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중고' 갇힌 금호석화…반덤핑·수익성 우려·경영권 분쟁까지
미국 상무부, 19.2% 반덤핑 관세 예비판정···이달 중 결론
NB라텍스 가격 하락에 올해 금호석화 영업이익 29% 하락 추정
공개 2022-02-21 08:50:00
[IB토마토 김성훈 기자] 금호석유(011780)화학(금호석화)이 '3중고'에 막혀 활력을 잃을 위기에 놓였다. 실적 개선을 이끌던 NB라텍스의 판매 가격이 하락하고 있는 데다, 미국 정부에서 반덤핑관세까지 예고하며 시름이 깊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한동안 잠잠하던 박철완 전 상무까지 등장해 가처분 소송을 걸면서 또 다시 경영권 분쟁이 재연될 분위기다.
 
17일 한국무역협회 워싱턴지부에 따르면 미국 상무부는 지난달 27일, 금호석유화학과 LG화학(051910)에 대한 반덤핑관세 예비판정을 발표했다. 관세 부과 예정 제품은 ‘아크릴로니트릴 부타디엔 고무(NBR)’로, 미국 상무부는 “한국산 NBR이 2020~2021년 시장가격보다 낮은 가격으로 미국에 유입되어 판매되면서 미국 관련 산업에 피해를 줬다”라며 LG화학 35.21%·금호석유화학 19.2% 등의 반덤핑관세 예비판정을 내렸다. 최종 판정은 이달 중 나올 예정이며, 오는 4월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의 산업 피해 확인 절차를 거쳐 반덤핑관세율이 결정된다.
 
NBR은 기름과 열에 대한 저항력이 강해 △호스 △오일·가스 구성품 △시공단열재 △접착제 △매트 등 다양한 제품에 활용된다. 국산 NBR의 미국 수출 규모는 약 400억원 수준이며, 금호석화 역시 지난해 총매출의 36% 이상이 NBR이 포함된 합성고무 부문에서 나왔다. 이 같은 상황에서 20%에 가까운 고율의 반덤핑관세가 실제로 부과되면 수출가격 경쟁력 약화는 불가피하다. 금호석화 관계자는 “예비판정 이후 최종 판정이 나오기까지 별도의 심사가 필요한 만큼, 미국 조사 당국의 자료 요청 등에 성실히 협조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금호석화가 세계시장 점유율 1위를 차지하고 있는 NB라텍스의 판매 가격이 떨어지고 있다는 점도 올해 실적에 대한 우려를 키우는 요인이다. NB라텍스는 합성고무 소재의 일종으로, 강도가 뛰어나 병원·음식점 등에서 많이 쓰는 ‘니트릴 장갑’의 핵심 원료다. 처음 코로나19가 확산했을 때는 위생 관념이 강해지고, 검사와 백신 접종 등에 사용하는 니트릴 장갑의 판매가 치솟으면서 원료인 NB라텍스 가격도 급등했다. 그러나 관련 업체들의 증설 등으로 이후 NB라텍스의 공급도 증가해 시장 상황이 나빠졌다.
 
 
 
업계에 따르면 NB라텍스 가격은 지난해 4분기 1t당 평균 1298달러를 기록했다. 같은 해 2분기 평균 가격이 1t당 2101달러였던 것과 비교하면 반년 새 38% 이상 하락한 것이다. 국내 NB라텍스 수출량도 매년 두 자릿수 이상의 성장을 해왔지만, 지난해에는 76만t으로 전년도보다 10% 줄어든 것으로 분석된다. 증권업계 등에서 금호석화의 올해 실적을 염려하는 이유다. 실제로 금융정보업체 에프엔가이드에 따르면 금호석화의 올해 4분기 실적은 전년도와 비교하면 51%가량 올랐지만, 증권사 추정치보다는 14% 이상 낮았다. NB라텍스 가격 하락이 발목을 잡았다는 평가다. 주요 증권사의 올해 금호석화 영업이익 추정치도 지난해보다 33.6% 적다.
 
