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석 가리기 시작된 IPO시장…유동성 한파에 판도 바뀌나
SM상선·시몬느·넷마블네오 등 가치 평가 저조 우려에 상장 철회
유동성 축소 기조에 기관 투심 약화·옥석 가리기 강화···"불확실성 증대"
반도체·인공지능 등 4차산업, 친환경 관련 기업은 수요예측 흥행
공개 2021-11-16 09:30:00
[IB토마토 김성훈 기자] 수십조원의 청약증거금이 몰리며 새로운 역사를 쓰던 기업공개(IPO) 시장에 찬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자산 매입 규모 축소(테이퍼링, Tapering)를 발표하며 유동성 장세가 저물고 있다는 판단 속에 대어로 꼽히던 기업들이 잇따라 상장을 철회했다. 그러나 이 같은 한파 속에서도 친환경·미래 기술 분야에서 역량을 보유한 기업들은 상장에 성공하며 옥석 가리기가 나타나고 있어 IPO 시장의 판이 바뀌고 있는 것 아니냐는 의견이 나온다.
 
12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넷마블네오’는 지난 4일 코스피 상장을 위한 예비 심사 신청을 철회했다. 지난 6월 한국거래소에 상장 예비 심사 신청서를 제출한 지 약 4개월 만이다. 같은 날 상장 예정이던 세계 1위 명품 핸드백 제조업자개발생산(ODM) 기업 ‘시몬느액세서리컬렉션(시몬느)’도 기관투자자 수요예측 종료 이틀 후인 지난달 21일 증권신고서를 철회했다. 하반기 IPO 기대주였던 삼라마이다스그룹(SM그룹) 해운 계열사 ‘SM상선’ 역시 확정 공모가 발표 예정일이던 지난 3일, IPO 추진을 잠정 연기한다고 전했다. 
 
이들 기업이 상장 철회 결정을 내린 것은 기업가치를 제대로 평가받기 어렵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넷마블네오는 기업가치가 1조원 이상 될 것으로 예상됐지만, 실적 저조 등으로 상장 시기를 미룬 것으로 알려졌다. 시몬느의 경우 수요예측에서 기관들의 신청이 배정주식수(460만3500주~627만7500주)에 미치지 못해, 기업가치 재고를 위한 시간을 갖기로 했다. SM상선 역시 기관투자자 대상 수요예측 성적표가 만족스럽지 못했다는 후문이다. 경쟁률이 두 자릿수에 그치고, 참여기관 대부분이 희망 가격 범위 하단보다 낮은 가격을 적은 것으로 전해졌다.
 
 
반면 이처럼 냉랭한 분위기 속에서도 양호한 수요예측 결과를 거두고, 상장에 성공한 기업들도 있다. 지난달 29일 상장한 ‘지앤비에스엔지니어링(382800)’은 앞서 진행한 기관 수요예측에서 공모가를 희망 범위 상단인 1만7400원으로 확정했다. 지난 1일 상장한 ‘엔켐’도 수요예측에서 밴드 최상단인 3만5000원을 20% 초과한 가격에 공모가를 결정지었다. 기관투자자 경쟁률은 1647:1이었다.
 
지난 10일 증시에 입성한 디어유(376300)비트나인(357880) 역시 수요예측 흥행을 맛봤다. 디어유는 수요예측에서 경쟁률 2001:1을 기록, 공모가도 밴드 최상단 2만4000원을 8% 초과한 2만8000원으로 결정했다. 비트나인의 경우 1662:1의 수요예측 경쟁률을 달성했고, 희망 범위 상단을 초과한 1만1000원에 공모가를 확정했다. 오는 17일과 18일 각각 상장을 앞둔 트윔과 바이옵트로도 수요예측을 무사히 마쳤다. 이들 기업은 모두 몸집이 크지도, 일반에 잘 알려지지도 않은 코스닥 입성을 목표로 한 회사였다. 
 
이처럼 기업의 규모와 브랜드 가치 등에서 밀리지 않는 기업들은 수요예측 흥행에 실패하고, 오히려 중소기업들이 상장에 성공한 것은 왜일까. IPO 업계에서는 주요 원인으로 기업의 성장성과 혁신성을 꼽는다. 업계 관계자는 “상장 철회에는 다양한 이유가 있지만, 최근의 양상을 보면 기업 규모와 이름만으로 상장에 성공하는 때는 지난 듯하다”라고 전했다. 그는 이어서 “유동성 강화로 투자에 조심스러운 모습을 보이는 기관투자자도 친환경이나 4차산업·미래 기술 관련 역량을 가진 성장성이 뛰어난 기업을 선호하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최근 미국 연준이 테이퍼링에 돌입하고 인플레이션이 확대되면서 유동성 축소 속도가 더욱 빨라질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는데, 이로 인해 불확실성이 커지고 투자심리도 약해지면서 기관들이 본격적으로 옥석 가리기에 나섰다는 것이다. 김필규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원은 “과거 테이퍼링으로 인한 전반적인 금리 상승은 주가에도 영향을 미쳐, 당시 한국과 미국의 주가가 크게 하락했다”라며 유동성 축소로 투심이 저하할 수 있음을 시사했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는 이날 경제동향 간담회에서 “알 수 없는 불확실성의 영역이 점차 확대되고 있다”라며 “예상보다 높은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당분간 지속할 것으로 보인다”라고 전망했다. 
 

 박상순 지앤비에스엔지니어링 대표이사가 독일 기업 CS클린솔루션과 제조업자개발생산(ODM) 계약을 맺고 기념 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사진/지앤비에스엔지니어링
 
실제로 기관투자자의 지지를 받아 상장에 성공한 기업들은 4차산업·친환경 관련 사업을 영위하고 있다. 지앤비에스엔지니어링은 반도체·디스플레이·태양광 패널·LED 등의 제조 공정에 필요한 친환경 장비를 만드는 기업이며, 엔켐은 이차전지 4대 핵심 소재 중 하나인 전해액을 생산한다. 글로벌 팬(fan) 메신저 서비스 ‘버블’을 운영하는 디어유는 메타버스 플랫폼으로서의 청사진을 제시했고, 비트나인은 빅데이터를 관리·활용할 수 있는 하이브리드 데이터베이스 관리시스템(DBMS)을 개발한 회사다. 트윔은 인공지능 검사장비를 개발하는 기업으로, 반도체·디스플레이·2차전지 등 제품의 불량을 검출해내는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를 만드는 데에 주력하고 있다. 바이옵트로 역시 반도체 부품 검사장비 제조 전문기업이다. 이날 상장한 지오엘리먼트도 반도체 제조장비 생산 기업으로, 희망 범위 상단을 15%가량 초과한 금액으로 공모가가 확정됐다.
 
최근 인공지능(AI) 발레 교육 프로그램 개발 소식을 알린 최준석 발레앤모델 대표는 “아직 IPO를 할 시점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여러 금융 기관으로부터 IPO 컨설팅 제의를 받고 있다”라며 “공모주 시장에 어렵다고 들었지만, 혁신 기술을 보유한 기업에는 오히려 기회가 될 수 있을 것 같다”라고 전했다.
 
기업분석업계 관계자는 “전통적인 제조업으로 양호한 수익을 내고 있다고 해도, 미래에도 경쟁력을 유지할 것이라는 확신을 줄 수 있는 혁신 요소가 필요한 시점”이라며 “IPO 시장의 양상이 조금씩 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라고 전했다. 
 
김성훈 기자 voice@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