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금리 기조가 장기화되고, 경기침체로 인한 기업 부실은 은행의 건전성을 흔들고 있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국내 은행들은 하나 같이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과 홍콩H지수 주가연계증권(ELS) 사태로 된서리를 맞았다. 피해 규모가 제 각각이라 영업 성과나 실적에 상관없이 은행권 서열에 균열이 생기는 분위기다. 시중은행은 저마다 기업 대출을 늘리는 한편, 비이자이익 증대와 해외시장 진출을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삼으며 자리 다툼을 벌이고 있다. <IB토마토>는 금융시장의 위기 속에서 고군분투하는 분야별 리딩 뱅크를 가려본다.(편집자주)
[IB토마토 이성은 기자] 국내 은행이 해외시장에 진출하기 시작한 것은 지난 1997년 외환위기 이후다. 한동안 뚜렷한 성과가 없다가 최근 몇년 전부터 은행마다 본격 진출하면서 성과로 이어지고 있다. 실제로 지난해 4대 시중은행의 해외법인 순익 총합은 1년 새 80% 가까이 늘어나면서 효자노릇을 하고 있다.
4대 시중은행(사진=각 사)
신한은행, 전체 순익 절반 넘게 차지
지난해 4대 시중은행의 해외 법인 실적 총합은 7261억4700만원을 기록했다. 전년 3953억3500만원에서 82.2% 증가했다. 이 중 신한은행 실적이 가장 컸다. 신한은행의 해외법인 순익 총합은 전년 대비 13% 늘어난 4823억9600만원에 달한다. 비중이 절반을 훌쩍 넘겼다.
신한은행의 해외법인 실적이 4대 은행 중 1위를 할 수 있었던 것은 1000억원대 법인이 두 곳이나 있어서다. 지난해 신한은행 베트남 법인은 2328억2200만원을, SBJ은행은 1270억4800만원을 벌어들였다. 특히 신한은행 해외법인 당기실적 3위를 기록한 신한카자흐스탄은행부터 유럽신한은행까지 최소 100억원 이상의 순이익을 내고 있기 때문에 아메리카신한은행의 부진에도 성장을 가능케했다.
신한베트남은행의 성공요인은 리테일에 있다. 현지화 전략을 최우선으로 추진하고 있는 신한베트남은행은 직원 중 현지 직원을 98%이상 채용하고 리테일 대출 자산 비중은 60% 넘게 성장시켰다. 특히 베트남 내에서의 스마트폰 보급률을 고려해 디지털 전략을 강화해 지난해 디지털 고객수도 전년 말 대비 27% 늘어났다.
신한은행 관계자는 <IB토마토>에 "베트남법인과 일본법인 등 전반적인 글로벌 전략이 현지 상황에 잘 녹아들어 지난해 호실적을 낼 수 있었던 것으로 보고 있다"라고 전했다.
신한은행에 이어 우리은행이 2279억400만원, 하나은행이 1082억9500만원으로 뒤를 이었으며, KB국민은행은 924억4800만원의 적자를 기록했다. 다만 국민은행은 전년 대비 적자 규모를 대폭 감소시키는 데 성공했다. 적자법인의 흑자전환과 더불어 KB뱅크의 순손실 규모가 5372억2700만원에서 1732억9600만원으로 축소됐기 때문이다.
우리은행은 2위를 기록했으나 우리은행 해외법인 당기순익 규모는 전년 대비 감소했다. 우리은행의 지난 2022년 당기순이익은 2882억9600만원으로 전년 대비 103억원 줄었다. 주력 국가로 삼고 있는 동남아 3국의 실적이 모두 감소했기 때문이다.
지난해 우리은행 법인 중 1위를 차지한 인도네시아우리소다라은행의 순익규모는 지난 2022년 684억1200만원에서 602억7700만원으로 축소됐으며, 베트남우리은행도 같은 기간 632억1600만원에서 596억9200만원으로 감소했다. 특히 큰 감소폭을 보인 동남아 법인은 캄보디아 법인으로, 지난 2022년 598억3600만원에서 251억9400만원으로 57.9% 줄어들었다.
다만 해외실적 증가율이 가장 높은 곳은 하나은행이다. 하나은행은 지난 2022년 80억3200만원에서 1082억9500만원으로 증가해 1248%의 성장률을 기록했다. 하나은행(중국)유한공사의 당기실적이 흑자 전환한 덕분이다.
효자법인 모두 '동남아'…이유는
실적 규모가 가장 큰 곳이 신한은행인 만큼 각 은행의 효자 법인의 당기순익 실적이 가장 좋은 곳도 신한은행이다. 지난해 각 은행의 효자 법인은 신한은행의 경우 신한베트남은행, 우리은헹은 인도네시아 우리소다라은행, 하나은행은 PT뱅크KEB하나, 국민은행은 KB프라삭뱅크다.
4대 시중은행의 실적 1위 법인은 모두 동남아에 있는 게 공통점이다. 지난해 신한베트남은행이 당기순이익 2328억2200만원으로 가장 많았고, 국민은행 캄보디아법인은 1156억5200만원, 우리은행 인도네시아 법인 602억7700만원, 하나은행 인도네시아 법인은 380억9900만원 순이다. KB프라삭뱅크는 2022년에 가장 많은 당기순익익을 냈지만 지난해 반 토막이 나면서 2위로 내려앉았다.
지난해 순익 1위는 신한은행이었지만 가장 큰 비중으로 법인 흑자 전환을 이룬 은행은 국민은행이다. 국민은행의 경우 중국법인, 미얀마 법인 2곳 모두 적자에서 흑자로 돌아섰으며, 인도네시아 법인과 관련 종속회사인 IDMB UNITED PTE.LTD도 손실 규모를 대폭 축소했다.
특히 법인명을 KB뱅크로 바꾼 인도네시아 법인의 경우 지난 2022년 5372억2700만원의 당기순손실을 기록했으나 지난해 말 1732억9600만원으로 전년 대비 68% 실적 회복에 성공했다. 다만 올해에도 실적을 이어갈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미얀마 법인은 우량 기업 위주 영업으로 수익성 증대를 이뤄냈지만 중국 법인은 부실자산 사후관리로 흑자전환했기 때문이다.
은행권 한 관계자는 "은행권이 글로벌 진출을 적극적으로 진행하는 이유는 국내 시장 파이싸움은 포화상태에 다다랐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라면서 "금융당국에서도 국내의 대출 이자로 이익을 내기보다는 이익구조 재편을 주문하고 있어 해외 진출에 적극적이다"라고 전했다.
이성은 기자 lisheng124@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