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금경색 주범' 한전채…고금리는 잘못된 ESG 평가 탓
석탄 비중 높은 한전채 '타깃'…조달시장서 기피 대상 전락
"한전 투자 비중 줄이는 분위기"…고탄소산업 포스코케미칼 등 영향 없어
공개 2022-11-04 08:00:00
[IB토마토 이하영 기자] ESG(환경·사회·지배구조) 중 환경에 대한 금융권 투자 기준이 탈탄소가 아닌 탈석탄에만 집중되면서 한전채에 악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전체 탈탄소가 아닌 탈석탄만을 기준으로 채권에 대한 평가가 이뤄지면서 석탄 비중이 높은 한국전력(015760)공사(한전) 채권에 대한 투자 철회가 이어졌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한전채 조달금리가 상승했고, 이는 전체 회사채 조달시장 불안 요인 중 하나로 꼽힌다.
 
한전채는 한전이 발행하는 전력구매용 특수채권이다. 발전자회사 및 민간발전사 등에 전력 구매 시 사용한다. 한전은 발전자회사 중 대부분이 석탄화력발전으로 전기를 생산하고 있고, 2년 전 해외에 관련 발전소 건설 강행 의지를 밝히며 ESG에 역행해 글로벌 투자자들 눈 밖에 났다. 이에 높은 신용등급(AAA/안정적)에도 불구하고 지난해부터 자금조달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한국전력공사 서울 본사.(사진=연합뉴스)
 
2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한전채 평균 조달금리가 2020년 1.5%에서 2022년(1~10월) 4%로 두 배 이상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조달금리 상승 이유로는 전기요금인상이 어려운 현실과 함께 지난해 대세로 자리 잡은 ‘탈석탄 금융’이 크게 영향을 미쳤다는 평가다.
 
탈석탄 금융은 지난해 5월 이후 국민연금을 비롯한 100여개 금융기관이 탈석탄 선언을 하며 시작됐다. 이들 금융회사는 국내외 석탄화력발전소 건설을 위한 채권 인수를 하지 않겠다고 밝힌 바 있다. 한전채는 대표적인 석탄화력발전 관련 채권으로 분류된다. 한전은 전기 공급을 위해 한전채를 발행할 수밖에 없는데 탈석탄 금융이 시작되면서 자금조달 문턱이 높아진 셈이다.
 
블랙록 등 돌리자 국내 투심도 싸늘
 
한전이 ESG 문제로 금투업계에 미운털이 박힌 것은 2020년부터다. 그해 글로벌 투자운용사 블랙록은 ESG 경영방침을 밝히며 탈탄소 기업에 투자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러나 같은 해 한전이 인도네시아·베트남 등지에 추진 중인 석탄화력발전소 사업을 계속 진행하겠다는 정반대 입장을 내놓으며 블랙록과 사이에 균열 조짐이 보였다.
 
결국 블랙록, 네덜란드공적연금운용사(APG) 등은 ESG 네거티브 스크리닝(ESG 부정 평가 기업 배제 전략)을 이유로 한전에 투자 철회 의사를 전했다. 노르웨이 국부펀드도 한전이 2018년 석탄 관련 매출이 30% 이상이라는 이유로 투자를 철회했다.
 
외국계 투자사에 밉보인 한전을 국내 투자사라고 좋게 볼 이유가 없었다. 국내에서 지난해 탈석탄 금융이 부상하며 한전이 자연스럽게 투자시장 중심에서 밀려난 이유다.
 
 
 
탈석탄 금융 효과는 한전에 더 높은 금리와 더 많은 금융비용을 초래한 것으로 나타났다. 예탁결제원에 따르면 한전은 채권시장에서 2020년 3조4200억원만 조달했으나, 2021년에는 네 배에 달하는 12조2000억원을 전년 대비 0.7%포인트(2.2%) 높은 금리로 조달했다. 같은 기간 채권 발행횟수도 25회에서 76회로 늘었다. 원활한 경영을 위해 이전보다 높은 금리로 더 많은 돈을 조달해야 했던 것으로 판단된다. 
 
