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곳간 두둑' 카카오, 투자 보따리 어디로 향하나
카카오엔터프라이즈 유증에 1000억원 규모 참여 결정
엔터프라이즈, 클라우드·플랫폼 개발 등으로 B2B에 주력
카카오벤처스, 최근 헬스케어에 투자 집중
공개 2022-05-19 06:00:00
[IB토마토 김성훈 기자] 카카오(035720)가 현금 자산을 두둑하게 쌓으며 미래 먹거리 확보를 위한 투자 보따리를 어떻게 펼칠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업계에서는 현재 B2C(기업 대 소비자) 서비스를 주력으로 하는 카카오가 B2B(기업 대 기업) 서비스를 강화하고, 새 먹거리인 헬스케어 부문을 키우는 데에 여력을 쏟을 것으로 분석한다.
 
카카오 출자 공시 발췌. 자료=금융감독원 전자공시스템
 
17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카카오는 지난 12일 자회사 ‘카카오엔터프라이즈’의 유상증자에 1000억원을 출자한다고 밝혔다. 이는 총출자액 1177억9300만원의 약 84.89%에 달하는 금액이다. 같은 날 먼저 게시된 공시에 따르면 카카오엔터프라이즈는 유상증자 목적을 ‘운영자금 확보’라고 밝혔다.
 
지난 2019년 12월 공식 출범한 카카오엔터프라이즈는 카카오의 사내 독립 기업(CIC)으로 조직 개편됐던 ‘AI Lab’이 분사해 설립된다. 인공지능(AI)·검색 등 카카오가 오랫동안 쌓아온 기술력·서비스 경험 등을 결합한 ‘B2B’ 사업을 주력으로 한다. 주요 사업은 △AI(인공지능) △클라우드 △협업툴·플랫폼 등이다. 카카오톡·페이·은행·택시·웹툰·엔터테인먼트 등 다양한 B2C로 경쟁력을 강화해온 카카오그룹 내에서는 보기 드문 B2B 기업이다. 
 
업계에서는 카카오엔터프라이즈에 대한 카카오의 출자를 두고 카카오가 B2B 사업을 강화하기로 작심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기업 분석 업계 관계자는 “B2B 사업은 B2C 사업보다 단일 거래 규모가 크고, 일단 거래가 성사되면 비교적 안정적으로 사업을 운영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라며 “카카오가 B2C 사업으로 성장해왔지만, 앞으로의 외형 확장을 도울 수 있는 B2B 사업의 필요성도 느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카카오엔터프라이즈의 경우 계열사의 고객 데이터를 활용한 서비스도 내놓을 수 있는 만큼 B2B 서비스 분야에서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는 판단이다. 
 
문제는 실적이다. 카카오엔터프라이즈의 지난해 영업손실은 368억원에서 901억원으로 급증했다. 당기순손실도 지난해 946억원을 기록하며 368억원이던 2020년에 비해 적자가 크게 늘었다. 신사업에 대한 투자·연구개발·영업 비용 등이 큰 탓이다. 이번 유상증자도 더 이상 적자를 늘리지 않고 재무안정성을 확보하면서 성장하기 위한 결정으로 풀이된다. 
 
실적은 아직 저조한 상황이지만 성장성이 떨어진 것은 아니다. 카카오엔터프라이즈의 지난해 매출액은 전년도보다 40% 증가했고, 최근에도 B2B 거래 실적을 쌓으며 영업이익 회복의 발판을 마련하고 있다. 지난 12일에는 CJ(001040)올리브네트웍스와 AI·클라우드 분야 사업 추진을 위한 업무협약(MOU)을 맺었다. 이번 협약으로 양사는 HPC(고성능 컴퓨터)와 AI 인프라 분야에서 공동사업을 진행하고, 양사의 인프라·플랫폼·솔루션으로 상호 영업을 추진할 예정이다.
 
백상엽 카카오엔터프라이즈 대표가 Kakao i LaaS 기반 미래 물류 생태계에 대한 카카오엔터프라이즈의 비전에 대해 발표하고 있다. 사진=카카오엔터프라이즈
 
지난 3일에는 AI 기반 물류 생태계 플랫폼 ‘Kakao i LaaS(Logistics as a Service)’를 공식 출범한다고 발표했다. Kakao i LaaS는 여행객과 숙박 업체를 이어주는 플랫폼 서비스와 유사한 원리로 화주(화물업체)와 회원사(물류센터)가 더욱 쉽게 연결될 수 있도록 지원하는 플랫폼이다. 카카오엔터프라이즈는 플랫폼 공식 출범 전에 이미 Kakao i LaaS를 활용한 사업을 진행했는데, 지난해 7월 hy(옛 한국야쿠르트)를 시작으로 동원디어푸드(동원F&B(049770)오리온(271560) 등과 협업해 성과를 냈다. 
 
