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진머티리얼즈, 누구 손에?…LG·롯데·삼성 '셈법' 한창
LG화학 대 롯데케미칼, 현금 여력에서는 LG화학 '승'
음극재 투자해온 'LG엔솔' 나설 가능성도
삼성SDI, 일진머티리얼즈 최대 고객사
공개 2022-06-16 08:30:00
[IB토마토 김성훈 기자] 국내 대표 동박 제조기업인 일진머티리얼즈 인수전의 막이 오르며 새 주인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자본력이 풍부한 LG화학(051910)과 시너지를 앞세운 롯데케미칼(011170)이 유력한 인수 후보군으로 꼽히지만 일각에서는 LG에너지솔루션(373220)삼성SDI(006400)도 인수전에 발을 들일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14일 업계에 따르면 일진머티리얼즈는 지난달 지분 53.3%를 매각하기로 하고 매수 후보자들에 티저레터(투자안내문)를 보냈다. 매각주관사는 씨티글로벌마켓증권이며, 본입찰은 오는 9월 중 이루어질 예정이다. 매각은 제한적 경쟁 입찰 방식으로 진행할 가능성이 큰 것으로 알려졌다.
 
일진머티리얼즈가 생산 중인 동박. (사진=일진머티리얼즈)
 
M&A 매물로서 일진머티리얼즈가 가진 장점은 뛰어난 잠재력과 뚜렷한 성장세다. 일진머티리얼즈는 2차전지 4대 소재인 양극재·음극재·전해액·분리막 중 음극재에 사용되는 ‘동박(일렉포일 Elecfoil)’을 생산하는 기업이다. 동박이란 얇은 구리막을 뜻하는데, 원래는 전자·전기제품의 핵심 부품인 인쇄회로기판(PCB)을 만드는 데에 주로 쓰인다. 2차전지용 동박 수요가 크게 늘어난 것은 최근 몇 년간 전기차 시장이 급성장하면서다. SNE리서치는 세계 동박 수요가 올해 26만5000t에서 2025년에는 74만8000t으로 연평균 40% 이상 증가할 것으로 전망했다. 일반적으로 전기차 한 대를 만드는 데에 40kg가량의 동박을 쓴다.
 
업계에서는 일진머티리얼즈가 SKC(011790) 자회사 SK넥실리스(22%)·중국의 왓슨(19%)·대만의 창춘(18%) 등에 이어 13% 정도의 점유율로 4위를 기록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한다. 일진머티리얼즈는 공장 증설에 속도를 내며 수요에 대응해 외형을 키우고 있는데, 최근 스페인 카탈루냐에 2만5000t 규모의 동박 공장을 짓기로 했다. 스페인을 유럽 전기차 허브로 구축하는 폭스바겐그룹의 프로젝트에 합류해서다. 지난해에는 국민연금·교직원공제회 등이 국내 사모펀드 스틱인베스트먼트를 통해 해외 생산시설 확대용 자금으로 1조원 정도를 투자했다. 올해 안으로 북미 지역 공장 건설 계획도 확정한다는 것이 일진머티리얼즈의 계획이다.
 
 (자료=유진투자증권)
 
일진머터리얼즈의 성장세는 실적에서도 나타난다. 2019·2020년에는 코로나19 여파 등으로 주춤했지만, 지난해에는 매출액이 28.31% 성장했고 영업이익도 37.46% 늘었다. 당기순이익 역시 47.83% 불어났다. 증권업계 일각에서는 지난해 6889억원 수준이던 일진머티리얼즈의 매출이 올해 1조원을 돌파하고, 영업이익도 70% 가까이 성장해 1000억원을 넘어설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일진머티리얼즈는 재무 측면에서도 탄탄하다.
 
올해 1분기 기준 부채비율은 39.7%로 안정성 기준이 300%보다 크게 낮은 수준이며, 건전성 기준을 30%로 보는 총차입금의존도와 순차입금의존도도 각각 16.6%·8,4%에 불과하다. 같은 기간 현금성자산이 705억원인 데에 비해 1년 이내에 갚아야 하는 단기성차입금은 36억원에 불과해 유동성 우려도 거의 없다.
 
일진머티리얼즈의 이 같은 매력에 적지 않은 대기업과 사모펀드 등이 눈독을 들이고 있다. 일각에서는 단기간에 기업을 키워 재매각하는 사모펀드의 성격상 지속적인 투자가 필요한 일진머티리얼즈를 품기에는 부담일 수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그러나 증권업계의 전망에 따르면 2년 뒤 일진머티리얼즈의 매출액과 영업이익은 현재의 두 배로 성장할 가능성도 있어, 인수자를 특정하기는 쉽지 않은 상황이다. 
 
