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업계 ‘유동성 리스크’가 이어지고 있다. 태영건설의 워크아웃 사태 이후 건설사 회사채에 대한 투자심리가 약화된 와중에도 일부 대형건설사들은 흥행 속에 회사채를 발행하고 있다. 그러나 중견·중소건설사들의 상황은 다르다. 특히 신용등급 ‘BBB’로 대표되는 중견건설사들은 올해 줄줄이 만기가 돌아오는 차입금·사채 상환에 골머리를 썩고 있다. 이에 <IB토마토>는 차입금 만기를 앞두고 있는 중견건설사들의 영업실적·재무상황을 짚어보려 한다.(편집자주)
[IB토마토 권성중 기자]
HL D&I(014790) 한라(HL디앤아이한라)가 이달 1000억원 이상의 회사채 만기를 앞두고 있음에도 크게 우려하지 않는 모습이다. 비교적 낮은 신용등급 탓에 공모 회사채 발행은 어려운 여건이지만, 준수한 영업실적을 바탕으로 유동성 위기 돌파에 나설 것으로 전망된다.
서울 송파구 HL디앤아이한라 본사.(사진=HL디앤아이한라)
비건설 수익 본격화로 ‘어닝 서프라이즈’
7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HL디앤아이한라는 지난해 매출 1조5729억원, 영업이익 507억원, 당기순이익 307억원의 영업실적을 기록했다. 매출은 전년 대비 6.9% 증가했고, 영업이익은 3.6% 감소했다. 당기순이익은 251억원을 기록했던 2022년에 비해 22.6% 증가했다.
지난해 말 채권평가기관인 한국자산평가의 투자금을 회수하면서 당기순이익이 급증했다. HL디앤아이한라는 지난 2019년과 2020년 씨엘바이아웃제1호사모투자(PEF)에 총 225억원을 출자해 한국자산평가를 인수한 바 있다. 이 PEF는 약 2년9개월 만인 지난해 12월 한국자산평가가 보광인베스트먼트 계열에 매각되면서 이익 배당을 결정했다. 주요 출자자인 HL디앤에이한라는 이를 통해 총 600억원을 회수했다. 약 375억원의 수익을 거둔 것이다.
HL디앤아이한라 관계자는 <IB토마토>와의 인터뷰에서 “한국자산평가 매각으로 확보한 배당금 중 일부가 지난해 당기순이익에 반영됐다”며 “준수한 투자 성과를 달성한 덕에 당기순이익의 상승을 기록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회사는 2020년대부터 유망 스타트업에 대한 투자를 적극적으로 단행해왔다. 지난해 6월 말 기준 HL디앤아이한라는 기체 분리막 개발사인 에어레인(30억원), 프롭테크 스타트업 디스코(20억원), 유리제조기업 립하이(10억원) 등 스타트업에 투자했다. 또한 옐로씨에스오엘성장제1호PEF에 50억원을 출자해 LG생활건강, 애경산업 등에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방식으로 세제를 공급하는 켐스필드코리아에 투자했다. 또 부동산개발 블라인드 펀드인 엠플러스전문투자형사모부동산투자신탁25호에도 13억원을 투자해 지분 25%를 보유하고 있다.
특히 에어레인의 경우 올해 상반기 중 기업공개(IPO)를 준비 중인데 HL디앤아이한라는 지난해 8월 투자 지분의 절반을 매각하며 50억원을 회수한 바 있다. 회사의 상장도 성공적으로 이뤄진다면 추가적인 투자수익이 기대된다.
회사는 앞서 오는 2025년까지 비(非)건설 매출 비중을 총 매출의 30%까지 성장시킨다는 계획을 밝힌 바 있다. 회사 관계자는 “중장기적으로 비건설 부문 매출 비중을 확대해 경기 변동에 대한 대응 능력을 높일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만기 돌아오는 회사채 1200억원…‘캐시경영’으로 돌파
HL디앤아이한라는 오는 8일 500억원, 23일 710억원 등 이달에만 회사채 1210억원의 만기를 앞두고 있다. 올해 상반기로 범위를 넓힌다면 회사가 상환해야 할 회사채 규모는 2270억원에 달한다.
회사는 지난해 나이스신용평가,
한국기업평가(034950)로부터 회사채 신용도 ‘BBB+’ 등급을 받은 바 있다. 최근 수요예측에서 흥행을 이끌며 성공적으로 회사채 발행에 성공한
현대건설(000720)(AA-)과 SK에코플랜트(A-) 등은 업계 최상위 건설사들이다. 또한 수 년 전부터 신사업에 공격적인 투자를 단행해 지난해부터 신사업 매출이 본격화하고 있다. 최근 건설채 투자심리가 이처럼 높은 신용등급을 보유하고 신사업 비중이 높은 건설사들에게 한정적으로 작용하고 있는 점을 감안할 때, HL디앤아이한라의 신용등급과 여전히 높은 건설사업 매출 비중은 부정적인 평가를 받을 수 있어 보인다.
회사는 지난해 9월 말 연결 기준 현금 및 현금성자산은 819억원, 단기금융상품은 339억원으로 총 1158억원의 유동성을 보유하고 있다. HL디앤아이한라 관계자는 <IB토마토>와의 인터뷰에서 “상반기 만기 도래 차입금 일부는 보유 현금으로, 일부는 차환 방식으로 상환을 계획 중”라면서도 차환 발행 방식에 관한 계획은 밝히지 않았다. 신용등급과 최근의 회사채 투심을 고려하면 사모채 발행 방식으로 차환이 이뤄질 것이라는 게 시장의 시각이다.
지난해부터 본격화한 ‘캐시(Cash)경영’ 성과로 재무건전성 개선이 시작된 점은 고무적이다. HL디앤아이한라는 지난해 하반기부터 비상경영체제에 돌입한 바 있다. 지난해 12월 연결 기준 부채비율은 278.4%로 전년(290.3%) 대비 11.9%포인트 하락했다.
권성중 기자 kwon88@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