겹악재 낀 현대중공업···대우조선 인수 연장·노사 갈등·ESG 위기
대우조선 분기 영업손실 1조···EU 당국 심사 늦을수록 인수 비용 증가
노조 측 반대 여전·근로자 사망 올해만 4건···ESG 등급 하락 가능성도
공개 2021-10-14 09:30:00
[IB토마토 김성훈 기자] 현대중공업(329180)그룹이 연이은 악재로 고민에 빠졌다. EU 당국의 기업결합심사 지연으로 대우조선해양(042660) 인수가 늦어지고 있는 데다, 지난달 공장 노동자가 사망하는 사고가 또 발생하면서 ESG 문제까지 거론되고 있기 때문이다. 
 
12일 업계에 따르면 현대중공업그룹의 대우조선해양 인수에 대한 기업결합심사를 담당하는 EU 집행위원회 산하 경쟁분과위는 지난해 7월 인수 관련 심층 조사를 중단한 후 지금까지 심사를 재개하지 않고 있다. 조선업의 경우 현대중공업그룹과 대우조선해양의 세계 시장 점유율이 크기 때문에, 인수를 위해서는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EU·중국 등 6개 국가의 경쟁당국에서 승인을 받아야 한다. 현재 카자흐스탄과 싱가포르·중국의 승인을 받았으나 EU와 일본·우리나라에서는 아직 기업결합심사를 받는 중이다.
 
심사를 재개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 EU 당국 대변인은 “인수합병 기한을 준수하기 위해서는 당사자가 조사에 필요한 정보를 제때 제공해야 하며, 그렇게 하지 않으면 위원회의 조사 중단으로 이어진다”라고 전했다. 
 
인수 당사자인 한국조선해양(009540)이 부족한 정보를 추가로 제공하면 조사를 다시 시작하겠다는 것이 EU 당국의 입장이지만, 업계에서는 EU 측이 심사를 미루는 데에는 다른 이유가 있는 것으로 본다. 바로 LNG선 독점이다.
 
유럽은 LNG선 선사들이 몰려있는 지역이기 때문에, 한국조선해양이 대우조선해양 인수로 몸집을 키워 가격경쟁력을 높이는 것을 경계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대우조선해양 인수 시 한국조선해양의 LNG선 시장 점유율은 60%에 달하게 된다.
 
EU 심사가 늦어지면서 한국조선해양은 지난달 말까지로 예정됐던 산업은행과의 거래계약을 올해 12월 말로 늦췄다. 업계에서는 이미 연내 승인이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승인이 늦어지는 것 자체도 현대중공업그룹에는 악재이지만, 더 큰 문제는 대우조선해양의 실적이 악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나이스신용평가에 따르면 대우조선해양은 지난 2019년부터 실적이 하락하기 시작해, 지난 2분기 결국 영업손실과 당기순손실이 분기 기준 1조원을 넘어섰다. 올해 상반기 기준 대우조선해양의 매출액은 2조1712억원으로, 지난해 상반기보다 44.6% 가까이 줄었다. 영업이익은 적자로 전환해 –1조2203억원으로, 같은 기간 무려 446.44% 이상 감소했다. 당기순이익 역시 –1조1586억원으로 작년 상반기보다 380% 줄었다. 
 
기업결합심사가 늦어져 대우조선해양의 실적이 더 떨어지면, 한국조선해양의 인수 비용도 늘어날 수 있다. 김봉환 나이스신용평가 책임연구원은 “2021년 들어 주요 원재료인 강재 가격이 크게 오른 데에 비해 신조선가의 상승은 상대적으로 더디게 나타나고 있어, 단기적으로 큰 폭의 영업 수익성 저하가 불가피할 전망”이라며 “최근 신규 수주분의 매출 반영, 강재가 상승분의 선가 반영이 본격화하기 전까지는 중단기적으로 저조한 영업 수익성을 보일 것”이라고 판단했다. 김 연구원은 이에 더해 운전자금 부족 가능성을 제기했는데, 자금 부족이 심각해질수록 대우조선해양은 모회사가 되는 한국조선해양 등 현대중공업그룹에 기댈 수밖에 없다.
 
