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중공업, 통상임금 소송 파기환송…6000억대 지출 불가피
대법원 “신의칙 근거로 법정수당 청구 배척 안 돼”
공개 2021-12-16 16:24:16
[IB토마토 김창권 기자] 현대중공업(329180) 근로자들이 “정기 상여금도 통상임금에 포함된다”라며 그간 받지 못한 법정수당과 퇴직금 등을 지급해달라며 회사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 대법원이 법정수당 청구를 쉽게 배척해서는 안 된다며 근로자들의 손을 들어줬다. 이에 따라 관련 조선업계의 통상임금 산정과 수당 지급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어 작지 않은 파장이 예상된다.
 
16일 대법원 3부(주심 김재형 대법관)는 현대중공업 근로자 A씨 등 10명이 현대중공업을 상대로 낸 임금 청구 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패소 판결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부산고법으로 돌려보냈다.
 
현대중공업 울산 본사 조선3도크 전경. 사진/뉴시스
 
대법원은 “기업이 일시적 경영상 어려움에 처하더라도 사용자가 합리적이고 객관적으로 경영 예측을 했다면 그러한 경영상태의 악화를 충분히 예견할 수 있었다”라며 “향후 경영상의 어려움을 극복할 가능성이 있는 경우 신의성실의 원칙(신의칙)을 들어 근로자의 추가 법정수당 청구를 쉽게 배척해서는 안 된다”라고 판시했다.
 
현대중공업은 근로자들에게 1년 중 짝수 달에 100%씩 총 600%, 연말에 100%, 설·추석 명절 50%씩을 더해 총 800%의 상여금을 지급해 왔다. 이에 원고인 해당 근로자들은 소장에서 지난 2012년 12월, 상여금 총 800%를 통상임금에 포함해 줄 것과 앞선 3년치를 소급해달라고 주장했고, 사측은 경영상 어려움 등을 들어 임금 추가분을 돌려줄 수 없다고 맞섰다.
 
9년 동안 이어진 재판의 쟁점은 신의칙이었다. 통상임금 확대에 따라 노동자에게 추가로 지급해야 할 임금으로 인해 기업에 중대한 경영상 어려움이 초래되거나 기업의 존립 자체가 위태로워진다면 민법의 대원칙인 신의칙을 위반한 것이므로 지급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앞서 1심은 상여금이 정기적·일률적으로 지급되는 고정 임금인 통상임금에 해당한다고 보고 이를 토대로 연장근로수당 등을 산정해야 한다며 근로자들의 손을 들어줬다. 반면 2심에서는 명절상여금(100%)을 뺀 정기·연말특별상여금 700%만 통상임금에 포함된다고 보면서도 신의칙 위반을 적용해 회사는 임금소급분을 지급하지 않다고 된다고 판단했다.
 
대법원 판결로 현대중공업이 해당 근로자들에게 지급해야 할 4년 6개월(2009년 12월∼2014년 5월)치 통상임금 소급분의 총 규모는 4000억~6000억원대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이와 관련해 재계에서는 “기업경영의 불확실성이 높아질 것으로 우려된다”라는 입장을 밝혔다. 현대중공업은 올해 3분기 누적 3200억원 적자를 기록하는 등 기업경영이 매우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이번 판결에서 신의칙을 적용하지 않아 통상임금 관련 소모적인 논쟁과 소송이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는 이유에서다.
 
먼저 전경련 산하기구인 한국경제연구원은 이날 논평을 통해 “코로나19 재확산에 따른 경기회복 지연, 대내외 경영환경 악화 등 국가 경쟁력이 약화된 상황에서 신의칙을 인정하지 않은 금번 판결로 예측치 못한 인건비 부담이 급증할 것”이라며 우려를 표했다.
 
추광호 한경연 경제정책실장은 <IB토마토>에 “통상임금 소송이 기업 경쟁력 약화로 이어지지 않으려면 임금협상 과정에서 노사 간 형성된 신뢰를 우선적으로 고려하고, 부가적으로 경영지표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해 경영상의 어려움을 판단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라고 설명했다.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도 “대법원은 사용자가 경영상태 악화를 충분히 예견할 수 있었다는 것을 근거로 기존 신의칙 판단 기준을 더욱 좁게 해석하며 부정했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누구도 예측할 수 없는 급변하는 경제환경을 기업의 경영자가 예측해 경영악화를 대응해야 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운 요구"라면서 "현실과 전혀 부합하지 않는 납득하기 어려운 판단으로 산업현장에 혼란과 갈등만 초래할 우려가 크다”라고 밝혔다.
 
김창권 기자 kimck@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