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B토마토 정준우 기자]
HD한국조선해양(009540)이 곳간을 열어 선박용 엔진 생산 기업인
STX중공업(071970)을 인수하면서 향후 행보에 대한 관심이 모이고 있다. 본 인수 건 뒤에는 HD한국조선해양의 두둑한 현금성자산이 뒷받침하고 있어 유동성에 주는 영향은 극히 적을 것이란 평가가 나온다. 이제 업계의 시선은 포트폴리오 확장 등 시너지 효과로 옮겨가는 모양새다. HD한국조선해양은 경쟁 조선사들보다 유리한 고지에 오른 만큼 친환경 선박 수주 및 이에 수반되는 엔진 시장에서 역량을 강화할 방침이다.
HD한국조선해양이 수주한 친환경 액화 이산화탄소운반선 (사진=HD한국조선해양)
3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HD한국조선해양은 STX중공업의 최대 주주인 파인트리파트너스로부터 지분 652만4174주를 인수하고, STX중공업의 제3자 배정 방식의 유상증자를 통해 536만4670주를 확보한다. 이를 통해 HD한국조선해양은 STX중공업의 지분 35%를 확보해 최대 주주 지위를 획득한다. 매매대금은 총 813억원이다. STX중공업의 최대 주주였던 파인트리파트너스는 2대 주주로 변경된다.
800억원 들어도…1조6천억원 이상의 현금성 자산이 안정성 뒷받침
인수에 813억원의 자금이 투입되지만 HD한국해양조선의 유동성에 미치는 영향은 미미할 것으로 보인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1분기 기준 HD한국조선해양이 보유한 현금, 현금성 자산 및 단기금융상품은 별도 기준 총 1조6318억원이다. 반면 HD한국조선해양이 보유한 부채는 유동부채와 비유동부채를 모두 합쳐도 2096억원에 불과하다.
HD한국조선해양의 풍부한 유동성은 계열사 상장, 관계사 지분 매각 등으로 확보했다. HD한국조선해양이 과거 지주회사로 전환 과정에서 물적 분할한 HD현대중공업의 차입금 대부분을 지주사로 이전하지 않았고, HD현대중공업 상장을 통한 자금 확보, 대우조선해양 인수 무산에 따른 지분 매각으로 조달한 자금이 다수다.
풍부한 현금동원력과 함께 단기성 차입금의 비중도 작다. HD한국조선해양의 순차입금은 -1조5487억원으로 사실상 무차입 상태다. HD한국조선해양의 개별 기준 부채는 2분기 기준 1791억원으로 부채비율은 1.6%에 불과하다. STX중공업 인수 대금이 813억원이라는 점을 고려한다면, 이번 인수에 있어 HD한국조선해양이 짊어질 부담은 가벼운 축이다.
HD한국조선해양 측은 <IB토마토>와의 인터뷰에서 "STX중공업 인수 자금은 자체 보유 현금을 활용할 것이다"라고 자금 조달 방안에 대해 설명했다.
인수 배경에 선박용 엔진·친환경 엔진 사업 강화 의도
HD한국조선해양의 STX중공업 지분 인수 배경은 친환경 선박 시장 확대에 따른 엔진 생산 증대 필요성이 대두됐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HD한국조선해양은 STX중공업 인수 배경으로 '늘어나는 친환경 선박 발주 대응을 위한 엔진 생산 능력 확대'를 제시했다.
국제적 해운 규제에 따라 친환경 선박 발주량도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IMO(국제해사기구)가 올해부터 5천톤 이상의 국제 운항 중인 선박의 운항 탄소집약도 지수(CII)를 강제로 충족하는 규제안을 시행하고 있다. 앞으로 IMO는 2050년까지 해운 산업에서 배출되는 실질 탄소 배출을 0(제로)로 만들 계획이다.
해운 업계에서는 가장 현실적으로 IMO의 규제를 맞추기 위한 방법으로 저속 디젤 엔진으로의 교체, 저탄소 연료용 엔진 탑재, 친환경 선박 발주, 감속 운항 등의 방법을 꼽고 있어 엔진 수요의 증가도 불가피하다.
HD한국조선해양은 STX중공업 인수를 통해 엔진 사업에서 두 회사 간의 시너지 효과를 노린다. HD한국조선해양의 계열사인
HD현대중공업(329180)이 대형 엔진 및 친환경 엔진 분야에서 강점을 보이고, STX중공업은 중소형 엔진 분야를 주력으로 생산하고 있다.
이번 인수로 HD한국조선해양은 계열사를 통해 대형 엔진부터 소형 엔진까지 전 엔진 라인업을 갖출 수 있다. HD현대중공업이 보유한 친환경 엔진 기술도 STX중공업의 엔진에 전수된다.
다만 커지는 국제 경제에 대한 불확실성은 변수로 거론된다. 친환경 선박 교체 수요를 제외한 물동량 증가에 따른 선박 수요 예측이 어려워지고 있고, 고물가로 인해 전 세계적 소비 침체가 가져올 물동량 변화도 예측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해운업계는 올해 이후 세계 경제 침체에 따른 물동량 감소, 그에 따른 선박 발주 감소 가능성 등을 모니터링 요인으로 꼽고 있다.
HD한국조선해양은 <IB토마토>에 "HD현대중공업이 가진 친환경 엔진 기술을 STX중공업과 공유해 엔진 생산을 늘릴 계획"이라며 "STX중공업이 보유한 중국 영업 네트워크를 활용해 중국 영업을 확대할 것"이라고 장래 계획을 설명했다.
반면, STX중공업 IR 관계자는 이번 인수에 관해 "STX중공업은 인수 대상으로 논해졌을 뿐 유상증자 등 주요 인수 사안들이 비공개로 진행됐다"라며 말을 아꼈다.
정준우 기자 jwjung@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