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동성의 시대가 저물고 있다. 한국은행은 기준금리를 인상했고 미국 연방준비제도는 연내 자산매입 축소, 이른바 ‘테이퍼링’에 나설 것을 시사했다. 유동성이 줄고 금리가 오르면 당장 대출을 받지 못하는 금융 소비자뿐만 아니라 ‘기업’들도 힘들어진다. 자금조달이 어려워지고, 조달 후 금융비용이 커질 수 있을 뿐 아니라 투자에도 한계가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IB토마토>는 유동성이 사라지는 상황에서의 기업들이 처한 상황과 위험 요소를 분석하고 다양한 시나리오를 통해 선제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전략을 6회에 걸쳐 살펴본다.(편집자 주)
[IB토마토 김성훈 기자] 현지시간으로 지난달 9월21·22일 열린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연준)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Federal Open Market Committee)의 회의록이 최근 발표됐다. FOMC의 결정은 미국뿐만 아니라 세계 경제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매 회의가 이목을 끌지만, 이번에는 특히 자산매입 축소(Tapering, 테이퍼링) 여부가 결정될 것으로 예상돼 큰 관심을 받았다.
결로부터 말하자면, 연준은 이번 회의에서 금리를 올리지도 테이퍼링을 결정하지도 않았다. 연준 위원들은 만장일치로 기준금리를 현재의 0.00∼0.25%로 동결했다. 하지만 앞으로의 금리 전망을 보여주는 지표인 ‘점도표(dot plot)’에서는 내년에 금리가 인상될 가능성이 큰 것으로 나타났다. 18명의 위원 중 절반인 9명이 내년 금리 인상을 예상했고, 2023년까지 금리가 연 1% 이상이 될 것으로 전망한 위원도 5명에서 9명으로 늘었다.
테이퍼링은 필요한 조치로 언급됐지만, 구체적인 개시 시점과 속도에 대해서는 발표하지 않았다. 그러나 파월 의장이 내년 중순을 테이퍼링 종료 시점으로 제시했다는 점을 고려했을 때, 올해 11월이나 12월 테이퍼링이 시작될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 9월 블룸버그의 조사에 따르면 88%의 경제학자들이 두 달 이내에 테이퍼링이 시작될 것으로 예측했다.
한국은행은 연준의 이 같은 기조에 따라, 지난달 주요국 중 처음으로 역대 최저 수준이던 연 0.5%의 기준금리를 0.75%로 전격 인상했다. 코로나19에 따른 초저금리 시대가 막을 내린 것이다. 금리 인상의 원인으로는 집값 안정이 꼽히고 있지만, 상승한 금리가 영향을 미치는 곳은 부동산뿐만이 아니다.
금리가 오르면 기업들은 자금조달이 어려워진다. 은행의 기업 대출 금리가 오를 뿐만 아니라 회사채 금리가 오르면서, 새로 회사채를 발행할 경우 더 비싼 이자를 낼 가능성이 커진다. 특히 이자 등 금융비용은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원금을 상환하기 전까지는 매년 발생하기 때문에 기업 측의 부담이 크다. 지난달 공공기관·은행·기업의 회사채 발행 규모가 4조원을 돌파한 것도, 추가 금리 인상 전에 자금을 조달하기 위함인 것으로 분석된다.
이경록 신영증권 연구원은 “8월 금통위 이후 회사채 수요예측이 흥행하며 일시적으로 강세 분위기를 연출했지만, 기준금리 인상 횟수에 대한 불안감이 재차 커지면서 회사채 투자 심리도 위축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한국은행은 기준금리가 0.25%포인트 오르면 기업의 이자 부담 규모가 2조1000억원, 0.5%포인트 오르면 4조3000억원 증가할 것으로 추정했다. 기업 규모별로 보면 기준금리 0.5%포인트 상승 시 대기업의 이자 부담은 7000억원, 중소기업은 3조6000억원 증가할 것으로 전망했다.
