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머티 품고 소재 강화 노리는 SK···소액주주들 ‘실망·허무’
소액주주들 “회사 잠재력 보고 투자했는데 이제 좀 성장하나 했더니 합병”
국민연금까지 더해도 소액주주 지분율 35.8%···'주식매수청구권 사용이 최선'
공개 2021-11-11 09:30:00
[IB토마토 김성훈 기자] ‘잠재력 믿고 기다렸는데 합병이라니 너무 허무하다.’ 한 SK머티리얼즈(036490) 주주의 한숨 섞인 토로다. ㈜SK(034730)는 신사업 투자 확대·인수합병을 통한 외형 확장 등을 위해 SK머티리얼즈와의 합병을 결정했지만, 상당수의 소액주주는 이에 대해 반대와 실망의 의견을 드러내고 있다. 그러나 현재 소액주주들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주식매수청구권을 사용하는 것뿐이다.
 
9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SK는 지난달 29일 이사회를 열고 SK머티리얼즈㈜와의 소규모합병을 승인했다. ㈜SK가 합병을 위한 주주총회를 열지 않은 것은 현행 상법은 소규모합병의 경우 이사회 결의로 주주총회를 대신할 수 있도록 명시하고 있고, 반대 의견이 총주식 수의 20%를 넘지 않았기 때문이다.
 
㈜SK는 SK머티리얼즈를 흡수하는 이유로 첨단 소재 부문의 경쟁력 제고를 꼽았다. 양사의 투자 재원과 사업 경쟁력을 통합해 기업가치를 높이고, 사업 주체를 일원화해 첨단 소재 분야에 대한 투자를 확대하겠다는 것이 SK 측의 설명이다.
 
 
실제로 SK머티리얼즈의 경우 반도체·배터리 소재 부문을 강화하며 두각을 나타내고 있지만, 재무적으로는 추가 투자 여력이 부족한 상황이다. 나이스신용평가에 따르면 SK머티리얼즈의 올해 상반기 기준 총차입금의존도는 62.1%·순차입금의존도는 57.6%로 신용평가사의 건전성 기준인 30%를 크게 웃돌고 있다. 
 
일각에서는 유동성 우려도 나왔는데, SK머티리얼즈가 1년 안에 갚아야 하는 단기성차입금은 상반기 기준 5187억원에 달하지만 현금성자산은 1001억원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기업이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는 자금을 의미하는 잉여현금흐름도 2차전지 소재 등에 대한 투자로 인해 같은 기간 –600억원을 기록하고 있어 추가 재원 확보가 필요한 상태다. 
 
  
이번 합병으로 ㈜SK 첨단 소재 사업 부문의 외형 확대와 자금 조달이 쉬워지는 것은 사실이다. SK머티리얼즈는 본사 외에도 7곳 정도의 자회사를 통해 반도체·배터리 소재 사업을 영위하고 있는데, 사업 역량 강화를 위해서는 자회사들에 대한 추가 투자와 인수합병 등이 중요하다. 그러나 기존의 지배구조 즉 SK머티리얼즈가 ㈜SK의 자회사인 형태에서는 SK머티리얼즈의 자회사들이 지주회사의 손자회사가 돼, 회사 확장에 제약이 생긴다. 국내 상법상 지주회사 체제에서 손자회사가 다른 회사를 자회사로 두려면 100% 지분을 확보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 경우 비용 등의 문제로 △인수합병 △기업공개(IPO) △합작사(JV) 설립 등이 어려워진다. 양사 합병 이후에는 기존 SK머티리얼즈의 자회사들이 ㈜SK의 자회사로 편입되기 때문에, 자금 조달과 사업 확대를 위한 선택지가 다양해진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SK E&S·SK이노베이션(096770) 등 지속적인 대규모 투자가 필요한 계열사들이 이미 존재하고 있어, 지주사 차원에서 계열 지원 부담을 줄이고 자회사의 역량을 키우기 위해서는 이번 합병이 최적의 선택이었던 것으로 보인다”라고 분석했다. 
 
이번 합병이 SK그룹과 계열사의 미래를 고려한 결정일 수 있지만, SK머티리얼즈 소액주주들에게는 결코 기쁜 일이 아니다. 합병으로 ㈜SK와 SK그룹의 가치는 높아졌지만, 자신들이 선택한 기업인 SK머티리얼즈는 사라지기 때문이다. 한 소액주주는 “기존 반도체 소재에 더해 배터리 소재에까지 투자하면서 성장에 대한 기대가 한층 커지고 있었는데 합병이라니 배신당한 기분”이라며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다. 
 
