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전소 사업 있는데…SK, '시그넷이브이 인수'에 담긴 숨은 시나리오
SK, 12일 전기차 충전 시스템 기업 시그넷이브이 인수 밝혀
SK이노 미 시장 확대와 접목, 미 BaaS 시장 선점 의도로 해석
추후 SK배터리 자화사 편입·코스닥 이전상장 가능성도
공개 2021-08-24 09:30:00
[IB토마토 김성훈 기자] SK(034730)가 최근 전기차 충전시스템 전문 기업 시그넷이브이를 인수하며 여러가지 미래 시나리오가 그려지고 있다. 업계에서는 전기차 배터리 제조뿐만 아니라 BaaS(서비스형 배터리, Battery as a Service) 분야에서의 경쟁력을 키우기 위한 SK그룹의 전략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SK배터리의 자회사로 편입하거나 코스닥 이전상장안을 추진하기 위한 움직임이라는 해석도 있다.
 
SK는 지난 12일 공시를 통해 전기차 충전시스템 설치와 시공, 관련 장비 제조·판매사업을 하는 시그넷이브이를 자회사로 편입한다고 밝혔다. 앞서 지난 4월 2932억원을 투자해 시그넷이브이 지분 53.4%을 인수한 SK는 “그룹이 보유한 반도체 ·정보통신분야 역량을 시그넷이브이의 충전기 제조 기술에 접목해 자율주행 전기차 시장에 대비하겠다”라고 전했다.
 
이처럼 SK 측은 ‘전기차 충전시장에서의 입지 확보’를 인수 목적으로 밝혔지만, 업계에서는 그보다 더 큰 그림이 있을 것이라는 예상이 많다. 우선 SK그룹이 계열사 SK에너지를 통해 이미 충전소 사업을 하는 상황에서 시그넷이브이를 인수한 것은 BaaS 부문 강화와 미국 BaaS 시장 선점을 위한 포석이라는 해석이 있다.
 
BaaS는 배터리 대여·교환과 수리·충전, 재사용·재활용 등 배터리 생애주기를 아우르는 서비스 모델을 말한다. 김준 SK이노베이션(096770) 사장은 올해 초 신년사에서 “배터리 사업을 SK이노베이션의 독특한 BaaS 사업으로 확장을 통해 추가적인 가치를 확보하겠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BaaS 부문에서 시그넷이브이는 SK의 수요에 딱 맞는 기업이다. SK 측에 따르면 2016년 세워진 국내 기업 시그넷이브이는 350㎾ 초급속 전기차 충전기를 생산하는데, 초급속 충전기 최대시장인 미국 시장 점유율이 50%에 이른다. 시그넷이브이의 작년 매출 619억원 중 해외 매출이 510억원일 정도다. SK가 미국 BaaS 시장에 진출할 수 있는 최적의 초석인 셈이다. 
 
전기차 충전소 사업의 경우 인프라 구축이 쉽지 않다. 낮은 충전료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전기차 충전기 설치 비용 자체는 충전기 6기에 3억원가량으로 일반 주유소보다 저렴하지만, 충전료도 저렴해 수익이 크지 않아 사업에 대한 수요가 적은 편”이라고 설명했다. 이런 점에서 시그넷이브이는 이미 미국의 충전소 네트워크를 확보하고 있기에, SK에너지·SK이노베이션과 충분한 시너지를 낼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SK와 LG는 현재 배터리 생산뿐만 아니라 BaaS 부문에서도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SK이노베이션은 지난 1월 중국의 전기차 배터리 재사용 업체 블루파크스마트에너지(BPSE) 지분 13.3%를 취득해 배터리 교체 사업에 뛰어들며 중국에서는 경쟁사인 LG(003550)그룹보다 일찍 BaaS 사업을 시작했다. 업계 관계자는 “이번 시그넷이브이 인수는 미국 전기차 충전·교체 시장 선점을 위한 포석으로 보인다”라며 “LG 측이 폐배터리 재활용 부문에서 두각을 보이는 만큼, SK 측은 충전소 부문 공략을 서두르는 것 같다”라고 분석했다.
 
