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등급 100%' 신평사 ESG평가, 실효성 논란
OX퀴즈 같은 정량 평가…사전 준비 용이해 모두 최고 등급
"ESG 기업평가 아닌 이상 앞으로도 최고등급 비율 높을 것"
사후 평가 있기에 그린워싱 줄이는 데 기여
공개 2021-02-25 09:00:00
[IB토마토 박기범 기자] 17/17. 왼쪽은 ESG 채권등급평가를 받은 기업 숫자고, 오른쪽은 최고 등급을 받은 기업 숫자다. 전부 최고 등급이다. 1~5등급이 'Pass Or Fail'로 바뀐 모습이다. 등급평가가 제 기능을 하고 있지 못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지만, 복수의 전문가들은 "채권 평가 특성상 앞으로 최고 등급 현상이 이어질 것"이라고 평가했다. 
 
신용평가 3사의 ESG채권평가 현황.
 
23일 신용평가업계에 따르면 한국기업평가, 한국신용평가, 나이스신용평가 등 신용평가 3사에서 평가한 ESG 채권은 17개고, 17개 모두 모두 최고등급의 평가를 받았다. 이 중 70%를 한국신용평가가 평가했다. 
 
ESG 채권 평가를 이끌고 있는 한국신용평가는 ESG 채권 등급을 3단계로 구분해 평가한다. △프로젝트 적격성 검토 △발행계획, 운영과 관리체계, 정보투명성 검토 △최종 등급 결정 순이다. 또한 그린워싱(Greenwashing, '위장' 환경 주의)을 방지하기 위해 신평사는 최초 등급 평가 이후 일정 기간이 지난 후 채권을 재평가한다. 
신용평급 평가 진행절차. 출처/한국신용평가
 
1단계는 ESG 분류체계(Taxonomy)에 포함되는지 여부, 자금투입 비율 등을 고려해 등급을 결정한다. 2단계는 △적격 프로젝트 평가 및 선정 절차 △조달자금의 관리 △보고 및 공시 △발행자의 환경·사회 공헌 활동 등 네 가지로 구분해 평가한다. 
 
문제는 현행 평가 기준으로는 등급 '차별성'을 만들기 어렵다는 데 있다. 정성적 평가보다 정'량'적 평가에 치우쳐 있는데 정량적 평가 항목이 세밀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예를 들어, △자체적으로 ESG프로젝트를 선정하는 절차가 있는지 △내부의 공식적인 절차가 있는지 △내부에 보고하는 공식적인 절차가 있는 등을 체크하고 제대로 작동할 경우, 최고 점수를 줄 수밖에 없는 구조다.
 
달리 말해 신용'등급' 평가보다 '적정성'여부 판단에 가깝다. 프로젝트의 투자 비율을 제외하면 평가항목이 OX 퀴즈와 비슷하기 때문이다. 신용평가사 관계자는 "신용등급과 ESG 채권 평가 등급은 완전히 별개"라면서 "신용등급은 상환 능력을 평가하지만, ESG 인증평가는 해당 채권이 ESG에 맞는지, 목적 사업에 적합하게 사용되는지를 평가하는 것이 주 목적"이라고 설명했다.  
 
두 번째 문제는 최고등급 행진이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지금의 평가방식은 마치 중간고사를 준비하는 것처럼 공개된 평가기준을 대비하면 최고 등급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기업은 자체적으로 최고 등급을 받을 상태를 만든 이후 ESG채권평가를 받으면 된다. 
 
전문가들은 ESG 채권 평가로 최고 등급을 받을 것이 아니면 현재 특별한 메리트가 없다고 지적한다. ESG 채권 평가는 금리(채권 가격)에 영향을 미치지 않으며 ESG 전문 펀드의 투자 대상으로서 인증 역할을 할 뿐이기 때문이다. 
 
신용평가사 관계자는 "BBB 급 회사채도 발행이 순조로운 상황에서 1등급이 아니면 누가 ESG 채권을 발행하려 하겠는가"라고 말했다. 다른 신평사 관계자는 "50~60개 기업에서 ESG 채권 평가 문의가 왔다"면서 "최고 등급이 아닌 2~3등급은 현재 발행을 포기했다"라고 언급했다. 증권사에서 회사채를 매매하는 관계자는 "금리 관점에서 일반 회사채와 ESG 채권은 차이가 없다"라고 설명했다. 
 
신용평가 관계자들은 ESG 채권 평가가 시작 단계라는 점을 강조했다. 또한 대부분 신평사들은 ESG 채권 평가로 이익보다 손실을 기록하는 상황으로 알려져 있다. 신평사 관계자는 "ESG 채권 인증 여부만 판단했을 때에는 그린워싱이 발생할 경우, 누가 책임질 것인가가 문제였다"면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신평사가 나서 등급을 주고, ESG 채권의 사후관리를 하겠다고 나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ESG 평가가 과거보다 진일보했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면서 "시장이 성숙된다면 방법론이 더욱 세밀해질 것이고, 등급이 차별화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다른 신평사 관계자는 "ESG채권평가가 초창기다 보니 우량한 회사들만 평가를 받는 경향이 있다"면서 "사후 평가를 할 때도 1등급을 유지할 수 있는가에 초점을 맞출 필요가 있다"라고 말했다. 이어 "일본 역시 최초 등급제 시행 당시에는 대부분 1등급이었다"라고 덧붙였다. 
 
다만, 최고 등급이 100%인 상황은 그린워싱 가능성을 높이는 구조임은 부인할 수 없다. 회계법인 관계자는 "회사가 자금을 사용하지도 않은 상황에서 회사의 계획만을 가지고 등급을 부여하는 것은 신뢰성에 문제가 있다"면서 "등급의 경우 환경적·사회적 '성과'에 따라 엄격히 등급이 부여돼야 하나, 현재는 모든 채권이 일괄적으로 최고 등급을 받고 있어 그린워싱 우려가 있다"라고 지적했다. 
 
일부 신평사들은 자체적으로 해결책을 모색 중이다. 방법은 무디스, S&P, 피치 등 글로벌 신용평가사에서 시행 중인 ESG 기업평가다. 신평사 관계자는 "궁극적으로 ESG 채권 평가가 아닌 '기업'평가가 돼야 차별화가 생길 것"이라면서 "이에 대한 준비를 내부적으로 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박기범 기자 partner@etomato.com
 
1단계 평가 세부 내역. 출처/한국신용평가
2단계 평가 세부항목.출처/한국신용평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