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10년' 현정은 현대 회장, 무벡스로 '탈출구 찾기' 부심
현대유엔아이, 승계 대신 그룹 재건 용도로 '역할 변화'
현대무벡스 상장, 현정은 회장 유동성에 '단비'
소송전 대비·경영권 방어 문제 '첩첩산중'
공개 2021-03-25 10:00:00
[IB토마토 박기범 기자]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은 대한민국 최초 여성 대기업 총수다. 2011년 영국 파이낸셜타임즈(FT)는 세계 50대 여성기업인으로 현회장을 선정하기도 했다. 하지만 장기 용선 계약과 해운업의 악화는 그를 격랑 속으로 몰아넣었다. 현대증권과 현대상선(이하 HMM(011200))이 그룹사에서 빠지며 현대그룹의 사세는 중견기업까지 줄어들었다. 이를 만회하려 했지만 2대 주주인 쉰들러는 쉽게 허락하지 않았다. 그래도 더 늦기 전에 현회장은 최근 상장한 현대무벡스(319400)를 통해 잃어버린 시간을 다시 되돌리려 하지만 경영능력에 대한 의구심이 커지며 대표이사 연임도 장담할 수 없다는 우려가 나온다.
 
23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현대그룹의 계열사 현대무벡스는 지난 12일 엔에이치스팩 14호에 피합병되며 스펙(SPAC) 상장했다. 현대무벡스는 현대엘리베이터 지분 35.49%, 현정은 회장의 지분이 28.8%(전환사채 매수청구권 포함 시) 등으로 구성돼 있다. 현대무벡스는 과거 현대그룹 '승계의 키'로 평가받던 현대유엔아이에서 인적분할된 계열사다.

'승계의 키'였던 현대유엔아이…그룹 재건으로 성격 변화
 
현대유엔아이는 현재 현대네트웍스(구 현대글로벌)와 현대무백스로 존재한다. 현대네트웍스는 현대그룹 지배 구조의 정점으로 활용되고 있고, 현대무벡스는 현대그룹의 2번째 상장사다.  
 
 
과거 현대유엔아이는 현대그룹 '승계의 키'였다. 2011년 말 기준 현회장과 그의 장녀 정지이 현대무벡스 전무의 보통주 기준 지분율은 77%였다. 또한 주요 사업이 시스템 자문, S/W 개발 공급, DB 구축, 시스템통합(SI) 업무 등이었다. SI 사업은 대기업들이 승계 용도로 애용하는 사업이다. 내부 매출이 용이하기 때문이다. 2011년부터 2014년 사이 현대유엔아이 매출의 절반 이상이 현대그룹 계열사로부터 발생했다. 
 
승계의 키 역할을 하던 현대유엔아이는 2017년 8월 큰 변화를 맞는다. 2017년 8월 현대엘리베이(017800)터의 알짜 사업인 물류 자동화 사업 부문을 사업 양수도 방식으로 합쳤고, 이듬해 사명도 현대무벡스로 바꿨다. 특수관계자에 의존하던 매출 구조도 바뀌었다. 특수관계자 매출 1위, 2위였던 HMM, 현대증권 등이 그룹에서 이탈하며 더 이상 기존 사업 방식으로 매출을 내기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이후 계열사 내에서 현대무벡스의 역할도 바뀐 것으로 보인다. HMM의 거듭된 적자가 현대그룹을 휘청이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HMM은 2012년 영업손실 6990억원, 2016년 8339억원 등 2011년부터 2019년까지 매년 적자를 냈다. 통상적으로 승계에 활용되던 알짜 계열사들은 승계 작업이 마무리되기 전에 상장하지 않지만 사세가 급격히 줄어든 탓에 전략 수정이 불가피했던 것으로 풀이된다. 

현대무벡스 상장의 수혜, 현정은 회장에게
 
시장에서는 현정은 회장이 무벡스 상장의 수혜를 가장 많이 받았다고 평가한다. 상장으로 시가 총액이 급증, 현정은 회장의 지분가치가 크게 높아졌기 때문이다. 
 
