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위 ‘실트론 과징금' 16억원…최태원 SK 회장 고발은 면해
공정위 “합리적 검토 없이 입찰 참여 포기해 사업기회 제공”
SK 측 “충실히 소명했음에도 납득하기 어려운 제재 결정”
공개 2021-12-22 16:11:20
[IB토마토 김창권 기자] 공정거래위원회가 최태원 SK(034730) 회장이 SK실트론(전 LG실트론) 지분 일부를 개인 자격으로 인수한 것과 관련해 사익편취 혐의 가운데 ‘사업기회 유용’으로 보고 과징금을 부과하고 별도의 검찰 고발은 진행하지 않기로 했다. 그러나 SK 측은 이번 제재에 대해 납득하기 어려운 결과라고 일축했다.
 
22일 공정위는 기업 집단 SK 소속 회사 SK(주)가 최 회장에게 개인 명의로 SK실트론 지분 일부를 매입할 기회를 제공한 행위가 사업기회 유용으로 판단하고 SK와 최 회장에 각각 8억원 과징금과 시정명령을 부과했다.
 
최태원 SK 회장이 15일 오전 SK실트론 지분 인수 과정에서 발생한 사익편취 논란에 대해 직접 소명하기 위해 전원회의가 열리는 세종시 정부세종청사 공정거래위원회에 들어서고 있다. 사진/뉴시스
 
앞서 SK는 2017년 1월 반도체 소재업체인 LG실트론 지분 51%를 주당 1만8139원에 인수해 경영권을 확보했다. 이후 SK는 실트론에 대해 주주총회 특별결의 요건(3분의 2 이상)을 충족하고 유력한 2대 주주가 출현하는 상황을 막기 위해 추가로 주식을 인수할 필요성이 있다고 판단해 2017년 4월 우리은행 등 채권단과 사모펀드가 보유한 잔여주식 49% 중 19.6%를 추가 매입해 총 70.6%를 취득했다.
 
다만 남아있는 SK실트론의 주식 29.4%를 최 회장이 인수하는 과정에서 SK가 SK실트론의 잔여 지분 100%를 모두 사들일 수 있었음에도 합리적인 이유 없이 상당한 이익이 예상되는 이 잔여 주식 취득 기회를 최 회장에게 넘겨 사업기회 유용 금지를 위반했다고 공정위는 판단했다.
 
특히 공정위는 SK가 SK실트론의 잔여 지분 29.4%에 대해서는 추후 결정하기로 했는데, 그해 4월 최 회장이 인수 의사를 내비치자 SK가 이사회의 심의를 통한 합리적 검토 없이 입찰 참여를 포기함으로써 사업기회를 특수관계인인 최 회장에게 제공했다는 것이다.
 
공정위는 SK가 자신의 사업기회를 지배주주가 취득하려 하는 이익충돌 상황에서 상법상 의사결정 절차를 준수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공정거래법에는 의사회 의결 조항이 없지만, 상법에 따르면 회사가 사업기회를 합리적으로 거부한 것으로 인정되기 위해서는 이사회 3분의 2 이상 승인을 얻어야 한다.
 
이외에도 공정위는 입찰을 주관한 우리은행 측과 비공개 협상을 벌이고, 최 회장의 잔여 지분 인수 계약체결 과정에서 SK가 직·간접적으로 지원한 점도 부당했다고 판단했다. 이사회 승인이나 정당한 대가 지급 없이 실트론 잔여 주식을 취득하면서 이익의 규모가 상당한 점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이익의 부당성이 인정된다고 봤다.
 
상증세법에 따를 경우 최태원이 취득한 주식 가치는 2017년 대비 2020년 말 기준 약 1967억원이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따라 공정위는 ‘특수관계인에 부당한 이익 제공 금지’ 등을 규정한 공정거래법에 따라 SK와 최 회장에게 시정명령과 함께 각각 8억원씩 총 16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하기로 했다. 앞서 일각에서는 공정위가 최 회장을 검찰에 고발할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됐지만, 과징금 부과로 마무리됐다.
 
공정위 측은 “사업기회를 직접 제공하는 방식이 아니라 회사의 이익을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는 자가 사업기회를 포기해 제공 객체가 이를 이용토록 하는 ‘소극적 방식의 사업기회 제공행위’를 처음으로 제재했다는 점에서 중요성이 크다”라고 강조했다.
 
최태원 SK 회장의 실트론 주식 취득거래 개요. 사진/공정거래위원회
 
이번 결정에 대해 SK는 “이번 일로 국민과 회사 구성원들에게 심려를 끼쳐드려 송구스럽다”면서도 “SK실트론 사건에 대해 충실하게 소명했음에도 불구하고 납득하기 어려운 제재 결정이 내려진 데 대해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라고 밝혔다.
 
SK는 “지난 15일 전원회의 당시 SK가 특별결의 요건을 충족하는 충분한 지분을 확보한 상태에서 SK실트론 잔여 지분을 추가로 인수하지 않은 것은 ‘사업기회 제공’으로 단정하기 어렵다는 의견 등이 이번 결정과정에 제대로 반영되지 않아 안타깝다”라고 강조했다.
 
이어 “잔여 지분 매각을 위한 공개경쟁입찰은 해외 기업까지 참여한 가운데 공정하고 투명하게 진행했다고 밝힌 참고인 진술과 관련 증빙 등이 전혀 고려되지 않았다”라고 설명했다.
 
SK는 “공정위의 오늘 발표 내용은 전원회의 심의 과정에서 확인된 사실관계와 법리판단을 제대로 반영하지 않고, 기존 심사보고서에 있는 주장을 거의 그대로 반복한 것으로 이는 공정위 전원회의의 위상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라고 지적했다.
 
SK관계자는 <IB토마토>에 “아직 의결서를 받아 보지 않아 구체적인 답변은 어렵지만, 그간 설명해온 부분이 반영이 안된 것 같아 아쉽다”라며 “향후 사건을 면밀히 검토한 후 필요한 조치들을 강구한다는 게 공식적인 입장”이라고 말했다.
 
김창권 기자 kimck@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