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한국항공우주, 입찰 제한 못 막으면 1년 매출 ‘물거품’
입찰 제한으로 못 버는 수주 매출 2조8374억원 추정···작년 매출보다 커
항공 수요 감소에 작년 실적 하락···행정처분 정지 판결 꼭 받아야
공개 2021-07-02 10:00:00
[IB토마토 김성훈 기자] 한국항공우주(047810)산업(KAI)이 ‘입찰 제한’ 위기에 놓였다. 이번 행정처분을 막지 못하면 1년 6개월간 공공기관으로부터 수주를 받지 못해 막대한 손실이 발생할 수 있다. 업계에서는 ‘큰 위험은 아닐 것’이라는 반응이지만, ‘법원의 결정이 나와봐야 안다’라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한국항공우주는 지난 25일, 공공기관을 상대로 한 입찰 참가 자격이 일정 기간 제한된다고 공시했다. 입찰 제한 예상 기간은 오는 7월1일부터 2022년 12월31일까지다.
 
KAI는 공시를 통해 “국가를 당사자로 하는 계약에 관한 법률 제27조, 동법 시행령 제76조, 동법 시행 규칙 제76조 등에 적용해 해당기간 동안 국내 공공기관 입찰 참가 자격이 제한된다”라고 밝혔다.
 
국가를 당사자로 하는 계약에 관한 법률 제27조에서는 △계약을 이행시 부정한 행위를 한 자 △경쟁입찰 과정에서 미리 입찰가·물량 등을 협정하였거나 특정인의 낙찰을 위해 담합 한 자 △사기 등 부정 행위로 입찰·낙찰·계약 체결·이행 등 과정에서 국가에 손해를 끼친 자 등에 대해 2년 이내의 범위에서 입찰 참가 자격을 제한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KAI에 입찰 제한 조치를 내린 것은 방위사업청(방사청)이며, 조치 근거는 고등훈련기 ‘FA-50’ 계약과 관련한 혐의다. 검찰은 KAI가 방산용 FA-50과 인도네시아 수출용 T-50에 장착되는 같은 전자 장비 부품을 함께 묶어 협상·구매할 때, 방산용 부품가격을 실제 구입가능 가격보다 10~15억원가량 부풀린 것으로 보고 있다. 이밖에도 KAI는 △업무상 횡령 혐의 △채용 특혜(뇌물 혐의) △사문서위조·행사 혐의 등 총 17건의 혐의를 받고 있다.
 
KAI 측은 ‘FA-50’ 계약 시 계약서에 최종견적서를 내야 했는데 착오로 협상 단계 때 중간견적서를 제출한 것이며, 고의성은 없다는 입장이다. KAI 관계자는 “지난해에도 유사한 문제가 있었지만, 법원의 행정처분 집행정지 판결을 받아냈다”라며 “이번 건도 바로 법적 대응을 시작한 만큼 법원의 긍정적인 판결을 기대하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한영수 삼성증권 연구원도 “국내 공공기관 대상 입찰 참가 자격 제한이 방산업체에 미치는 영향은 의외로 크지 않다”라며 “우선 절차상으로 행정처분 집행정지 신청이 받아들여지면 취소 소송의 결과가 나오기 전에도 입찰 참여가 가능하다”라고 전했다.
 
문제는 KAI의 집행정지 신청이 받아들여지지 않거나, 방사청과의 소송해서 KAI가 패했을 경우다. 먼저 법원이 행정처분 집행정지 신청을 심사하는 열흘 내외의 기간에 KAI는 공공기관 입찰에 참여할 수 없다. 이후 법원이 집행정지 신청을 수용하지 않을 경우, 행정처분 취소 소송 결과가 나오기까지는 방사청의 조치대로 입찰에 나설 수 없게 된다. 
 
KAI의 자체 추정 결과, 1년 6개월의 입찰 제한 기간 중 수주를 통해 벌어들일 수 있는 매출액은 약 2조8374억원에 달한다. KAI의 지난해 매출액인 2조8250억원을 웃도는 규모다. 실제로 KAI가 패소해 입찰이 막히면 1년 매출액에 해당하는 금액을 놓치게 되는 것이다. 현행법상 각 중앙관서의 장(長)이 자격 제한 기간을 50%까지 줄여줄 수 있지만, 그렇다고 해도 상당히 큰 금액이다.
 
매출액 추정치가 이처럼 크게 책정된 것은 KAI의 수익구조 때문이다. KAI의 총매출 중 국내 비중은 약 67%인데, 이 중 대부분의 매출이 군·정부 등 공공기관과의 거래로 발생한다. 지난해 코로나19로 인해 저조한 실적을 낸 KAI로서는 이번 입찰 제한을 막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기업분석플랫폼 딥서치에 따르면 KAI의 지난해 매출은 전년도보다 9.16%가량 줄어든 약 2조8251억원을 기록했다. 영업이익도 49.4% 감소한 1395억원에 그쳤고, 당기순이익 역시 57% 줄었다. 코로나19의 영향으로 여행수요가 급격히 감소하고 항공업계가 침체하면서, KAI의 기체부품 부문 실적도 악영향을 받은 것이다. 
 
최중기 나이스신용평가 기업평가1실장은 “코로나19의 영향으로 인한 전방 항공업황의 급격한 침체로 KAI의 민수부문 중 기체부품(동체 구성품)이 불가피하게 영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라며 “실제로 2020년 기체부품 등 민수부문 매출은 전년 대비 37.1% 감소했다”라고 설명했다.
 
입찰 제한 조치는 한국항공우주의 신용도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나이스신용평가는 한국항공우주의 신용등급 하향 요인 중 하나로 ‘기존 수주사업의 차질, 전 사업부문의 수주 부진 등 사업 안정성 저하’를 꼽았다. 
 
학계 관계자는 “방사청의 입찰 제한은 과거에도 있었지만 실제로 영향이 크지 않았다”라면서도 “최근 강화되는 ESG 기조를 고려할 때 법원의 판결에 따라 악영향이 더욱 커질 수 있다”라고 예상했다.
 
김성훈 기자 voice@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