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유일 국적 원양 선사인 HMM 매각이 불발되면서 산업은행 등 매각 측과 매수자인 하림그룹 중 누구의 잘못이 큰지에 대한 설왕설래가 이어지고 있다. 산업은행은 하림그룹이 배당금 등으로 HMM이 쌓아둔 14조원의 현금성 자산이 해운업이 아닌 다른 곳에 쓰이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한 것이라고 강조하고 있고, 하림그룹 측은 경영권을 담보해 주지 않고 최대주주 지위만 갖도록 하는 거래는 어떤 민간기업도 받아들이기 힘들다고 항변했다.
서울 여의도 HMM 본사 사무실 내부. (사진=뉴시스)
사실 이번 매각이 순조롭게 진행되기는 힘들 것이라는 평가가 업계 중론이었다. 산업은행 등 정부 입장에서 HMM이 국내 유일 대형 원양 선사라는 점에서 최소한의 안전장치는 필요했을 것으로 보인다. 아무리 HMM을 민영화시키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하지만, HMM이 민영화로 망가질 경우 국내 해운업 자체에 위기가 올 수 있기 때문이다. 해운업은 국가 산업 전체에 높은 영향력을 미치는 업종 중 하나다.
이 때문에 이번 매각 과정에서 걸림돌로 작용했던 것이 바로 주주 간 계약사항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하림그룹은 이 주주 간 계약의 유효기간을 5년으로 제한해 달라고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주주 간 계약에는 HMM의 현금배당 제한, 일정기간 지분 매각 금지, 정부 측 사외이사 지명 권한 등이 담겼다. 산업은행 등은 이 주주 간 계약사항이 최소한의 안전장치라는 점에서 한 발도 물러서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하림그룹 입장에서 이 주주 간 계약사항이 바로 민간기업 입장에서는 절대 수용할 수 없는 내용이라는 점이다. 특히 일각에서는 다른 내용은 하림그룹이 수용했지만, 마지막으로 컨소시엄을 구성했던 JKL파트너스의 지분 매각 제한을 5년에서 3년으로 줄여달라고 제안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산업은행 측이 오히려 JKL파트너스를 컨소시업에서 제외할 것으로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고, 하림그룹이 이를 수용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사실 하림그룹의 항변도 이해가 안 가는 것은 아니다. 아무리 국내 유일 대형 원양 선사라고 해도 기업을 인수하면 민간 기업이고, 배당금 등 회사 경영에 대한 권한을 갖는 것이 당연하기 때문이다. 경영권에 대한 담보 없이 정부의 개입이 지속될 경우 수 조원을 들여 기업을 인수할 이유가 없었을 것이다. 특히 기업 인수에 함께 참여했던 재무적 투자자(FI)의 몫을 하림그룹이 직접 감당하기는 어려웠을 것으로 보인다.
산업은행 등 정부는 조만간 매각 절차를 다시 진행할 것으로 예상된다. 해운업 불황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매각을 미룰 경우 제값을 받기 힘들 것으로 전망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산업은행 등 정부의 매각 조건이 밖으로 알려진 상황에서 또 다시 수 조원을 들여 HMM 매수에 나설 기업이 있을지는 미지수다. 현재 동원그룹도 매각 조건 및 해운업 상황 등을 고려하면 쉽게 매수에 나서지는 못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정부도 이런 상황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업계에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각 불발까지 끌고 온 이유가 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사실 당초 업계에서는 산업은행 등 정부가 HMM 매각에 적극 나서지 않을 것으로 전망한 전문가들이 많았다. 산업은행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매각 불발 이후에 대한 플랜을 새로 짜야하는 상황에 직면한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HMM 매각으로 국민 세금을 환수할 기회를 놓친 것으로 안타깝지만, 국가 해운업 발전 계획을 세우기에는 이번 매각 불발이 기회가 될 수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정부도 지금 당장 HMM 매각만이 정답이라는 시각으로 접근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매각 시기도 중요하지만, 누구에게 매각하는지도 중요한 문제다. 넘어진 김에 쉬어가라는 말도 있다. 정부는 국내 유일 원양 선사 매각이라는 점에서 그 어느 때보다 신중해야 할 필요가 있다.
최용민 산업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