NB라텍스 가격이 추락하는 가운데 금호석화가 증설에 나섰다는 점도 우려를 키운다. 금호석화는 지난해 말 NB라텍스 관련 증설을 통해 연산 71만t의 생산 능력을 확보했고, 오는 2023년까지 2560억원을 투자해 연간 24만t을 추가로 확대할 방침이다. 이를 통해 장기적으로는 연산 142만t까지 생산 규모를 키울 예정이다.
 
백영찬 KB증권 연구원은 “작년 4분기 국내 수출 기준 NB라텍스 가격이 3분기보다 32.3% 하락하면서 합성고무 사업 전체의 수익성 하락을 일으킨 것으로 보인다”라며 “NB라텍스는 지속적인 신·증설과 라텍스 장갑의 수요증가율 둔화로 지난해보다 수익성이 하락할 것”이라고 판단했다.
 
물론 NB라텍스의 가격이 저점을 찍고 반등할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코로나19로 니트릴 장갑을 비단 병원에서만 쓰지 않고 식당·가정·학교 등 다양한 곳에서 사용하고 있어 수요 확대가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LG화학도 올해 상반기까지 국내 여수공장과 중국 공장의 생산 규모를 기존 연산 27만t에서 49만t으로 늘릴 계획이고, 말레이시아에서도 합작 공장을 신설해 2023년부터 연 24만t을 추가 생산할 예정이어서 NB라텍스의 가격을 반등시킬 만큼의 수요가 확보될지는 미지수다.
 
금호석화의 1분기 실적이 하락할 경우, 최근 다시 움직이고 있는 박철완 전 상무 측에 힘이 실릴 수 있다는 점도 부담이다. 박철완 전 상무는 지난 9일 주주제안을 발송하면서 경영권을 포기하지 않았음을 드러냈다. 금호석화의 현재 지분은 △박찬구 회장·특수관계인의 지분율은 14.9% △박철완·특수관계인의 지분율은 10.16% △국민연금 6.67% △외국인 19.85% 등으로 구성된다.
 
작년 3월 기자화견을 연 박철완 전 금호석유화학 상무. 사진/뉴시스
 
 
‘3%룰’을 적용하면 박 전 상무의 의결권 지분율은 지난해보다 커진 상태다. 3%룰은 상장사의 감사·감사위원을 선임할 때 주요 주주가 의결권이 있는 발행 주식의 최대 3%만 행사할 수 있도록 제한한 규정이다. 작년 8월, 박 전 상무가 세 누나에게 각각 15만2400주씩(0.5%씩)을 증여하면서 지난해 주주총회 당시보다 1.5%의 의결권 지분을 확보했기 때문이다. 세 누나가 박 전 상무의 아군으로 경영권 분쟁에 가세하면 시댁인 재벌가의 도움으로 박 전 상무를 밀어줄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장녀 박은형씨는 김선협 아도니스 부회장과, 차녀 박은경씨는 장세홍 한국철강 사장과 결혼했다. 삼녀 박은혜씨도 허재명 일진머티리얼즈 대표와 혼인했다.
 
박 전 상무는 최근 금호석화를 상대로 가처분 신청까지 내며 의결권 분쟁을 본격화한 상태다. 금호석화는 작년 OCI와 약 315억원 어치의 자사주를 상호교환하기로 했는데, 박 전 상무는 이 교환이 현 경영진의 '경영권 강화'를 위한 것이라며 서울중앙지방법원에 'OCI가 취득한 금호석화 주식에 대한 의결권 행사를 금지해달라'는 가처분 소송을 제기했다. 금호석화 측은 해당 자사주 교환이 금호석화 자회사 금호피앤비화학과 OCI 말레이시아 자회사 OCIMSB의 ECH(에피클로로히드린) 합작법인 설립에 따른 것이며, 문제의 소지가 없다는 입장이다.
 
업계 관계자는 “이번 가처분 소송 자체는 금호석화에 큰 영향이 없을 것으로 보이지만, 앞으로 NB라텍스 가격 하락 등의 영향으로 실적이 떨어질 경우 박 전 상무의 활동이 더욱 활발해져 부담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라고 설명했다.
 
김성훈 기자 voice@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