기준금리가 오르면 취약기업과 한계기업도 늘어난다. 취약기업이란 1년 이상 이자보장비율이 100% 미만인 상태의 기업을 말하는데, 이자보상비율이 100% 미만이라는 것은 영업이익으로 이자도 갚지 못한다는 뜻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기준금리가 0.25%포인트·0.5%포인트 인상되면 금리를 유지할 때보다 취약기업 수가 각각 0.4%·0.5% 늘어난다. 한국은행 측은 “앞으로 충격이 발생하면 한계기업으로 전환될 수 있는 후보 기업이 과거보다 늘어났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라고 설명했다.
우리나라의 경우 이미 전체 기업 중 이자보상비율이 3년 연속 100% 미만인 ‘한계기업’ 비중이 지난해 기준 15.3%로, 2010년 통계 작성 이후 최대치를 기록하고 있다. 한계기업의 차입금 역시 작년 기준 124조5000억원에 달한다. 2019년보다 9조1000억원 증가한 규모다. 미국 연준의 금리 인상과 테이퍼링이 시작되면 한국은행이 추가로 금리를 인상할 가능성이 커지고, 이 경우 취약기업과 한계기업은 더 늘어난다.
금리 인상은 투자심리 위축에도 영향을 미친다. 은행의 예·적금 금리가 오르면 안전자산을 선호하는 심리에 따라 투자보다 은행에 맡기는 것을 선택하는 사람들이 늘 수 있고, 달러화 강세에 따라 국내 주식시장에서 외국인들이 빠져나가면서 기업들은 주가 하락으로 피해를 볼 수 있다. 실제로 지난 6일 뉴질랜드의 기준금리 인상 소식에 코스피는 2900선을 위협받았다.
구조조정 업계에서는 유동성 축소로 한계기업이 되거나 부도에 직면할 가능성이 큰 업종으로 특히 △자동차부품 △정유 △종합상사 △플랜트 기자재 △산업용기계부품 △항공기 부품 등을 꼽았다. 특히 구조적으로 저성장 시기에 접어든 이들 분야에서 신사업으로의 전환과 투자가 어려운 중소기업들의 부실이 급격히 늘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산업연구원의 분석에 따르면 2019년에 비해 2020년 한계기업 비중이 증가한 업종 14개 중 특히 한계기업이 많이 늘어난 업종 중에도 자동차가 포함됐다. 그간 휘발유·경유 자동차 부품만을 생산하던 부품 업체들이 수소·전기차로의 변화에 따라가지 못해 결국 부도에 이르는 것이다. 나머지 유의 업종으로는 음료· 섬유·의복 등이 꼽혔다. 한국기업평가는 “공급체인 말단의 납품업체들은 낮은 시장지위와 미흡한 교섭력으로 인해 부실화가 상대적으로 빠르게 진행될 수 있다”라고 지적했다. 자동차 부품업계 관계자 역시 “업체들이 뒤늦게 전기차용 부품 등을 생산하기 시작했지만, 추가 투자가 필요한 시점에서 금리 인상 등으로 자금조달이 어려워져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밝혔다.
금융통화위원회는 이미 ‘점진적’으로 기준금리를 추가 인상하겠다는 방침을 내놨다. 박종석 한은 통화 담당 부총재보는 최근 “정책금리가 인상 사이클로 들어섰다”라며 추가 금리 인상 가능성을 시사했다. 시장에서는 한국은행이 11월 0.25%포인트 추가 인상을 단행할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우리 기업들의 자금조달 환경이 더욱 악화할 가능성이 크다는 얘기다. 투자은행(IB) 업계 전문가들은 "기업에는 유동성 축소로 인한 위기를 극복할 돌파구가, 투자자에게는 한계기업을 솎아낼 수 있는 혜안이 절실한 시점이다"라고 조언했다.
김성훈 기자 voice@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