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S 재도전하는 SK, 이번엔 성공할까…기대보다 큰 우려
업계 1위 삼성SDI·현대차·CATL 등 경쟁사 많아
ESS, 시장 아직 작고 투자 필요해 수익성도 높지 않은 상황
공개 2021-10-20 09:30:00
[IB토마토 김성훈 기자] SK(034730)그룹이 2차전지 부문 계열사 SK온 등을 통해 에너지저장장치(Energy Storage System, ESS) 시장에 재진출하기 위한 시동을 걸고 있다. SK그룹은 ESS 사업에서 사실상 손을 뗐었지만, 신재생에너지 확대로 ESS 시장이 커지면서 다시금 기회를 모색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그러나 업계에서는 이미 선도 기업이 있는 ESS 시장에서 SK그룹이 얼마나 경쟁력을 보일 수 있을지에 대한 우려가 나온다.
 
18일 업계에 따르면 SK이노베이션(096770)은 최근 폐배터리를 활용해 만든 ESS를 실증하기 위해 산업통상자원부에 규제 샌드박스를 통한 특례를 신청했다. 다 쓴 전기차 배터리를 사용해 만든 ESS를 SK에코플랜트(구 SK건설)의 아파트 건설 현장에 설치한다는 내용이다. 현재 전기차 배터리 수명은 약 10년으로, 15만~20만㎞ 정도 주행하면 사용 가능 용량이 70% 밑으로 떨어진다. 이로 인해 충전 속도와 주행거리가 감소해 차량용으로는 더 이상 사용할 수 없게 되는데, 이 같은 폐배터리를 재활용해 ESS로 만든다는 것이다.
 
이번 실증은 폐배터리를 활용하는 만큼 SK이노베이션의 배터리부문 자회사 ‘SK온’이 주도하며, 올해 11월 실증을 마치는 것이 목표다. 전기요금이 저렴한 야간에 ESS를 충전한 후 전기요금이 비싼 낮에 충전한 전기를 사용해 전력 비용을 줄이는 방식으로 운영할 방침이다. 
 
SK그룹이 본격적으로 ESS 사업에 착수하는 것은 거의 6년 만이다. SK 측은 지난 2014년 ESS 사업을 시작했지만, 낮은 수익성을 이유로 사실상 손을 뗐다. 그러나 2017년 사업을 재개했고, 최근 배터리를 제품 생애주기별로 활용하는 ‘배터리 서비스(Battery as a Service, BaaS)’ 사업이 주목을 받아 폐배터리를 활용한 ESS 시장이 가능성을 보이면서 다시금 ESS 시장에 도전하기로 한 것이다. 
 
ESS가 신재생에너지의 전력 수급 불안정을 보완할 핵심 기술로 떠오르고 있는 점도 SK그룹이 ESS 시장에 눈독을 들이는 이유 중 하나다. SK그룹은 현재 계열사 SK E&S 등을 통해 신재생에너지 발전 시장에서의 역량을 키우는 데에 주력하고 있는데, 단순 발전을 넘어 공급망과 가치사슬을 구현하기 위해서는 ESS를 통한 안정화가 꼭 필요하기 때문이다. 
 
ESS 시장은 바이든 정부의 신재생에너지 확대 정책에 따라 북미 지역을 중심으로 커지고 있는데, 배터리 전문 시장조사기관 SNE리서치에 따르면 ESS 시장 규모는 2030년까지 약 200GWh, 35조원 규모로 팽창할 것으로 추정된다.
 
SK이노베이션은 본격적으로 ESS 사업을 강화하기 위해 지난 7월 미국 IHI 코퍼레이션의 자회사이자 ESS 설계·시운전·유지보수 서비스 전문기업 테라썬과 업무협약을 맺었다. 테라썬은 북미에서 450MWh(메가와트시) 이상의 ESS를 설치한 경험이 있는 기업이며, SK이노베이션은 2022년 이후부터 테라썬의 ESS 사업에 참여할 예정이다. SK이노베이션이 ESS 배터리를 제공하면, 테라썬이 자체 소프트웨어와 결합해 설치와 운영 등을 담당하는 형태다.
 
SK E&S가 인수한 KCE사가 운영 중인 ESS 설비. 사진/SK E&S
 
SK E&S 역시 미국의 그리드솔루션 기업 ‘키 캡처 에너지(Key Capture Energy, KCE)’사의 지분 약 95%를 인수해 경영권을 확보하며 ESS 사업에 진출했다. 그리드솔루션은 재생에너지 증가에 따른 전력공급 변동성과 전력망 불안정성에 대응하기 위해, 송·배전망과 연결된 ESS에 인공지능(AI)기술을 접목해 전기 공급을 일정하게 유지하도록 하는 기술이다. ESS 제작은 SK이노베이션이, 재생에너지 생산과 가치사슬은 SK E&S가 맡겠다는 전략으로 분석된다.
 