현재 주요 포털 등의 SK머티리얼즈 주주 게시판에는 주식매수청구권을 행사하겠다는 내용이 줄을 잇고 있다. 지금 시점에서 소액주주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주식매수청구권을 사용해 조금이라도 높은 가격에 SK머티리얼즈 주식을 처분하는 것뿐이기 때문이다. 주식매수청구권이란 말 그대로 주주가 회사에 자신이 보유한 주식을 되사달라고 요구할 수 있는 권리로, 주로 회사가 주주에 불리한 경영상의 의사결정을 내렸다고 판단될 때 사용한다. SK머티리얼즈는 지난 8월 합병 발표와 함께 주식매수 청구가격을 41만5751원으로 산정했는데, 주주가 주식매수 청구를 요구하면 회사는 반드시 주식매수 청구가격대로 주주가 보유한 주식을 되사야 한다. 9일 종가 기준 SK머티리얼즈의 주가는 37만8000원으로, 주식매수 청구가격보다 3만7751원 적다. 이번 합병의 경우 SK머티리얼즈가 사라지는 흡수합병이기에, 주식매수청구권을 사용하는 주주는 0.5%의 거래세만 내면 된다.
 
(주)SK와 SK머티리얼즈의 합병 계약서 내용 발췌. 자료/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
 
일각에서는 소액주주들이 뭉쳐서 모두 주식매수청구권을 행사하면 합병이 무산될 수 있지 않겠느냐는 의견도 나온다. 실제로 ㈜SK와 SK머티리얼즈의 합병 계약서에 따르면 SK머티리얼즈 주주들의 주식매수 청구액이 8000억원을 넘을 경우, 합병 계약이 해지될 수 있다. 그러나 이는 실현 가능성이 적은데, 청구액이 8000억원을 넘으려면 전체 지분의 20% 이상이 소액주주 청구권을 행사해야 하지만 국민연금의 지분 약 5%를 제외하면 소액주주의 지분은 30.8% 남짓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합병 비율 문제를 지적하는 목소리도 있다. SK 측이 발표한 합병 비율은 ㈜SK가 1, SK머티리얼즈가 1.5778인 1:1.5778이다. 하지만 합병 의결일인 지난달 29일 종가 기준 양사의 시가총액을 주식 수로 나눈 금액을 비교하면 1:1.6261로 SK 측이 제시한 것이 더 낮았다. 소액주주들 사이에서는 ‘SK머티리얼즈의 잠재력이 반영되지 않은 합병 비율’이라는 주장이 나온다. ㈜SK 측은 "상장회사의 합병 비율은 임의로 정한 것이 아니라 법으로 정해진 산식에 따라 산출한 것"이라며 "계산결과 SK머티리얼즈 주주들에게 매우 유리하게 합병 비율이 형성됐다"라고 해명했다.  실제로 자본시장법 제165조의4, 자본시장법 시행령 제176조의5 제7항에서는 최근 1개월간 평균 종가와 최근 1주일간 평균 종가를 활용해 상장회사의 합병 비율을 정하도록 산식을 규정하고 있다. 법조계 관계자는 "산식을 통합 합병 비율 결정에 문제가 있는 경우가 많지는 않지만, 주주가치 보호를 위해서는 산식 이상의 평가가 필요하다는 것이 최근 법조계의 목소리"라고 전했다. 
 
국민연금 역시 주주가치 훼손에 대한 우려를 표했다. 국민연금기금 수탁자책임 전문위원회(수탁위)는 27일 제18차 위원회를 열고, ㈜SK와 SK머티리얼즈의 합병계획안에 대해 조건부 찬성 결정을 내렸다. 국민연금 측은 당시 “수탁자책임 전문위원회의 일부 위원들이 주주가치 훼손을 이유로 합병에 반대했다”라고 밝혔다. 회의 결과는 조건부 찬성이었지만 해당 조건이 ‘의사결정 마감일 기준 주가가 주식매수 예정가액보다 높은 경우’여서, 지난 1일 국민연금은 최종적 기권 결정을 내렸다. 의사결정 마감일인 27일 종가(39만2800원)가 주식매수예정가(41만6670원)보다 낮았기 때문이다.
 
합병에 반대하는 기존 SK머티리얼즈 주주들은 11월18일까지 주식매수청구권을 행사해야 한다. 업계 관계자는 “소액주주 입장에서는 안타까운 일이지만 합병을 결정은 뒤집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라며 “주식매수청구권으로 조금이라도 이익을 보는 것이 최선”이라고 설명했다.
 
김성훈 기자 voice@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