설상가상 한전은 올해 10월까지 지난해의 195.9%(23조9000억원)를 상회하는 한전채를 발행했다. 탈석탄 금융 여파로 기본 금리가 이전보다 높았던 데다, 연료비 상승으로 한전이 발전사에서 사오는 계통한계가격(SMP·전력도매가격)이 오른 탓이 크다.
 
동기간 금리도 치솟았다. 한전채 평균조달금리는 올초 2.7%로 시작해 지난달에는 5.76%를 돌파했다. 지난달 17~31일 발행된 1조원 규모 한전채는 5.75% 금리로 발행된 1800억원을 빼고, 모두 5.9~5.99%로 6%대에 육박했다. 사정이 이렇자 금투업계에서는 올해 안에 한전채가 7%를 찍을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윤원태 SK증권 자산전략팀장은 <IB토마토>와의 통화에서 “작년부터 올해 상반기까지는 탈석탄 금융 원인으로 한전에 대한 투자 비중을 줄이는 시장 분위기가 형성된 것이 사실”이라며 “하반기부터는 채권시장 수급요건이 안 좋았던 것이 주된 이유”라고 분석했다.
 
 
탈석탄 아닌 ‘탈탄소’ 추구해야
 
금투업계 일각에서는 한전채 상승에 국내 ESG 채권의 무분별한 탈석탄 정책이 있다는 반성도 나온다. ‘석탄’ 배제에만 치중해 정작 제대로 된 저탄소사회 구축이나 탈탄소사업 투자는 하지 못했다는 것이 이유다. 
 
당초 블랙록 등이 주장한 탈탄소 금융은 지구온난화를 막기 위한 산업과 동조 행동을 하는 기업에 투자하자는 취지였다. 석탄산업이라고 무조건 투자 대상에서 제외한 것이 아니라 한전의 신규 석탄사업 진행에 유감을 표하고 투자 철회를 통보했다고 보는 것이 옳다. 현재가 아니라 미래사업에 집중해 투자를 결정했다고 분석된다.
 
반면 국내 탈석탄 금융은 명확하지 않은 기준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평가다. 한전 및 5개의 발전자회사는 석탄사업을 영위한다는 이유로 먼저 투자 목록에서 배제됐다. 금투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같은 발전사라는 이유로 석탄발전 비중이 낮은 민자발전사들 역시 채권시장에서 기피되고 있다.
 
 
이는 조달금리의 움직임으로도 드러난다. 인포맥스와 SK증권(001510) 등에 따르면 고탄소산업인 철강·정유업을 영위하는 포스코(005490)홀딩스나 S-Oil(010950) 등은 지난해 1월부터 올해 4월 사이 크레딧 스프레드(조달 비용 차이) 변동이 거의 없다. 한전 발전자회사 중 한국남동발전이 크레딧 스프레드 우상향 기조를 이어가고 있는 것과 온도차가 크다. 금융권 ESG 투자가 탈탄소가 아닌 탈석탄에 집중했다는 방증이다.
 
ESG 채권 인덱스 구성에서는 무분별한 탈석탄 배제가 확인된다. 탈석탄 금융에서 기를 쓰고 배제한 한전채가 버젓이 다수 ESG 채권 인덱스 구성종목으로 포함돼 있기 때문이다. SK증권 등에 따르면 ESG 채권 인덱스 내 한전채 비중은 △KIS SustinvestESG 종합 12.9% △KAP ESG 종합 채권지수(KCGS) 12.2% △KIS ESG 종합 크레딧 지수(KCGS) 12.0% △KIS-대신 종합 8.4% △KIS Who's Good 종합 크레딧 지수 4.9% 등이다.  
 
한국기업지배구조원은 ESG 환경 모범규준을 공개하며 “기업은 환경경영 활동으로 발생할 수 있는 경제적 편익 및 환경영향을 사전에 충분히 파악해야 한다”라며 “환경경영 실천의지를 담은 환경방침을 수립, 실행 및 유지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이하영 기자 greenbooks7@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