작년 초에는 KB국민은행(KB금융(105560))의 사내 교육 프로그램에 자체 개발한 실시간 영상 스트리밍 플랫폼 ‘카카오 i 커넥트 라이브(Kakao i Connect Live)'를 제공하기도 했다. 카카오가 카카오엔터프라이즈의 B2B 사업에 관심을 쏟는 이유다. 
 
서정연 신영증권 연구원은 최근 보고서를 통해 ’카카오엔터프라이즈·모빌리티·엔터테인먼트 등 잠재력을 보유한 주요 종속회사들의 상장이 카카오 기업가치 회복에 일조할 것이라는 기대감은 유효하다‘라고 전했다. 특히 카카오엔터프라이즈의 경우 이번 카카오 출자와 계속된 영업 성과로 차기 IPO 주자에 한 걸음 더 다가섰다는 평가가 나온다. 
 
카카오의 지난해 말 기준 현금성자산은 2조19억원에 달한다. 1년 이내에 갚아야 하는 단기성차입금은 4439억원으로, 현금성자산의 22%에 불과하다. 기업이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는 자금인 잉여현금흐름(FCF)도 7049억원 규모다. 카카오엔터프라이즈가 실적 개선에 시간이 걸리더라도, 사업성이 확실하다면 카카오가 투자할 여력은 충분하다는 얘기다. 카카오의 경우 건전성 기준이 30%인 순차입금의존도가 -4.8%로 사실상 무차입경영 상태여서 재무건전성도 높다.
 
카카오 자금 대여 공시 발췌. 자료=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
 
카카오엔터프라이즈 외에 카카오가 최근 자금을 투입한 곳은 ’카카오벤처스‘다. 카카오는 지난 12일 의사회를 열고 카카오벤처스에 연 4.6% 금리로 500억원을 대여해주기로 했다. 카카오벤처스는 유망 기술을 보유한 기업에 대한 투자를 전문으로 하는 카카오그룹 계열사다. 카카오벤처스의 투자 행보를 살펴보면 카카오가 차기 먹거리로 눈여겨보는 사업이 무엇인지 알 수 있다.
 
카카오벤처스는 올해 들어 △AI 기반 방사선 판독 기술 스타트업 ’위커버‘ △비대면 진료 플랫폼 ’메듭‘ △AI 기반 암 진단 솔루션 기업 '프리베노틱스' △AI·블록체인 기반 의료 데이터 플랫폼 기업 ’제이앤피메디‘ 등에 투자했다. 지난 2일에는 처방약 조제·약 재고관리 앱을 개발한 ’필아이‘의 프리 시리즈A 투자에 참여했다. 카카오벤처스의 이같은 투자 활동은 카카오가 차기 먹거리 중 하나로 ’헬스케어‘를 선택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카카오는 이미 지난해 12월 헬스케어 사내독립기업(CIC)를 정식 출범시켜 ’디지털 헬스케어‘ 사업을 본격화한다는 구상을 밝혔고, 올해 3월 헬스케어 CIC를 별도 법인으로 분리했다. 지난 4월에는 카카오헬스케어 법인의 유상증자에 1200억원을 출자하기도 했다.
 
헬스케어 부문에 대한 카카오의 큰 그림에 대해서는 ’제약·바이오‘ 분야는 아닐 것이라는 의견이 많다. 카카오헬스케어가 이달 11일 인공지능 문진 시스템을 개발한 ’히치메드‘와 업무협약을 체결한 것과 카카오벤처스가 그간 투자해 온 기업들의 사업 내용으로 미루어볼 때, AI 기반의 B2B·B2C 다양한 의료 플랫폼 개발에 주력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 업계의 분석이다. 제약·바이오 부문은 셀트리온·삼성바이오로직스 등 대기업은 물론 전통을 가진 제약사와 강소 기업들이 많은 ’레드오션‘이기 때문에, 카카오의 강점인 플랫폼·데이터 분석 노하우를 살려 사업을 펼칠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의료계 관계자는 “현재 의료 플랫폼 부문은 의료법·개인정보보호법 등 각종 규제로 대기업이 깊이 발을 들이지 못는 상황”이라며 “샌드박스 등으로 규제가 완화되고, 의료계와 합의가 이뤄진다면 카카오가 진입해 성공할 가능성은 있는 것으로 본다”라고 전했다.
 
김성훈 기자 voice@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