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일렉, GE와 손잡은 속내는…부유식 해상풍력·태양광까지
12㎿ 대형 터빈 개발로 경쟁력 확보···발전효율↑
현대중공업과 시너지···'1GW당 6조' 부유식 풍력발전 협력
공개 2022-03-04 08:50:00
[IB토마토 김성훈 기자] 현대중공업그룹(현대중공업지주(267250))의 전력기기·에너지솔루션 계열사인 현대일렉트릭(267260) 미국의 제너럴 일렉트릭(GE)과 손잡고 우리나라 해상풍력 시장에 출사표를 던졌다. 일각에서는 이미 경쟁이 치열한 국내 풍력발전 시장에 진입하는 것에 대해 회의적인 목소리도 나오지만, 현대일렉트릭은 기존 진출 업체와는 다른 형태로 경쟁력을 확보하겠다는 입장이다. 업계에서는 현대일렉트릭과 GE가 풍력을 넘어 다른 신재생에너지 사업까지 함께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조석 현대일렉트릭 대표와 조세핀 포드(Josephine Ford) GE 리뉴어블에너지 전략 마케팅 총괄이 16일 해상풍력 터빈 관련 업무협약을 맺고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사진=현대일렉트릭
 
28일 업계에 따르면 현대일렉트릭은 최근 미국 GE 리뉴어블에너지(Renewable Energy)와 ‘해상풍력 터빈 제조·사업진출을 위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GE 리뉴어블에너지는 미국 제너럴일렉트릭(GE)사의 에너지 부문 자회사다.
 
글로벌 대기업과 함께한 야심찬 선전포고에도 불구하고, 업계 일각에서는 현대일렉트릭의 국내 해상풍력 진출에 대해 우려를 나타낸다. 해상풍력 시장의 경쟁이 이미 치열한데다, 기존 풍력발전 사업자들의 점유율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현재 국내 풍력발전 시장은 코오롱글로벌(003070)SK디앤디(210980)가 1위 싸움을 벌이고 있으며, 두 기업의 점유율을 더하면 50% 가까이 된다. 
 
특히 해상풍력발전의 경우 건설사들이 신규 사업자로 뛰어들면서 레드오션이 되고 있다. 대우건설은 SK디앤디·씨앤아이레저산업 등과 240㎿ 규모의 ‘굴업도 해상풍력발전사업’에 대한 공동 개발 협약을 체결했다. 3사는 SPC를 설립해 해상풍력 발전 시설을 건설하고, 2028년 상업운전을 시작할 계획이다. 대우건설은 육상 풍력발전사업도 적극적으로 진행 중인데, 강원도 영월군 상동읍에는 영월에코윈드 풍력발전단지를 건설하고 있다. SK에코플랜트도 4600억원을 투자해 해상풍력터빈 하부구조물 제작기업 ‘삼강엠앤티’ 경영권을 확보하며 해상풍력 시장 진출을 알렸다. 
 
현대차(005380)그룹 계열사 현대엔지니어링은 해상풍력 사업을 위해 글로벌 녹색에너지 개발·투자 전문기업 맥쿼리 그린인베스트먼트그룹(GIG)과 협력한다. GIG가 울산·전남·부산 등에서 개발 중인 해상풍력 발전사업에 참여하는 형태로 사업을 추진할 방침이다. 현대건설은 해상풍력 하부구조물 제작 담당 자회사 현대스틸산업을 통해 오는 2030년까지 국내 해상풍력 발전 시장에서 점유율 25%를 달성하겠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한화건설도 지난해 풍력사업실을 새로 만들고 해상풍력 사업에 발을 담갔다. 현재 국내 최대 규모인 400㎿급 전남 신안 우이 해상풍력 사업 개발을 주관하고 있고, 강원 양양 수리·충남 보령 녹도 등에서 총 3조9000억원 규모의 사업을 진행 중이다. 현재 국내 1위 풍력발전 사업자인 코오롱글로벌도 400㎿ 규모의 '완도 장보고 해상 풍력단지'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이처럼 경쟁이 치열한 상황에서도 현대일렉트릭은 사업에 대한 자신감을 보인다. 명확한 차별화로 시장을 공략하겠다는 것이다. 현대일렉트릭이 GE와 손잡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우선 현대일렉트릭은 이번 MOU를 통해 우리나라의 지리적·환경적 특성에 최적화된 12~15㎿급 해상풍력 터빈을 제작할 계획이다. 풍력발전은 터빈의 블레이드(풍력발전기 날개) 크기가 클수록 발전효율과 발전량이 증가하는데, 대형 터빈이 상용화된 유럽과 달리 국내 기술력은 5㎿급에 머무르고 있다. 국내에서 해상풍력터빈 기술력이 가장 뛰어나다고 알려진 두산중공업이 최근 실증을 시작한 터빈도 8㎿급이다. 반면 유럽은 2019년에 이미 7.2MW의 터빈이 상용화됐다. 풍력발전 업계에서는 해상풍력 터빈의 용량이 2025년에는 10~12㎿까지 커질 것으로 본다. 현대일렉트릭 측은 “자사가 보유한 에너지솔루션·전력기기 분야 기술력에 GE 리뉴어블에너지의 대형 풍력터빈 제조 노하우를 더해 대형 해상풍력 터빈 제작에 나설 것”이라고 전했다. 
 
