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학업계 역행하는 DL케미칼…2차전지·수소사업 손 놓아
화학사 대부분 2차전지·수소사업 주력…석유화학만으로 지속 성장 힘들어
기술력 부족·재무 악화…"당분간 수소 등 미래사업 발표 힘들 듯"
공개 2022-12-07 07:00:00
[IB토마토 이하영 기자] DL(000210)그룹(옛 대림산업) 자회사인 DL케미칼이 다른 화학사와 달리 2차전지와 수소 등 에너지 전환 사업에 손 놓고 있어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린다. 업계에서는 DL케미칼의 기술력과 투자 여력이 부족해 미래 성장사업에 도전하지 못하는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미국 오하이오주 벨프레에 위치한 크레이튼사 SBC 생산공장.(사진=DL케미칼)
 
5일 화학업계에 따르면 화석에너지에서 그린에너지로 변화하는 에너지 전환 시대를 맞아 각 기업들의 사업구조가 전기차 배터리 중심 2차전지와 수소산업으로 빠르게 재편되고 있다. 그러나 유독 대형화학사 중 하나인 DL케미칼은 관련 사업을 영위하지 않고 있다.
 
업계에 따르면 이는 무척 이례적인 일이다. 전 세계적인 탄소중립 기조에 발맞추기 위해 화학사 미래 먹거리로 2차전지와 수소산업 등이 필수로 지목돼서다. 화학업계는 탄소를 많이 발생시키는 석유화학만으로는 사업을 이끌어나가기 힘들다는 위기의식으로 미래 성장동력에 주목하고 있다.
 
이 때문에 LG화학(051910)·포스코케미칼(003670)은 2차전지 사업, 한화솔루션(009830)·효성첨단소재(298050)·코오롱글로벌(003070)·SK E&S 등은 수소사업을 특히 강화하고 있다. 각 기업이 한 분야를 집중 육성하는 이유는 투자비 부담이 상당해서다. 1990년대부터 2차전지 배터리 사업을 시작한 LG화학은 관련 투자로 수십조원의 적자를 냈다. 배터리 사업이 LG에너지솔루션(373220)으로 분사되기 2년 전인 2020년 2분기가 돼서야 본격적인 흑자를 내기 시작했다. 롯데케미칼의 경우 수소 인프라 구축에 이어 일진머티리얼즈의 조단위 M&A로 2차전지 소재사업까지 발을 넓히며 유동성 위기를 겪는 중이다.
 
강병준 한국신용평가 수석연구원은 ‘탈석유시대의 도래, 중후장대 산업의 미래를 묻다’ 리포트에서 “범용 제품 위주의 포트폴리오를 보유하고 있거나 원가경쟁력이 열위한 업체의 경우 실적이 부진할 전망”이라면서도 “고부가 제품 비중이 높거나 석유화학 이외의 사업으로 다변화되어 있는 업체의 경우 우수한 업황 대응력을 시현해 이에 따라 실적 및 신용도의 방향성이 차별화될 것”이라고 판단했다. 
 
투자은행(IB) 업계 한 임원도 “글로벌 트렌드 변화에 따라 신재생·친환경 에너지로의 전환에 있어서 국내 핵심기업들은 선제적인 투자를 통해 향후 수소 및 연료전지, 2차전지 등의 혁신성장 산업에 있어서 시장 선점에 더욱 노력하고 있다”면서도 “시장 변화에 따라가지 못하면 향후 일정 기간 이후에는 시장에서의 핵심적인 기술력을 보유하지 못해 시장점유율 등의 부정적인 영향이 예상된다”라고 말했다.
 
 
(사진=한화자산운용)
 
반면 DL케미칼은 2019년까지 범용석유화학 제품인 폴리부텐(PB)이 대표 생산품일 정도로 석유화학 일변도였다. 특히 DL케미칼은 2차전지나 수소 사업과 큰 연관성이 없는 석유화학, 라텍스, 바이오 케미칼 등 3개 분야로 성장해 왔다. 석유화학은 경기 영향을 크게 받는 만큼 화학사는 스페셜티(특화) 제품을 만들어 매출 하방압력을 낮추는 영업전략을 취해 왔다. 
 
DL케미칼이 사업다각화를 시작한 것은 불과 2년 전부터다. 2020년에는 글로벌 수술용 장갑(IR라텍스) 글로벌 1위 회사 카리플렉스를 인수했고, 지난해는 바이오 케미칼 업계 1위 크레이튼을 인수해 올해 연결편입했다. 2020년까지만 해도 매출 2조원에 못 미치던 DL은 카리플렉스, 크레이튼 인수 효과로 올해 5조원을 넘길 전망이다. 2년새 과감한 M&A를 진행한 DL은 DL케미칼을 앞세워 매출 2배 이상의 대형화학사로 거듭났다. 
 
다만, 수소산업은 그룹에서 이끌고 있는 분위기다. 올해 5월 DL에너지가 수소연료전지 발전소 착공 계획을 밝혔고, DL이앤씨가 CCUS(탄소 포집 활용 및 저장) 기술을 갖추고 2030년까지 연 매출 2조원 달성 목표를 밝힌 바 있다. 그러나 DL케미칼은 현재 관련 투자를 염두에 두고 있지 않아 그룹 내 시너지는 기대하기 힘들다는 평가다.
 
화학업계에서는 DL케미칼이 미래 성장사업에 주저하는 원인으로 기술력 부족과 비용을 손꼽는다. 2차전지는 닦아 둔 기술이 전혀 없고 수소도 차별화를 위해서는 상당한 투자금이 예상돼서다.
 
 
DL케미칼 외형을 성장시키며 DL의 재무체력도 상당히 약해진 상태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DL의 현금및현금성자산은 2019년 2조5591억원에서 올해 3분기 8060억원으로 68.5%포인트 감소했다. 동기간 부채총계는 6조7085억원에서 8조681억원으로 20.2%포인트 증가했다. 부채비율도 99.6%에서 160%로 수직 상승했다.
 
직접 사업에 나서야 되는 DL케미칼도 사정은 비슷하다. 지난해 말 1조4474억원을 기록한 현금및현금성자산이 올해 3분기 기준 4884억원으로 크게 줄었다. 지난해 말 기준 1조7588억원을 기록했던 부채총계도 올해 3분기 기준 5조8748억원으로 급증한 상태다. 여기에 영업활동현금흐름도 쪼그라들고 있다. 지난해 3분기 1852억원을 기록한 영업활동현금흐름이 올해 3분기에는 465억원을 기록했다.
 
화학업계 관계자는 “(인수한 지 얼마 되지 않아 현재는) 사업 포트폴리오도 짜고 내부 정리하며 회사를 안정화하는데 치중할 것으로 짐작된다”라며 “수소 등 미래사업 비전 발표는 늦어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 DL케미칼 관계자는 <IB토마토>에 “DL케미칼은 크레이튼·카리플렉스 등 세계 최고 수준의 친환경 기술을 보유한 기업들을 인수하며 석유화학 기업으로의 핵심 역량을 강화하고 있다”라며 “앞으로도 자사의 강점을 바탕으로 친환경 사업을 전개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하영 기자 greenbooks7@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