이처럼 SK그룹이 과거와는 달리 전격적으로 ESS 사업을 펼치고 있지만, 업계의 시선에는 기대보다 우려가 많이 섞여 있다. SK그룹이 ESS를 손에서 놓은 사이 경쟁사들이 급격히 치고 올라와 시장을 선점했기 때문이다. 배터리 전문 시장조사기관 SNE리서치에 따르면, 지난해 세계 ESS 시장 1위는 사용량 사용량 6.2GWh(기가와트시), 점유율 31%를 달성한 삼성SDI(006400)였다. 2위는 4.8GWh로 LG에너지솔루션이, 3·4위는 CATL과 파나소닉이 차지했다. 
 
LG에너지솔루션 직원이 오창공장에서 제작한 'Reuse ESS'(재사용 에너지 저장장치, 왼쪽 하늘색 설비)를 통해 자사 배터리를 탑재한 GM 볼트 전기차에 충전하고 있다. 사진/LG에너지솔루션
 
특히 LG에너지솔루션(LG화학(051910))은 국내 배터리 기업 최초로 제주도에 전기차충전소 두 곳을 설치하겠다고 밝혔고, 배터리 박람회 ‘인터배터리2021’에서 폐배터리 재활용 모델을 공개하며 ESS 분야에 대한 자신감을 보였다. 순위에 든 기업뿐만 아니라, 중국 기업 BYD의 경우 지난해 ESS사업부를 전지사업부로 이관하고 향후 생산 능력을 10배 이상 키우겠다고 선언했다. 우리 기업 중에서는 LS일렉트릭이 북미 맞춤형 ESS 솔루션을 개발해 미국 시장에 진출한다고 밝혔고, 효성중공업(298040)도 지난 3월 영국 최대 전력투자개발사 다우닝(Downing)과 50㎿급 대용량 ESS 공급 계약을 체결하며 출사표를 던졌다.
 

(왼쪽부터)오재혁 현대차 에너지신사업추진실장, 프레드 본웰 CPS 에너지 최고운영책임자(COO), 김청호 OCI 솔라파워 사장이 전기차 배터리 재사용 ESS 관련 협약 후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사진/현대자동차
 
폐배터리 재활용을 통한 ESS 개발 분야에서도 현대차와 LG화학 등이 산업부의 실증특례를 받고 있는데, 현대차(005380)그룹은 지난 9월 미국 최대 규모의 공영 전력 발전사 CPS에너지·OCI솔라파워와 함께 ‘전기차 배터리 재사용 ESS 구축·전력 시스템 연계 실증사업 협약(MOU)’을 체결하기도 했다. 배터리 업계 관계자는 “ESS 수요가 늘어난다고 해도 고객사들은 업력이 길고 더 많은 사례로 검증이 된 기업의 제품을 원한다”라며 “SK그룹 역시 고객사 네트워크가 탄탄한 편이지만, 현재 ESS 업계를 이끌고 있는 기업들을 제치고 얼마나 많은 일감을 따낼지는 의문”이라고 전했다.
 
 
수급 가능한 폐배터리의 절대량이 상대적으로 적다는 문제도 있다. SNE리서치의 집계 결과 지난 1~8월 세계 배터리 시장 점유율 1위는 CATL이, 2위는 LG에너지솔루션이 차지했다. SK온은 BYD보다 적은 5.4%의 점유율을 기록하며 5위에 머물렀다. 1~4위의 기업이 모두 폐배터리 재활용 사업에 나서고 있는 점을 고려하면, 규모 측면에서 밀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수익성 문제도 있다. ESS 역시 지속적인 투자와 개발이 필요하고 시장도 아직은 작기에, 업계 1위인 삼성SDI도 지난 2분기 기준 ESS 부문 영업이익이 전체의 4.74% 수준인 140억원에 그치고 있다. 증권 업계 관계자는 “SK가 적극적인 인수합병으로 ESS 분야에서 외형 확장을 노리고 있지만, 단기간에 시장 점유율 순위권에 들거나 관련 수익을 키우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며 “손잡은 회사와의 시너지·기술 개발·네트워크를 활용한 활발한 영업 등 삼박자가 맞아야 성과를 낼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SK이노베이션 측은 이 같은 우려에 대해 "아직 경쟁력 확보를 위한 전략을 논할 단계는 아니지만, 기존의 노하우와 기술력을 통해 시장 점유율 확보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라고 전했다.
 
김성훈 기자 voice@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