현대중공업의 부유식 해상풍력발전 모델. 이미지=현대중공업 유튜브
 
현대중공업(329180)과의 협업으로 ‘부유식’ 해상풍력발전 사업에 나설 수 있다는 점도 현대일렉트릭의 차별화 포인트다. 부유식 해상풍력발전은 수심이 50m 이상의 먼바다에서 이루어지는 풍력발전을 말한다. 해상풍력발전기가 최고의 효율을 낼 수 있는 평균 초속 7~8m의 바람이 부는 곳은 대부분 수심 50m 이상의 먼바다다. 부유식 해상풍력발전의 경우 해안 경관 훼손·어업 방해 등으로 인한 주민 반대에 부딪히지 않아도 된다는 장점도 있다. 김미희 한국기업평가 수석연구원은 “해상 풍력발전사업을 계획했어도 주민 반대로 무산되거나 지연되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라고 말했다.
 
이 같은 강점에도 불구하고 부유식 해상풍력발전은 먼바다의 변화무쌍한 기후를 극복해야 하기 위한 고도의 기술력이 필요해서 국내에서는 아직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코오롱글로벌도 부유식 해상풍력발전을 추진했지만, 비용·안정성 등의 문제로 지금은 진출을 보류한 상황이다.
 
주목할 점은 현대중공업이 자체 개발한 부유식 해상풍력발전기는 지난해 프랑스의 품질인증기관 브루베리타스(BV)에서 설계인증(AIP)을 획득했다는 것이다. 설계인증을 받았다는 것은 새로운 기술에 대한 안전성을 검증받았다는 의미다. 현대중공업의 부유식 해상풍력발전기는 터빈과 로터 등을 지지할 수 있는 하부구조물로, 무게만 1000t이 넘는다. 풍력발전기를 부표처럼 바다 위에 띄워주는 역할을 한다. 말 그대로 ‘떠 있는’ 풍력발전소를 가능케 한다. 오랜 기간 반잠수식 원유생산설비(FPS) 등 해양플랜트를 건조한 노하우와 조선업을 통해 쌓아온 해양·기후 데이터가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현대중공업은 관계자는 “2024년 제주도 인근 해상에 설치한 뒤 1년간 시운전을 거쳐 2025년 가동을 목표로 하고 있다”라고 전했다. 울산시가 2030년까지 추진하는 서울시 두 배 면적의 부유식 해상풍력발전 단지 사업에도 참여한다. 전체 예상 발전량은 9GW로 원자력발전소 9기와 비슷한 규모다. 업계 관계자들은 부유식 해상풍력발전이 발전효율에 초점을 맞추고 있어, 현대중공업의 프로젝트에 계열사인 현대일렉트릭의 대형 터빈이 활용될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부유식 해상풍력발전소의 경우 1GW 규모를 구축하는 데에 6조원가량이 필요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현대일렉트릭의 실적 개선에도 큰 도움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번 현대일렉트릭과 GE MOU의 목적은 풍력 시장 공략이지만, 전문가들은 이 MOU를 기점으로 현대중공업그룹과 GE가 태양광·수소 사업도 함께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현대중공업그룹 계열사 현대에너지솔루션(322000)은 600MW 규모의 셀·모듈 공장을 갖춘 태양광 사업자다. 현재 유럽 태양광 시장에 진출해 글로벌 태양광 시장을 공략을 위해 노력 중이다. GE 역시 4.4GW 이상의 태양광 수주잔고를 보유하고 있으며, 3GW 이상의 태양광 인버터를 설치한 경험이 있어 시너지를 내기에 충분하다는 분석이다. 현대중공업그룹은 2030년까지 수소 가치사슬을 구축하겠다는 목표를 발표했는데, GE도 뉴욕주와 함께 그린수소 실증사업에 나서는 등 수소 생산과 활용 사업 등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학계 관계자는 “부유식 풍력발전의 경우 SK에코플랜트 등 경쟁자가 없는 상황은 아니지만, 이번 GE와의 MOU로 현대일렉트릭과 현대중공업그룹은 신재생에너지 분야에서 점유율을 높일 초석을 쌓은 것으로 보인다”라고 설명했다.
 
김성훈 기자 voice@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