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B토마토 황양택 기자]
롯데손해보험(000400)(롯데손보)이 퇴직연금 유출에 대응하기 위해 활용했던 환매조건부채권(RP) 차입금 잔액이 크게 줄었다. 지난해 말 급격한 금리 상승 이후 시장이 점차 안정화되면서 상환을 적극적으로 늘린 결과다. 다만 이 과정에서 채권 매각으로 안전자산 비중이 줄어든 점은 부담 요인으로 꼽힌다. 올 4분기 퇴직연금 만기가 다시 도래한다는 점도 자금수지를 불안정하게 만드는 요소다.
9월 말 기준 RP 잔액 5500억원…현 수준 유지 전망
23일 보험업권 및 신용평가 업계에 따르면 롯데손보는 올 3분기 기준 RP 매도 잔액이 5500억원으로 나타난다. 지난해 2조9150억원이었던 RP 차입금은 지난 5월 8500억원까지 줄었다가 이번에 다시 감소했다. RP 잔액이 감소하면서 후순위채권을 포함한 차입부채 규모 역시 같은 기간 3조2829억원에서 9379억원까지 줄어들었다.
RP는 채권 발행사가 일정 기간 이후 확정금리를 주고 다시 재구매하는 조건이 부여된 조달 수단으로, 주로 단기자금을 마련하는 데 활용된다. 롯데손보의 경우 지난해 연말 고금리 환경에서 퇴직연금 약 3조원이 유출된 바 있는데 이에 대응하기 위해 RP 카드를 꺼내 들었던 상황이다.
롯데손보는 보험영업 포트폴리오가 일반계정(보장성보험과 저축성보험 등)보다는 특별계정(퇴직연금과 변액보험 등)에 강점이 있는 보험사다. 지난 9월 기준 특별계정 보험료적립금 규모는 6조5657억원으로 책임준비금(14조3222억원) 가운데 45.8%를 차지할 정도로 비중이 높다.
지난해 연말 퇴직연금 시장에서 머니무브(자금이동) 양상이 한 차례 나타난 이후, 채권시장이 다소 안정화되면서 롯데손보 역시 RP 관리에 적극 나섰다는 설명이다. 차입금 상환 규모를 늘리면서 나머지는 롤오버(만기 연장) 하는 방식이다.
RP 잔액은 현 수준을 유지할 것으로 평가된다. 오지민 한국신용평가 선임연구원은 "현재 특별계정 자산 차입한도(퇴직연금 적립금의 10%) 이내임에 따라 RP 차입금은 현재 수준 정도를 유지할 것"이라며 "차입금 상환을 위한 추가적인 자산 매각은 당분간 제한적일 것으로 전망한다"라고 내다봤다.
다만 올해도 고금리 환경이 여전한 만큼 연말 퇴직연금 자금이동 가능성이 남았기 때문에 변동성이 존재한다. 송미정
한국기업평가(034950) 책임연구원은 "올해 들어 유동성 리스크는 완화됐으나 4분기 중 퇴직연금 상당 부분이 만기도래하는 점을 감안하면 자금수지 관리 부담이 확대될 수 있다"라면서 "(RP 매도 잔액)상환과 롤오버 부담 모니터링이 필요하다"라고 평가했다.
안전자산 비중 하락…자산 리밸런싱 효과도 요원
RP 차입금을 상환하는 과정에서 현금성자산과 채권을 매각함에 따라 안전자산 비중이 낮아진 점은 부담 요인으로 꼽힌다. 운용자산 가운데 현금성자산과 국공채, 특수채 비중은 지난해 말 24.7% 수준에서 올해 9월 말 기준 19.1%까지 떨어졌다. 중소형 보험사 피어(Peer) 평균은 대략 30% 정도다.
지난해(구 회계기준 IFRS4·IAS39) 대비 올해(IFRS17·IFRS9 기준) 운용자산 포트폴리오 변동 내역을 살펴보면, 현금과 예금 규모는 8573억원에서 5636억원으로 줄었으며, 비중은 10.1%에서 4.4%로 쪼그라들었다. 국공채·특수채는 1조5155억원에서 1조8864억원으로 증가했지만 비중은 17.8%에서 14.7%로 떨어졌다.
(사진=롯데손해보험)
RP 상환 과정에서 하락한 안전자산 비중은 반대로 위험자산을 부각하는 요인이 됐다는 설명이다. 롯데손보는 기본적으로 수익증권 규모가 커 위험자산 비중이 높았던 상태다. 지난해 수익증권은 2조2930억원인데 올해 회계제도(IFRS9)가 바뀌면서 수익증권으로 분류되는 자산 규모가 4조695억원으로 확대됐다.
수익증권을 비롯해 주식과 출자금, 기타 유가증권, 일반대출채권, 부동산 등을 포함하는 위험자산 비중은 지난해 말 43.2%에서 올 3분기 53.6%로 상승했다. 해당 비중은 2020년 58.3%에서 2021년 51.7% 그리고 지난해까지 감소 추세였는데 올해 다시 올랐다. IFRS9으로 자산 구성이 재분류된 탓이 크지만 RP 상환으로 인한 영향도 부정적 요소로 작용한 셈이다.
이러한 상황에 대해 롯데손보 측에서는 자산 리밸런싱을 추진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이는 대체투자 익스포저를 줄이고 채권 비중을 더욱 확대하겠다는 내용이다.
다만 이러한 작업 역시 중·장기간 시일이 요구되는 만큼 단기자금 리스크 대응에는 크게 효과를 보기 힘들다. 신용평가 업계 한 관계자는 <IB토마토>에 "일반적으로 보면 만기가 돌아와서 신규 자금을 투입할 때 자산 구성을 변경하는 경우가 가장 흔하다"라면서 "중간에 보유 자산을 굳이 매각하면 손실 가능성이 있어서 일반적이지는 않다. 중기간 이상이 걸리는 작업이다"라고 설명했다.
황양택 기자 hyt@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