사모펀드를 제외하고 일진머티리얼즈가 투자설명서를 보낸 곳은 LG화학·롯데케미칼 등인 것으로 알려졌다. 포스코케미칼(003670)을 통해 배터리 소재 사업에 공을 들이고 있는 포스코그룹(POSCO홀딩스(005490))은 인수 의향이 없다는 것을 명확히 했고, SKC 역시 독과점 우려로 인수전에 뛰어들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 중론이다. LG화학과 롯데케미칼 중 개발 기업의 투자 여럭만 보면 우세한 쪽은 LG화학이다. 
 
 
나이스신용평가에 따르면 올 1분기 기준 LG화학은 무려 14조1375억원의 현금성자산을 보유하고 있는데, 일진머티리얼즈의 매각 금액이 3조원 정도로 추정되는 점을 고려하면 충분하고도 남는 액수다. 단기성차입금도 현금성자산의 31% 수준이어서 일진머티리얼즈를 단독으로 인수해도 유동성 우려가 커지지 않는다. 1분기 롯데케미칼의 현금성자산은 4조4241억원으로 일진머터리얼즈 단독 인수가 불가능한 상황은 아니지만, 1조9905억원의 단기성차입금을 고려하면 인수 후에는 유동성 부담이 생긴다.
 
실적을 비교해도 지난해 말 기준으로 LG화학의 매출액이 롯데케미칼의 2.35배 이상, 영업이익은 3.27배 이상 이어서 추후 증설을 위한 투자 여력 측면에서도 LG화학이 우세하다. LG화학은 중국 동박 생산 기업 지우장 더푸 테크놀로지에 400억원을 투자해 파트너십을 체결했고, 고려아연(010130)의 동박 계열사 케이잼과도 협력하고 있다. 
 
투자은행 업계 일각에서는 LG화학이 아닌 LG에너지솔루션이 일진머티리얼즈 인수에 참여할 수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LG에너지솔루션 역시 2020년 솔루스첨단소재에 지분을 투자한 후 2021년 동박 장기공급계약을 맺는 등 자체적으로 소재 확보를 위해 노력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에도 음극재 생산 기업 대주전자재료(078600)에 대한 투자를 검토한 적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LG화학은 양극재에 생산 규모 확대에 집중하고, LG에너지솔루션이 일진머티리얼즈를 인수해 그룹 내 배터리 수직계열화를 완성하는 전략을 쓸 수도 있다는 분석이다. LG에너지솔루션은 SK넥실리스로에서도 동박을 공급받고 있는데, 일진머티리얼즈를 인수하면 기술 유출 우려 등을 끊어낼 수 있다. 
 
재무 역량에서 상대적으로 밀리는 롯데케미칼이 이번 인수전에서 가진 강점은 그룹 내 배터리 제조 계열사가 없는 순수 소재 기업이라는 점이다. 일진머티리얼즈는 현재 삼성SDI에 동박을 공급하고 있는데, 그 비중도 생산량의 50% 이상인 것으로 알려졌다. 일진머티리얼즈가 LG화학의 품에 안기면 삼성SDI는 기술 유출에 대한 우려와 경쟁사인 LG에너지솔루션과의 관계 등에 대해 우려할 수밖에 없게 된다. 지금 LG에너지솔루션이 가진 고민이 그대로 전가되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은 일진머티리얼즈에 부담이 될 수 있다. 반면 롯데케미칼은 2차전지 소재에 대한 투자 의지가 명확하면서도 복잡한 이해관계에서 벗어나 있다. 순수한 소재 회사로서 기존 네트워크 등을 활용한 시너지로 오히려 판로를 다각화할 수 있다는 강점도 가지고 있다는 것이 업계의 설명이다.
 
마지막으로 인수전 참여가 예상되는 곳은 일진머티리얼즈의 최대 고객사인 삼성SDI다. 삼성SDI는 최윤호 사장 취임 후 그간의 보수적이던 성향에서 벗어나 적극적으로 사업을 추진하는 모습이다. 최 사장은 지난 7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함께 유럽 출장길에 나섰다가 11일 독일에서 귀국했다. 이때 함께 귀국한 박학규 삼성전자 사장이 최 사장에게 “수고하셨다. 큰일 하셨다”라는 말을 전한 것으로 알려져, 스텔란티스와의 합작 발표 이후 BMW 등 고객사와의 합작회사 설립을 한 건 더 확정한 것 아니냐는 추측이 나오는 상황이다.
 
삼성그룹이 최근 발표한 450조원 규모의 투자 계획에 배터리 관련 언급은 없었지만, 최 사장의 최근 행보로 볼 때 인수 가능성이 없지는 않다는 것이 업계의 의견이다. 다만 삼성SDI의 경우 올해 1분기 기준 단기성차입금이 2조3816억원으로 2조3160억원인 현금성자산보다 큰 상황이어서 단독으로 일진머티리얼즈를 인수하기는 쉽지 않다. 
 
김성훈 기자 voice@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