최악의 경우 대우조선해양의 신용등급이 하락할 수도 있다. 나이스신용평가가 등급하향 검토 요인으로 △조선·해양 부문 시장환경의 현저한 개선이 이루어지지 않아 적정 원가율 확보에 어려움이 이어져 영업 수익성 개선이 늦어지는 경우 △현대중공업 계열 편입이 최종 무산되는 등의 사유로 사업적·재무적 불확실성이 확대된 것으로 판단될 경우 등을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조선 업황이 조금씩 나아지고 있지만 대우조선해양의 영업손실은 여전히 커지고 있고, EU 당국이 내년까지 결론을 내지 않아 인수가 더 늦어지거나 무산되면 대우조선해양의 재무 상황은 장담할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계속되는 노조와의 갈등도 인수 비용을 키우는 악재 중 하나다. 전국금속노조 대우조선지회는 아직 인수를 강하게 반대하고 있고, 올해 임단협 역시 18차까지 이어진 교섭에도 잠정합의안을 도출하지 못했다. 대우조선 노조는 지난달 초 쟁의행위 찬반투표를 통해 파업권을 확보한 상태다. 업계 관계자는 “노조를 달래기 위해 임금을 인상하면 인상하는 대로 비용이 늘고, 노조가 파업을 선언하면 생산성 저하로 수익성이 악화할 수 있어 진퇴양난인 상황”이라고 전했다.
 
현대중공업그룹의 고민은 기업결합심사 지연과 노조 문제뿐만이 아니다. 업계에 따르면 지난 9월30일 현대중공업 내에서 일하던 하청노동자가 통로 이동 중 무게 14t의 굴삭기 기계 우측 바퀴에 깔려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현대중공업 측은 정확한 사고 원인을 조사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현대중공업에서는 매년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했고, 올해에도 2월과 5월 잇따라 근로자 사망사고가 일어났다. 이에 지난 5월에는 제조업에서는 처음으로 고용노동부로부터 공장과 물론 본사와 대표이사의 안전 인식·리더십을 포함한 특별근로감독 조치를 받기도 했다. 그러나 조치 이후인 7월에도 추락으로 인한 사망사고가 발생했고, 지난달에도 사망자가 나오면서 올해 사망 근로자 수가 4명으로 늘었다. 
 
현대중공업의 산재 사망자 수는 2017년 2명에서 2018·19년 3명으로 늘었고, 지난해에는 4명으로 증가했다. 지난 2월 국회에서 처음으로 산재 청문회가 개최됐고, 당시 한영석 대표는 ‘지적사항을 반영해 관리를 철저히 하겠다’라고 다짐했지만 지켜지지 않은 것이다. 상장사 6곳에 ESG 위원회를 설치하며 ESG 경영에 힘쓰겠다고 선언한 현대중공업그룹의 약속도 무색해졌다. 
 
  
계속되는 사망사고에 현대중공업의 ESG 등급이 낮게 평가될 수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현대중공업은 지난 9월 상장해 아직 ESG 등급이 없고, 현대중공업지주만 ESG 등급이 부여된 상황이다. 하현우 한국기업평가 연구원은 “현대중공업이 올해 상장했기 때문에 내후년 정도에 ESG 등급이 부여될 것으로 예상된다”라며 “근로자 사망사고는 ESG 등급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 요인”이라고 설명했다.
 
ESG 평가 업계 관계자는 “기업들이 ESG를 한다면서 당장 자금조달에 도움이 되는 친환경에만 매달리는 경향이 있다”라며 “자회사의 과실이 지주회사의 ESG에도 영향을 줄 수 있는 만큼, 현대중공업 역시 환경 외에 사회와 지배구조 부문에서도 더욱 노력해야 할 필요가 있다”라고 지적했다.
 
김성훈 기자 voice@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