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판 갈라파고스' 롯데…신동빈의 과감한 투자는 어디로
신동빈 회장 '변화' 주문했지만 실천은 요원…모호한 비전
업계 1위 많지만 '중구난방'…"면세점에서 에틸렌 팔 수 없어"
저성장 고착화 속 코로나19 장기화…'난항 예상'
공개 2021-02-03 09:30:00
[IB토마토 박기범 기자] 영어로 변화(Change)는 알파벳 g를 c로 한 글자만 바꾸면 기회(Chance)가 된다. 재개가 요즘 변화의 시대에 서 있다. 기회를 포착한 기업은 변화를 통해 성장할 수 있지만 과거에 도취해 변화를 멈춘 기업은 추억 속으로 사라질 수 있는 시대다.
 
현대차(005380), SK(034730), LG(003550) 등 5대 그룹사는 코로나19 이후 확연해진 4차 산업과 친환경 흐름을 선도하기 위해 공격적인 투자와 인수·합병(M&A) 행보로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하지만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나부터 달라지겠다"라며 변화를 재촉했던 롯데는 타 그룹사와 비교해 확연히 느린 변화의 속도로 정체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 투자은행(IB) 업계 전문가들은 세상의 변화에 도전하지 않는다는 것은 갈라파고스와 같은 고립을 자초하는 길이라고 말한다.
 
1일 IB업계에 따르면, 롯데그룹은 배달 플랫폼 2위인 '요기요', G마켓·옥션 등을 운영하는 '이베이코리아' M&A에 참여할 의사가 없는 것으로 전해졌다. M&A를 자문하는 한 관계자는 "롯데가 전사적으로 힘을 다해 온라인과 이커머스를 강화할 필요가 있지만, 이를 신동빈 회장에게 보고한다는 것은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다는 격"이라고 말했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출처/뉴시스
 
신 회장은 지난 13일 'Rethink-Restart : 재도약을 위한 준비'란 주제로 '2021 상반기 VCM'미팅에서 임원들에게 "각자의 업에서 1위가 되기 위해 필요한 투자는 과감하게 진행하라"라고 말할 정도로 투자를 독려했다. '강력한 실행력'과 디지털 트렌스포메이션(DT)에 대한 열망도 드러냈다. 신 회장의 메시지를 가장 쉽게 달성하는 것이 M&A다. 하지만 롯데는 고려조차 하지 않고 있다. 
 
'업계 1위' 많지만 희미한 연결고리…'갈라파고스화 심화'
 
국내 5위 기업인 롯데는 △면세점 △백화점 등 유통 전반 △종합음료 △껌/캔디·비스켓·초코렛·건과·빙과(아이스크림) △렌터카 △에틸렌 △셀룰로스 등 다양한 산업에서 업계 1위다. IB)업계 관계자는 "롯데의 특징은 삼성전자(005930)나 현대차처럼 규모나 스케일이 크지 않지만, 각 분야에서 일등을 하는 사업이 많다"라며 "현재 임원들은 자기 분야에서 롯데를 1등으로 만든 사람들이라 각자 성공 스토리도 있도 자부심도 강하다"라고 평가했다. 
 
문제는 1위 사업부가 많음에도 시너지가 기대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석유화학의 쌀'인 에틸렌을 면세점이나 마트에서 팔 수 없다. 화학 중심으로 재편 중인 롯데의 사업 포트폴리오는 다소 산만하다. '유통·화학·부동산(호텔 포함)·금융'등에서 신 회장의 전문 분야인 화학은 나머지와 성격이 다르다. 
 
계열사 간 차이가 확연해 포트폴리오의 일부 변화로는 체질 개선이 쉽지 않다. 그 탓에 업계 1위가 많음에도 외부 시선은 곱지 않다. 지난해 한국신용평가는 롯데그룹 분석 보고서 제목을 '사면초가(四面楚歌), 어떠한 묘수풀이 가능할지?'로 내기도 했다. 
 
코로나 19 이전 롯데그룹의 주요 재무지표. 제작/IB토마토
 
코로나19 이전에도 롯데는 실적의 고착화란 문제가 있었다. 이를 방증하는 지표는 주요 계열사 ROA의 '표준편차 대비 평균'이다. 10 이상일 경우, 평균을 유지하려는 성향이 높다고 평가되는데 주요 계열사인 호텔롯데, 롯데케미칼(011170), 롯데칠성(005300)음료, 롯데푸드(002270) 모두 10 이상이었다. 
 
김병균 한기평 평가 위원은 "2017년 이후 그룹 전반의 실적이 저하되고 있으며, 차입 부담도 커졌다"라며 "코로나19 완화 이후에도 실적 회복 속도는 더딜 것"이라고 롯데그룹의 현 상황을 진단했다.  
 
모호한 유통업 비전…구조조정 이외 무엇을 실행할 것인가
 
투자은행 관계자는 "유통 관련 리더십에 목표와 비전이 불분명하다"면서 "신 회장의 커리어가 화학 분야에 집중돼 있는 점도 한 이유"라고 지적했다. 오랜 기간 롯데그룹의 유통을 이끌었던 리더는 신동빈 회장이 아닌 그의 누나 신영자 롯데장학재단 이사장이다.
 
