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사모펀드(PE·Private Equity) 제도는 지난 1997년 IMF 외환위기 당시 외국 자본의 대항마를 육성하려는 목적으로 도입됐다. 하지만 최근 PE 결성 규모의 증가와 신생운용사 참여 등 경쟁 심화로 투자처 발굴이 어려워지면서 운영비 절감과 비용 효율화를 통한 단기적인 수익 창출에만 집중하는 경향이 짙어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성장성과 수익성 제고를 위한 운영 측면의 가치 제고를 PE 투자의 핵심 역량으로 인식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IB토마토>는 사모펀드에 인수된 기업들이 어떤 방식으로 수익성을 끌어올렸고, 그 과정에서 어떤 부작용이 발생했는지를 되짚고 PE와 피투자기업 간의 지속 가능한 동반성장 방안을 모색해보고자 한다.(편집자주)
[IB토마토 박예진 기자] 홈플러스 사태로 인해 사회 전반으로 피해가 확대되면서 사모펀드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커지고 있다. 사모펀드가 외부 차입으로 자금을 조달하는 '레버리지 바이아웃(LBO)' 전략을 활용해 기업을 인수한 이후 피인수기업의 자산 매각과 배당금을 통해 차입금을 상환하는 방식으로 수익성을 챙기면서다. 이에 사모펀드를 운용하는 운영사(GP)의 성과를 공개하고 단기적인 재무성과가 아닌 장기적인 투자에 집중하는 구조로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사진=AI일러스트)
사모펀드 도입 20년…보수적 운영 선호에 기업가치는 뒷전
2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국내에 PE제도가 도입된 이후 약 20여년인 지난 2023년 기준 기관전용 사모펀드(사모집합투자기구)는 1126개에 달했다. 이는 지난 2016년 383개 대비 약 3배 가까이 증가한 수치다.
기관전용사모펀드는 전문성과 위험관리능력을 고려해 자본시장법령에서 정한 투자자만 투자할 수 있도록 투자자가 제한된 사모펀드로, 일반 사모펀드와 차이를 두고 있다. GP가 설립·운용한다.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MBK파트너스 등도 기관전용 사모펀드로 분류된다.
국내에서는 지난 2004년에 법 개정을 통해 경영권 인수형 사모펀드 제도가 도입되면서, 정부 주도 하에 사모펀드 규모는 단기간에 급속하게 성장했다. 사모펀드는 지배구조 문제 때문에 기업가치가 낮아진 기업을 인수해 기업 지배구조를 개선함으로써 기업가치를 올리고 그에 대한 대가로 보수를 받는 것을 사업의 목적으로 한다.
하지만 국내 LP들은 저위험·저수익을 추구하는 보수적인 운영을 선호하면서 기업에 대한 투자기간이 짧아지고 기업가치 제고의 전략적 투자보다는 재무적 투자 역할에 그치는 경우가 많은 상황이다. 이로 인해 투자대상 기업의 위험과 성과를 공유하는 모험자본 성격도 점진적으로 퇴색되고 있다.
삼일PwC 경영연구원이 발표한 'K-PE의 현주소'를 살펴보면, 국내 투자회수(EXIT) 평균 존속기간은 2022년 기준 3.9년으로 나타났다. 지난 2020년(4년), 2021년(3.7년)과 비교하면 회수 기간이 지속적으로 줄었다. 이에 성장자본 공급이라는 본래의 취지에 부합되도록 사모펀드가 투자기간을 장기화할 수 있게 세금 혜택 등 유인책 제공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나온다.
이와 함께 사모펀드 LP와 운용 성과, 투자기업, 회수방법 등에 대한 정보공개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현재 금융감독원에서 정기보고서를 발간하고 있지만 간단한 현황만 공유되는 수준으로 정보 공개가 제한돼 있는 실정이다. 정보공개를 통해 부실한 GP는 시장에서 자연스럽게 경쟁력을 잃고, 불법행위를 검증할 수 있도록 해 장기적이고 건전한 투자를 지속하도록 해야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사진=금융감독원)
단기 재무성과에만 초점…직원과 소비자 피해로 '전가'
특히 인수자가 기업 자산을 담보로 대출을 받아 회사를 인수하는 방식인 레버리지 바이아웃(LBO)에 대한 비판 여론이 높아지고 있다. 인수금융을 갚기 위해 사모펀드가 피인수기업의 자산 매각·배당 확대·구조조정을 통해 차입금을 상환하고 수익을 확보하는 구조가 형성되기 때문이다.
이 같은 구조는 사모펀드가 기업의 장기적인 경쟁력 확보나 고용 유지보다는 단기적인 재무성과에만 집중하게 만든다. 이로 인해 피인수기업은 재무적 부담을 떠안게 되며, 그 피해는 직원과 소비자와 지역 경제로 전가될 수 있다.
실제로 락앤락은 지난 2017년 홍콩계 사모펀드 운용사인 어피너티에쿼티파트너스(어피너티)에 인수된 후 2021년 말 534명에 이르던 임직원수는 지난해 말에는 279명으로 절반 가까이 감소했다. 소속 외 근로자 수는 26명으로 늘었다. 홈플러스 역시 2015년 MBK에 인수된 이후 2015년 12월 홈플러스 3사(홈플러스·홈플러스 스토어즈·홈플러스 홀딩스) 국민연금 가입자 수는 2만5359명에서 홈플러스 통합 이후 1만9280명으로 약 6000명 넘게 줄었다.
인력 감소 등 구조조정을 통해 수익성을 높이는 방식을 활용한 것이다. 이에 무분별한 인력 감축이 아닌 인력 재교육과 재배치 등 생산성 중심의 경영 전략으로 수익성과 지속 가능성을 확보가 절실해지고 있다.
이외에도 구조조정이나 배당 확대 등이 아닌 내부 혁신 기반의 수익 창출에 집중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소비자 접점에서 디지털 전환과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 요소 강화를 통한 브랜드 가치 제고와 글로벌 사업 확장과 신사업 진출 등을 통해 미래 성장 기반에서 수익을 창출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이와 관련, 김대종 세종대 경영학부 교수는 <IB토마토>와 인터뷰에서 "기업 인수 후 배당이나 자산 매각 제한에 관한 규제 혹은 일정 고용유지 의무 같은 제도적 장치가 병행돼야 LBO 방식의 부작용을 줄일 수 있다"라며 "단기 수익 중심이 아닌 장기적 가치 창출로 사모펀드의 운용 방향을 유도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박예진 기자 lucky@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