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하이닉스의 ARM 인수…다국적 연맹 꾸려도 '산넘어 산'
"독점 우려 해소 위해서는 여러 국가 기업과 함께 해야"
"서방 우호국 중심 컨소시엄 땐 중국 당국 승인 난관"
공개 2022-04-08 08:50:00
[IB토마토 김성훈 기자] 박정호 SK하이닉스(000660) 부회장이 ARM 인수 의지를 밝히면서, 업계에서는 인수 가능성에 대한 다양한 의견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미국·대만·일본·유럽 등 다양한 국가의 기업으로 컨소시엄을 만들어야 인수 확률을 높일 수 있다면서도, 서방 우호국 중심의 컨소시엄이 될 가능성이 크기에 중국이라는 산을 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도 내놓는다.
 
지난달 열린 주주총회에서 박정호 SK하이닉스 부회장이 비전과 전략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SK하이닉스
 
6일 업계에 따르면 SK하이닉스는 컨소시엄 구성을 통한 ARM 인수를 고려하고 있다. ARM은 일본 소프트뱅크가 2016년 우리돈 약 38조원을 들여 지분 75%를 확보하며 인수한 영국 반도체 설계 기업이다. 반도체 시장에서 ARM의 영향력은 단순한 점유율 1위 이상이다. ARM은 반도체 칩의 설계 구조와 요소를 제공해 수익을 내는 팹리스 기업인데, ARM의 설계자산(IP)이 없으면 반도체 제조 자체가 불가능하기에 세계 모바일 반도체 설계 시장의 95% 이상을 지배하고 있다. 삼성전자(005930)의 스마트폰 갤럭시 시리즈의 모바일 프로세서(AP)와 애플의 AP도 ARM의 구조를 기반으로 재설계한 것이다. ARM의 주력 상품이 모바일용 IP여서 앞으로 자율주행차와 도심항공교통(UAM) 등이 고도화하면 기업 가치가 더욱 올라갈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SK하이닉스의 출사표에 대한 업계와 학계의 반응은 기대 반, 우려 반이다. SK하이닉스가 ARM 인수에 성공하면 SK하이닉스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의 시스템반도체 경쟁력을 크게 높일 수 있다는 장밋빛 전망과 함께, 엔비디아의 실패 사례를 보면 인수 가능성이 적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지난 2020년 9월 세계 그래픽반도체(GPU) 시장 1위 기업 ‘엔비디아(NVIDIA)’는 ARM을 400억 달러, 우리돈 50조원에 단독 인수하겠다고 발표했지만 결국 실패했다. 독점을 우려한 퀄컴·마이크로소프트·구글 등 미국 주요 IT업체의 반대에 더불어, 인수 확정을 위해 꼭 필요한 각국 규제당국의 승인을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SK하이닉스가 단독 인수가 아닌 컨소시엄 구성으로 인수를 추진하는 것도 엔비디아의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함이다. 사실 SK(034730)는 마음만 먹으면 독자적으로도 ARM의 인수가 가능한 수준의 재무 여력을 갖추고 있다. 나이스신용평가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SK의 현금성자산은 19조508억원, 유형자산은 56조4406억원 수준이다. 같은 기간 SK하이닉스의 현금성자산은 8조6725억원 정도다. 장동현 SK 대표이사 부회장이 “2025년까지 투자재원 46조원을 마련하겠다”라고 밝힌 만큼, 업계에서는 SK가 무리해 동원할 수 있는 유동자산이 50조원에 달할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ARM 인수의 관건은 자금력이 아닌 ‘독점 우려의 해소’다. 김양팽 산업연구원 전문연구원은 <IB토마토>와의 통화에서 “SK가 각기 다른 국적의 기업을 모아 컨소시엄을 구성하는 것이 독점 우려를 풀고 인수 가능성을 키우는 데에 유리할 것”이라고 전했다. 거대 반도체 기업 한, 두 곳과 손잡는다고 해서 공정거래 당국과 IT기업들의 반대를 뚫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분석이다. 실제로 영국 정부는 국방 문제까지 언급하며 특정 반도체 기업의 ARM 단독 인수에 반대한 것으로 알려졌다. 따라서 미국·유럽·대만·일본 등의 여러 반도체 기업과 손을 잡는 것이 현실적인 방안이라는 설명이다.  
 
김 연구원은 “미국 중심의 첨단 산업 공급망 구성이 점차 강해지는 것을 고려할 때, 서방 우호국의 기업을 중심으로 컨소시엄이 꾸려질 가능성이 크다”라고 전했다. 현재 업계에서 보는 가장 유력한 컨소시엄 참여자는 인텔이다. 인텔은 지난해 3월 반도체 위탁 생산(파운드리)을 재개한다고 밝혔고, SK하이닉스와는 낸드사업부 매각 등으로 원만한 관계를 쌓아왔기 때문이다. 퀄컴과 삼성전자도 후보에 올랐다. 손정의(일본명 손 마사요시) 소프트뱅크 그룹 회장은 엔비디아로의 매각 불발 이후 현재 ARM의 미국 나스닥 상장을 추진하고 있는데, 퀄컴은 지난해 엔비디아의 ARM 인수에 반대하면서 ‘ARM이 상장하면 투자할 의향이 있다’라고 언급했다. 이에 따라 퀄컴을 고객사로 두고 있고, 시스템반도체 부문 강화를 강력하게 추진 중인 삼성전자도 ARM 인수 컨소시엄에 발을 담글 가능성이 있다는 예측도 있다. 
 
인텔·퀄컴·삼성전자 등 쟁쟁한 기업들로 다국적 컨소시엄을 꾸린다고 해도 넘어야 할 산은 여전히 높다. 중국이 버티고 있기 때문이다. 김 연구원은 “현재 미국과 중국이 첨단 산업 분야에서 대립을 이어오고 있어, 서방 우호국 중심의 ARM 인수 컨소시엄이 만들어진다면 중국의 반대에 직면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특히 정치적으로 갈등이 큰 대만의 기업이 컨소시엄에 참여할 경우, 중국 공정거래 당국의 승인은 더욱 어려워진다. 
 
이처럼 극복해야 할 문제가 많다는 점을 들어, 일각에서는 SK하이닉스의 ARM 인수 의지가 그리 크지 않을 수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그러나 새로운 각자 대표이사로 반도체 제조·기술 전문가 곽노정 사장을 선임하고, 서강대학교에 ‘시스템반도체공학과’를 만드는 등 최근 SK하이닉스의 시스템반도체 강화 행보로 미루어볼 때, 시간이 걸리더라도 ARM 인수를 추진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 업계의 중론이다.
 
컨소시엄 형태로 인수할 경우 인수 효과가 떨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김 연구원은 이에 대해 “앞으로 시스템반도체 시장이 더욱 커질 것이므로, 일단은 적은 지분으로라도 연결고리를 만들어 가격 등 협상에서 유리한 입지를 선점하는 것이 중요하다”라고 강조했다.
 
김성훈 기자 voice@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