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B토마토 황양택 기자] 푸본현대생명이 단기차입금 한도를 기존 대비 두 배 이상으로 대폭 늘렸다. 고금리 환경이 여전함에 따라 연말 유동성 변동 가능성에 선제적으로 대응하는 차원이다. 특히 퇴직연금 비중이 높은 만큼 금리 경쟁과 자금 유출 가능성에 대한 부담이 따르는 모양새다.
단기차입 한도 1.5조 확대…'퇴직연금' 시장 리스크
14일 생명보험협회 공시 자료에 따르면 푸본현대생명은 단기차입금 한도가 기존 7000억원에서 1조5000억원으로 두 배가량 증가했다. 고금리 지속 등 특정한 시장 상황을 고려, 유동성 측면에서 신속 대응을 하고자 차입 한도 설정을 조정했다.
이는 한도를 변경한 것으로 실제 차입액은 아니다. 푸본현대생명은 차입 목적에 대해 "적정한 유동성 유지를 위한 단기자금 차입 한도 확보"라면서 "시장 상황에 따라 한도 내에서 실행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실행 기간은 내년 3월 말까지이며, 차입 형태는 당좌차월이나 환매조건부채권(RP) 매도 방식이다. RP는 채권을 발행한 금융기관이 일정 기간 이후 확정금리를 주고 다시 재구매하는 조건이 부여된 것으로, 주로 단기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활용된다.
푸본현대생명은 한도 내 당좌차월과 RP 매도 사용에 대한 각각의 비중을 따로 정해놓지 않았다. 당좌차월 한도로는 1300억원이 포함된 상태다.
이번에 단기차입 한도를 확대한 배경에는 연말 퇴직연금 머니무브(자금이동) 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담긴 것으로 해석된다. 퇴직연금은 보험뿐만 아니라 은행이나 증권 등 금융업계 전반이 시장에 진출해 금리 경쟁을 펼치고 있는 영역이다. 즉 퇴직연금 자산이 빠져나갈 경우 유동성 위험에 대응하기 위해 RP 매도로 메꾸겠다는 계산이다.
푸본현대생명은 생명보험 업계서도 퇴직연금 비중이 가장 높게 나오는 곳으로 꼽힌다. 올 상반기 수입보험료 2조6185억원 가운데 59.5%(1조5575억원)가 특별계정에서 발생했다. 특별계정은 일반계정과 달리 퇴직연금과 같은 특수 보험영업으로 구성된다.
평균잔액 기준으로는 특별계정이 9조679억원이며, 전체 원화자금 17조5205억원에서 51.8%를 나타낸다. 푸본현대생명은 현대커머셜(12.12%)과
현대모비스(012330)(10.13%)가 주요 주주인 만큼
현대차(005380) 그룹의 퇴직연금 물량이 44% 수준으로 높게 형성돼 있다.
고금리 지속에 연말 머니무브 가능성…부담 요소들 여전
퇴직연금 시장에서 머니무브 양상은 주로 12월에 나타난다. 부담금 납입과 적립금 운용 상품의 만기가 특정 시기에 집중되면서 대규모 자금이 이동할 수 있어서다. 퇴직연금 상품 중에서도 DC형(확정기여)과 IRP(개인형퇴직연금)는 특정 시점에 대한 만기 편중도가 낮아 머니무브와 관련이 적다.
DB형(확정급여)이 검토 대상인데, 금융당국 자료에 의하면 올 상반기 기준 DB형 운용적립금 190조8000억원 가운데 37.4%(71.4조원) 물량의 만기가 12월에 도래할 것으로 추산된다. 올해 납입해야 하는 DB형 신규 부담금 추정액 38조3000억원 중에서도 66.7%(25조6000억원)가 12월에 납입될 것으로 예상된다.
(사진=푸본현대생명)
결국 수익률이 관건이라는 평가다. 올 3분기 기준 업권별 퇴직연금 DB형의 수익률은 △증권사 4.2% △보험사 3.9% △은행 3.5% 등으로 집계된다. 지난해 말 대비 3분기 적립금 증가율은 △증권사 9.1% △은행 6.5% △보험사 0.4%로 나타난다.
푸본현대생명은 3분기 DB형 적립금(분기 말 기준 적립금 운용금액)이 1조3267억원이며 수익률은 4.5%로 확인된다. 다른 금융기관 사업자들과 비교했을 때 DB형 수익률이 평균 이상의 수준을 보이고 있다.
지난해 초까지 계약만기 장기화에 초점을 뒀으나 4분기 금리상승에 따른 역마진 부담이 커지면서 1년 만기 위주로 취급했다는 점은 불안정 요소다. 고금리 환경이 여전한 만큼 만기가 다 된 물량은 더 높은 금리를 찾아 이동할 수 있어서다.
앞서 푸본현대생명은 지난해 고금리 환경이 갑작스럽게 형성됐던 당시 특별계정 자산이 3분기 7조9431억원에서 4분기 7조4969억원으로 4500억원가량 줄어든 바 있다. 같은 기간 특별계정 보유계약 건수는 30만2622건에서 29만256건으로 감소했던 것으로 확인된다.
신용평가 업계 한 관계자는 <IB토마토>에 "작년에는 금리가 갑자기 가파르게 오른 상황이었고, 올해는 계속 고금리가 유지되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금융시장 환경 자체는 다르다고 보이나 머니무브 가능성은 있다고 보인다"라면서 "작년에 취급한 것들이 1년 단기라면 자금 순유출이 있을 가능성도 따른다"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 때문에 미리 한도를 열어 놓고 대비를 하는 측면이 있다고 볼 수도 있을 것 같다"라면서 "아니면 더 높은 금리를 제시해서 자금을 끌어오는 방법도 있는데, 퇴직연금을 많이 보유한 보험사는 이러한 부담이 존재한다"라고 덧붙였다.
황양택 기자 hyt@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