다 크게 높일 수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사진=연합뉴스)
상품 판매 외주화 추세…GA, 영업 채널 핵심으로
보험판매전문회사 제도는 상품의 제조와 판매를 분리하는 ‘제판분리’ 형태를 더욱 전문화하는 것이 골자다. 원수 보험사가 상품 제조를, GA가 유통과 판매를 담당하는 것이 기본이다. GA가 상품 판매를 단순히 ‘대리’하고 있다면 보험판매전문회사는 ‘중개’ 이상의 역할을 맡는다.
제도가 도입되지 않은 현재는 보험설계사 활용 양상이 크게 세 가지로 나뉜다. 보험사가 설계사를 직접 고용해 전속 채널로 삼는 경우, 다수의 외부 GA와 제휴해 협업하는 경우, 자회사 GA를 따로 설립하고 내부 설계사를 이동시키는 경우 등이다.
내부에 대규모 전속 채널 혹은 대형 자회사 GA가 있지 않다면 외부 GA와의 협업은 필수적이다. 특히 보험사 새 회계 기준인 IFRS17 체계서 더욱 부각되고 있는데, 보험영업 수익의 핵심인 보장성보험 확대 필요성이 커져서다. 보장성보험 판매에는 설계사 대면 영업이 반드시 수반된다.
IFRS17 이후 GA 위상은 매우 높아진 상태다. 한국금융연구원에 의하면 GA 소속 설계사 수는 지난해 말 기준 약 29만명으로 보험사 전속설계사 수인 18만명 대비 1.5배 이상에 달한다. 전체 설계사(보험중개사, 방카슈랑스 포함 기준)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44.3%다.
보험계약 체결 외 업무 영역 확대로 전문성 제고
보험판매전문회사는 활동 가능한 업무 범위가 GA보다 훨씬 넓다. GA는 대리점으로서 금융소비자에게 상품을 판매하고 보험계약 체결을 대리하는 것이 전부다. 보험사 전속 채널의 설계사보다는 다양한 상품을 비교·추천해 판매할 수 있다는 정도다.
반면 보험판매전문회사는 업무적으로 더 많은 권한과 책임이 부여되는데, 과거 추진된 보험업법 개정안에 따르면 크게 ▲고지의무 수령권 부여 ▲전용상품 개발과 판매 ▲보험료 협상권 ▲판매 배상책임 등이 있다.
이 외에도 보험사고 대리 접수, 사고 발생 사실의 확인, 소액 규모의 보험금 지급 대행, 보험계약자를 위한 보험료 협상 등이 개정안에 언급돼 있다. GA가 영위할 수 있는 비즈니스 모델이 그만큼 넓어지는 셈이다. 수익성 측면에서는 수수료 창출 구조가 다변화된다.
향후에는 판매 전문사로서 예금이나 펀드 같은 다른 금융권 상품을 취급하게 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이는 보험판매전문회사를 넘어 종합금융상품판매회사로 도약하는 단계다. 미국과 영국 등 해외 선진국의 경우 이러한 제도(독립금융상품자문업자, IFA)가 잘 갖춰져 있다.
(사진=연합뉴스)
종속적 관계 벗어나 '독립적 금융회사' 목표
보험판매전문회사는 특히 GA의 독립성을 높여준다는 측면에서 의미가 크다. 원수 보험사에 위탁을 받는 종속적인 관계에서 벗어나 수평적 위치에 설 수 있기 때문이다. 단순히 대리점이 아니라 하나의 금융회사로서 지위를 얻는다.
원수 보험사에 대한 수수료 협상력과 자율성을 확보할 수 있다는 점이 GA 입장에서 가장 큰 실익이다. 보험판매에 따른 수수료는 GA 수익에서 제일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 기존의 판매수수료뿐만 아니라 유지·관리수수료를 챙길 수도 있다.
영업 외 측면에서는 금융소비자 보호를 위한 법적인 판매책임, 더 높은 수준의 내부통제 체계, 지배구조 투명성 강화, 자본력 요건과 여력 확대 등이 적용된다.
보험GA협회 관계자는 <IB토마토>에 “GA가 금융회사 수준의 각종 요건을 바로 갖출 수는 없다”라면서 “만약 도입이 된다면 금융회사 위치에 준하는 수준에서 중간 단계를 거치면서 발전해 나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제도 도입은 현재 지지부진한 상태다. 지난 3월 진행된 7차 보험개혁회의에서 미확정된 일부 과제 중 하나로 꼽힌 뒤 연구 용역, 관계기관 협의 단계에 머물러 있다. 하반기 내 입법 초안을 마련하는 것이 GA 업계 목표로 언급된다.
GA 업계 관계자는 <IB토마토>에 “판매수수료 개편 협상이 아직 마무리되지 않았기 때문에 보험판매전문회사 도입 논의도 미뤄진 상태”라면서 “정기국회가 열린 만큼 대관 활동을 통해 국회의원을 만나고, 금융위원회 보고 테이블에 참석하면서 논의를 이어가야 할 것”이라고 했다.
황양택 기자 hyt@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