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판값 인상 조짐…조선 3사, '실적 공포' 다시 스멀스멀
러시아·우크라이나 발 원자잿값 급등에 올해 가격 소폭 인상 전망
철강 가격 고려한 수주물량 확보로 영업실적 개선 가능성도
공개 2022-03-15 08:50:00
 
[IB토마토 김창권 기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한 물류대란 속에 수주 릴레이를 이어가던 조선업계에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지고 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따른 원자잿값 폭등이란 변수가 생기면서 난감한 상황에 처했기 때문이다. 당장 올 상반기부터 철강사와 후판 가격을 놓고 협상에 나서고 있지만, 지난해와 비슷한 수준에서 협상이 이뤄진다면 실적 개선을 기대하긴 어려울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현대미포조선이 건조한 LPG운반선의 시운전 모습 (사진=한국조선해양)
 
13일 현대중공업(329180)그룹 한국조선해양(009540)은 총 2900억원 규모의 선박 5척을 수주하는데 성공했다고 밝혔다. 이는 아시아·오세아니아 선사와 2만2000입방미터(㎥)급 LPG운반선 1척, 2800TEU급 컨테이너선 4척에 대한 건조 계약이다.
 
이날 삼성중공업(010140) 역시 유럽 지역 선사로부터 총 6091억원 규모의 7000TEU급 컨테이너선 4척을 수주했다고 밝혔다. 이를 통해 삼성중공업은 이번 계약을 포함해 올해 들어 총 8척, 13억 달러를 수주해 목표 88억달러의 15%를 달성했다.
 
이처럼 국내 조선업계가 상반기 들어 신규수주에 적극적으로 나서면서 올해 목표 예상치보다 더 높은 수주실적을 달성할 것이란 전망도 나오고 있다. 에프앤가이드 컨센서스에 따르면 한국조선해양은 올해 1분기 영업손실 20억원으로 적자 폭을 줄일 것으로 전망됐다. 삼성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042660) 역시 각각 영업손실 485억원, 393억원을 기록하며 전분기 대비 적자 폭이 감소할 것으로 봤다.
 
지난해 조선 3사는 후판 가격 급등에 따른 공사손실충당금을 설정하면서 대규모 적자를 기록했다. 지난해 한국조선해양은 1조3848억원, 삼성중공업은 1조3120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대우조선해양도 1조3000억원에 가까운 영업손실을 기록한 것으로 추정된다.
 
선박 건조 비용의 20%를 차지하는 조선용 후판(두께 6㎜ 이상의 강판) 가격은 2020년만 해도 톤(t)당 7~80만원 선에서 협상이 진행돼 큰 무리가 없었지만, 중국의 수출 물량 감소와 원자잿값 인상이 지속되자 지난해 철강 가격 정상화를 요구하며 철강업체들이 가격 인상을 단행하면서 2021년 8월경 115만원 수준에서 후판 가격 협상이 이뤄진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후판 가격이 두 배 가까이 인상되자 조선업체들이 공사손실충당금을 쌓으면서 대규모 적자행진이 이어졌다. 다만 조선업 특성상 당장 후판 가격이 인상된다고 해서 이를 건조비용에 포함 시킬 수 없었던 만큼 이전 수주물량에 대한 손실이 불가피했던 것으로 파악된다.
 
한명수 삼성증권 연구원은 “대우조선해양의 경우 올해 이익전망을 유지하겠지만, 최근 원자재 가격 강세와 하반기 후판조달 가격에 대한 가정을 감안하면 추가 충당금 발생 가능성이 존재한다”라며 “러시아 선주로부터 수주한 물량에 대한 불확실성도 존재해 프로젝트가 연기되거나 취소될 경우 매출전망이 하향될 수도 있다”라고 전망했다.
 
문제는 올해도 선박 수주가 이어지는 가운데 철강업체들과 상반기 후판 가격 협상에 나서고 있지만,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따른 원자재 가격이 또다시 급등하는 상황에서 철강사들에게 가격 인하를 요구하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한국자원정보서비스(KOMIS)의 광물가격 현황을 보면 철광석 가격은 지난 4일 기준 톤(t)당 145.14달러에 거래되면서 올해 1월보다 16% 넘게 올랐다. 또한 철강재 생산에 들어가는 유연탄 가격도 4일 기준 t당 172.1달러에 거래돼 같은 기간 37%나 폭등했다.
 
철강업계에 따르면 현대제철(004020)은 철근 가격을 지난달 t당 2만9000원 인상한 데 이어 이달에도 3만1000원 올리는 등 2개월 연속 인상해 t당 102만2000원에 육박하고 있다. 세아베스틸(001430)도 지난 7일 출하분부터 특수강 제품에 대해 t당 최대 15만원을 올려 원가 인상분을 반영했다. 
 
철광석 가격 현황 (사진=한국자원정보서비스)
 
이 같은 상황에서 국내에서 가장 많은 철강재를 생산하고 있는 포스코(005490)가 향후 조선사와의 후판 가격 협상에서 중요한 키를 쥐고 있는 만큼 가격 인상을 단행할지가 관심사로 꼽히고 있다. 철강업계는 올해 초부터 조선사들과 협상을 진행 중인데, 원재료 추이와 조선업계 시장 상황을 고려한 인상안을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해 포스코 관계자는 <IB토마토>에 “아직 협의 진행 중인 상황이며 구체적인 가격은 공개가 불가하다”라고 말했다.
 
다만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전 세계 철광석 매장량의 10% 이상을 보유한 나라로 전쟁이 지속되면서 원재료 가격이 급등하고 있는 상황에서 철강사들이 요구하는 후판 가격 인하를 맞춰주긴 어려울 것으로 보여 동결이나 소폭의 인상 가능성이 높다.
 
그럼에도 조선업계는 올해 물동량 증가 등의 이유로 수주 물량이 증가하고 있다는 점에서 실적개선 가능성도 바라보고 있다. 클락슨리서치에 따르면 올해 전 세계 LPG선 발주량은 54척, 내년 57척 등으로 예상되며, 4만 ㎥ 이하 중소형 LPG선 위주의 발주가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과거 수주물량이 부족해 비교적 낮은 금액으로 수주에 나섰던 상황에서 후판 가격이 급등해 대규모 충당금을 쌓아 손실이 발생했다”라며 “지금은 시장에서 수요가 증가하고 있는 만큼 후판 가격 등을 반영한 수주로 목표 실적 달성과 더불어 영업실적 개선도 기대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김창권 기자 kimck@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