실제로 LG에너지솔루션과 제너럴모터스(GM)의 합작법인 얼티엄셀즈는 지난 12일 북미 최대 배터리 재활용 업체인 ‘리-사이클’과 폐배터리 재활용 계약을 체결했다. GM은 2013년부터 보증 서비스를 통해 교체된 팩을 포함해 고객으로부터 받은 배터리 팩의 100%를 재활용이나 재사용하고 있다. 
 
 
시그넷이브이가 가진 기술과 국내 BaaS 네트워크가 SK그룹이 인수를 결정하는 데에 큰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시그넷이브이 매출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마루베니는 일본에서 3대 종합상사로 불릴 만큼 영향력이 큰 기업이다. 지난 2019년 5월에는 △GS(078930)칼텍스 △LG전자(066570) △롯데렌탈 계열사 ‘그린카’ △전기차 모바일 플랫폼 ‘소프트베리’ 등과 전기차 충전 플랫폼 관련 업무협약을 맺었다. 경쟁사인 LG가 중심이 된 업무협약이었지만, 2019년과 2020년에는 GS칼텍스로의 매출도 발생해 추후 네트워크 확대가 기대되는 상황이다. 
 
시그넷이브이는 지난해 6월, 산업통상자원부 산하 한국에너지기술평가원이 공고한 ‘로봇 기반 전기자동차 자동충전시스템 연구개발(R&D)’ 주관사업자로 선정되기도 했다. 해당 시스템은 센서가 차량 충전기 위치 정보를 정밀 인식하고, 로봇이 충전 커넥터를 자동으로 차량에 연결하는 형태다. 시그넷이브이 측이 “R&D 실시 후 3년째 되는 시점에 목표를 현실화하고, 4년째부턴 실증 사업에 들어갈 수 있을 것”이라고 밝힌 만큼, 2024년에는 로봇을 활용한 충전소의 고도화까지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로봇 1대가 전기차 충전기 8대 몫을 해, 더욱 공격적으로 충전소를 확대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재계 일각에서는 이처럼 잠재력이 큰 시그넷이브이가 추후 더 큰 시너지를 낼 수 있는 SK이노베이션 배터리 분할 회사(SK배터리)의 자회사로 편입될 수 있다고 예상한다. SK이노베이션의 경우 현재 추가 투자 자금 확보를 위해 오는 10월 배터리 부문을 분리하는데, 분할 이후 IPO 등으로 자금이 충분히 확보되면 미국 진출 확대에 필요한 시그넷이브이를 자회사로 품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SK배터리(가칭)가 SK이노베이션 현금성 자산 5000억원 중 73%인 3770억원을 가져갈 정도로 그룹 차원에서 배터리 부문을 밀어주고 있다는 점도 이 같은 예상의 근거가 된다. 현재 SK그룹에서는 SK이노베이션이 거의 배터리 전 분야를 관장하고 있고, BaaS 부문은 SK배터리가 맡을 예정이다.
 
충전소 사업을 하는 SK에너지가 시그넷이브이를 인수할 수 있다는 관측도 있지만, SK에너지는 이미 최근 SK리츠에 주유소를 매각해 확보한 7638억원을 전기차 충전소와 수소 충전소 구축에 활용하겠다고 밝혔다.
 
코넥스 기업인 시그넷이브이가 코스닥으로 이전상장할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 시그넷이브이가 지난 7월15일 주주총회를 열고 2명의 사외이사를 새로 선임했기 때문이다. 시그넷이브이는 코넥스 상장기업이어서 상법상 사외이사를 선임할 의무가 없다. 추후 코스닥 이전상장을 추진하기 위한 선제적 조치일 수 있다는 것이다.
 
배터리 업계 관계자는 “다양한 시나리오가 있지만, SK의 시그넷이브이 인수는 단순히 충전소 사업 강화를 위한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라며 “추후 SK의 BaaS 부문 행보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라고 전했다.
  
김성훈 기자 voice@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