추가적인 현금 확보도 용이해졌다. 현회장은 가문 기준으로 재벌(財閥)이지만 '재력'은 재벌과 거리가 있다. HMM이 어려움에 빠지며 재무구조 개선 약정을 맺을 당시 어려움에 처한 그룹과 고통을 분담하기 위해 그의 어머니인 김문희 용문학원 이사장과 함께 300억원을 사재 출연했다. 
 
재원은 대부분 주식을 담보로 한 차입이었다. 지금도 현회장이 보유한 현대엘리베이터 지분 중 84%는 주식 담보 대출로 잡혀있다. 현대엘리베이터 지분과 관련해 현회장과 그의 직계존비속이 내는 이자만 매년 34억원 선이다.  2017년 1월 리스크가 있음에도 전환사채(CB) 콜옵션만 보유한 것도 현금흐름의 장애 때문으로 풀이된다. 
 
'CB 콜옵션'탓에 시작된 2대 주주 쉰들러홀딩스와의 소송전은 현회장에게 상당한 자금 부담을 야기시킬 수 있다. 현회장은 2대 주주인 쉰들러홀딩스과 7000억원대 손해배상 소송전을 벌이고 있다. 현재 대법원 판단을 기다리고 있으며 1심에서는 현회장이 승소했고 2심에서는 일부 패소했다. 당시 고등법원 재판부는 "현회장은 현대엘리베이터에 1700억원을 지급하라"라고 판시했다. 
 
현대무벡스 상장은 현회장에게 가뭄의 단비다. 현재 주가인 4800~5000원을 기준으로 현대무벡스의 시가총액은 대략 5000억원이다. CB를 제외한 현회장의 지분 26.15%를 곱하면 1300억원 선이다.   
 
투자은행(IB) 관계자는 "비상장기업의 지분으로 자금을 융통하기 쉽지 않다"면서 "하지만 상장기업은 유동성이 확보돼 있기에 자금을 조달하기 쉽다"라고 말했다. 또한 "주식 가치 평가도 상장기업은 본질가치 평가를 통해 미래 경제적 가치를 미리 평가받는 반면 비상장 주식은 그렇지 못해 융통할 수 있는 자금도 큰 차이가 있다"라고 설명했다. 

명예 회복 시급한 현회장, 내년 주총 연임도 우려
 
현회장은 현대그룹의 수장으로서 명예 회복이 필요한 상황이지만 당장 내년 주총에서 다뤄질 대표이사 연임도 장담하기 어렵다. 전문가들은 현회장의 경영능력에 여전히 의구심을 표하고 있다. 계열사인 △현대경제연구원 △현대아산 △에이블현대호텔앤리조트 등은 수년째 당기순손실을 기록 중이다. 주력 사업이 엘리베이터로 줄어든 상황에서 현대연구원, 반얀트리 호텔 등은 그룹 자원의 효율성을 떨어트린다는 지적이다. 
 
 
 
또한 지분율도 낮다. 현회장과 특수관계자의 지분율은  26.5%로 2대 주주인 쉰들러홀딩스로 지분율이 15.5%와 3대 주주인 국민연금 지분율 9.8%를 합치면 25.3%로 현회장과 큰 차이가 없다. 2대 주주인 쉰들러홀딩스는 현회장과 7000억원대 손해배상 소송을 진행 중이다. 소송의 핵심 역시 콜옵션이 붙은 CB를 활용, 최대주주의 지분율을 높이는데 활용한다는 점이다.   
 
IB 업계 관계자는 "거버넌스 선진화에 대한 요구가 2년 전과 비교해 크게 거세졌다"면서 "연임 때마다 지속적으로 공격을 받을 수 있다"라고 지적했다. 이어 "사세가 중견그룹까지 줄어든 상황에서 매년 적자를 내는 현대경제연구원, 반얀트리 호텔을 왜 보유하는지 의문"이라면서 "두 곳은 앞으로도 적자가 예상되기에 현대엘리베이터 주주 입장에서는 문제를 충분히 제기할 수 있다"라고 덧붙였다. 
 
박기범 기자 partner@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