롯데쇼핑은 달성하기 어려운 목표를 세우고 '확장'을 시도하다 해외진출과 온라인진출 모두 실패했다. 롯데쇼핑는 중국, 인도네시아, 러시아, 베트남 등에 해외 점포를 짓고 세계화를 시도했지만 '사업 정리'란 성적표를 받았다. 이커머스 시장 진입을 위해 롯데온을 야심 차게 준비했지만 냉정한 시장의 평가를 받고 있다.
 
백화점 주요 3사 실적 비교. 출처/나이스신용평가
 
국내 시장은 너무 키웠다는 지적을 받는다. 경쟁사와의 비교에서 드러난다. 지난해 1분기 말 기준 롯데쇼핑(023530)현대백화점(069960), 신세계(004170)의 백화점 수는 각각 53개, 15개, 11개다. 코로나19가 창궐하기 전 2019년 롯데쇼핑의 별도 기준 영업이익은 2700억원으로 다른 두 곳과 비교해 각각 300억원, 500억원 정도 많다.
 
하지만 점포수가 많다 보니 감가상각비는 다른 곳보다 상당하다. 그렇기에 상각 전 영업이익(EBITDA)으로 판단할 경우, 롯데쇼핑이 압도적이다. EBITDA는 감가상각비와 같은 상각비가 제외한 영업이익 지표다. 롯데쇼핑의 별도 기준 지난해 EBITDA는 1조3500억원으로 신세계와 현대백화점의 EBITDA보다 9000억~1조원가량 높다. 물론 롯데마트가 포함돼 있기에 감가상각비가 다른 두 기업보다 높을 수밖에 없지만, 그렇다고 영업이익과 EBITDA의 차이를 최소 18~최대 33배까지 차이를 낼 정도는 아니다.
 
IB업계 관계자는 "롯데쇼핑의 백화점과 마트는 영업이익이 나기 어려운 지역까지 확장하다 보니 수익성이 낮다"면서 "비효율적인 자산이 많다 보니 M&A 관점에서 본다 하더라도 역시 신세계와 현대백화점과 비교할 때 매력이 떨어진다"라고 설명했다.
 
게다가 앞으로 변화를 주기에도 만만찮다. 사업부 간 마찰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변화는 갈등을 수반하는데 설득의 근거가 될 비전이 모호하다. M&A를 오랫동안 한 관계자는 "그룹 내 잘 나갔던 사업부에 변화를 주는 것은 상당히 어렵다"면서 "마치 대학교에서 예전에 잘 나갔던 과를 동문들 때문에 폐과를 못 시키는 것과 유사하다"라고 말했다. 이어 "위대한 소설가, 시인이 나온 학교는 국문과를 사실상 폐쇄하지 못한다"면서 "롯데에 대입한다면 업계 1위를 하고 있는데 섣불리 변화를 주기 어렵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롯데케미칼, 강한 실행력 가능할까
 
지난 2018년 7월 롯데케미칼이 선보인 TV광고. 사진/롯데케미칼
 
화학 부문은 신 회장의 '주전공'분야다. 신 회장이 경영 일선에 복귀한 이후 트럼프 미 전 대통령을 만났고 이후 2019년 5월 미국 내 ECC 공장을 신설했다. ECC공장 신설로 롯데케미칼은 납사와 에틸렌을 모두 분해할 수 있는 시설을 갖추게 됐다. 스프레드에 의해 실적이 좌우되는 화학 사업에서 납사와 에틸렌을 모두 생산, 사업 리스크를 크게 줄인 점을 전문가들은 고무적으로 평가했다.  
 
화학 부문은 타 부문과 달리 방향성이 분명하다. 롯데케미칼은 올해 'IT 소재와 모빌리티 부문 확대'를 목표로 하고 있다. 다만, 실행력이 문제다. 롯데케미칼은 지난해부터 30명 규모의 M&A팀을 별도로 가동, 변화를 모색 중이지만 가시적인 성과는 없다. 
 
또한 롯데케미칼은 M&A 타이밍이 늦다는 지적을 받는다. 지난해 전기차 배터리 소재인 동박 사업 진출을 위해 솔루스첨단소재의 인수를 검토했다. 하지만 적극적으로 움직이지 않다가 경영권을 확보하지 못하고 사모펀드운용사(PEF) 스카이레이크에 2900억원을 투자하는데 그쳤다.   
 
과거 롯데케미칼이 인수한 타이탄은 고가 인수 논란이 있었는데 근본적인 원인은 인수 시점이 늦었기 때문이다. 기업이 충분히 성장한 이후 인수했기에 가격이 높을 수밖에 없다. IB업계 관계자는 "롯데케미칼은 비싸게 M&A를 한 이후 규모를 빠르게 늘려서 경쟁자를 추월했다"면서 "이번 M&A도 창의력이 없을 경우 고가 인수 논란에 시달릴 것"으로 예상했다. 
 
박기범 기자 partner@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