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 지배구조 미스터리)①정의선 지갑 채우는 새판짜기 발걸음?
정의선 회장, 순환출자 해소 등 지배구조 개편 숙제
문제는 현대모비스 등 핵심계열사 미미한 지분
미래 기업가치 제고 배경엔 지분가치 상승 노림수
공개 2020-12-21 10:30:00
현대자동차그룹이 '정의선 시대'가 열리며 재배구조 개편 작업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경영권 승계는 우려와 잡음 없이 이뤄졌지만 순환출자 해소 등 그룹 내 복잡한 지배구조를 손질해야 하는 큰 숙제가 남겨졌다. 문제는 정 회장이 그룹의 핵심 계열사인 현대모비스와 현대차, 기아차 등의 지분이 미미하다는 점이다. 원활한 지배구조 개편을 위해 이들 지분율을 높이기 위해서는 막대한 자금이 동원돼야 한다. 물론 지배구조 개편 시도는 처음이 아니다. 2018년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 매니저먼트 등의 반대로 한 차례 실패했던 경험은 뼈아팠다. 최근 현대차그룹은 미국 로봇업체를 인수하고 정의선 회장이 지분을 가진 계열사의 통합 발표로 변화의 시계가 빨라지고 있다. 현대차그룹이 최근 펼치는 미래 모빌리티 회사로의 청사진은 기업가치 제고와 더불어 결국 원활한 지배구조 개편 작업을 위한 정 회장의 주식자산 가액 상승으로 해석될 수 있다. <IB토마토>는 정의선 회장 중심의 지배구조를 갖추기 위한 현대차그룹의 행보를 들여다본다. (편집자주)
 
                                    정의선 회장. 출처/현대차그룹
 
"고민 중이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은 지난 10월15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제2차 수소경제위원회에 참석한 자리에서 그룹의 지배구조 개편에 대해 이같이 답했다. 신중한 답변의 배경에는 2018년 시도했던 지배구조 개편 실패가 자리하고 있다. 이 트라우마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핵심 계열사의 지분 확보를 위한 두둑한 실탄이 절실하다. 현대차그룹은 미래 모빌리티 청사진을 통한 기업가치와 정 회장의 지분가치를 동시에 올리는 묘수를 찾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19일 현대차그룹에 따르면 지난 11일 미국 로봇 전문 업체 '보스턴 다이내믹스'에 대한 지배 지분을 소프트뱅크그룹으로부터 인수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지분 80%(8억8000만 달러) 규모로 현대차(005380)가 30%, 현대모비스(012330)가 20%, 현대글로비스(086280)가 10%, 정의선 회장이 20%의 지분을 각각 보유하기로 했다. 이례적으로 정 회장은 사재 2400억원을 투입했다.
 
보스턴 다이내믹스는 성장 가능성은 인정받았지만 2013년 구글, 2017년 소프트뱅크그룹이 인수했다 수익성이 낮아 매각한 회사다. 지난해 당기순손실이 1121억원으로 사업적인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정 회장의 대규모 사재 투입에 대해 책임 경영의 측면으로 볼 수 있지만 일부 전문가들은 사실상의 회사기회 유용에 의한 사익편취 논란이 있을 수 있다라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한 회계사는 "현대차든 기아차든 회사가 투자할 수 있고 그렇게 하는 게 더 우선이 되어야 하는데 정 회장이 직접 투자하기로 한 것은 문제의 소지가 있다"라며 "회사의 기회를 유용하는 것으로 의심될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다른 회계사도 "현대차그룹과의 시너지로 인해 보스턴 다이내믹스의 가치가 올라간다면 그 성과는 현대차그룹 주주가 공평하게 나눠가져야 되는 것 아니냐"며 "사익편취라는 얘기가 나올 수 있다"라고 말했다. 또 다른 전문가도 "보스턴 다이내믹스가 해외기업이라는 점에서 공정거래법상의 사익편취 적용대상이 아니라 실제 법 적용은 안되겠지만 정 부회장의 지분가치를 크게 키우는 것"이라며 실리를 챙기는 모습으로 해석했다. 또한 일각에서는 이 업체의 나스닥 상장 얘기도 흘러나오는 등 지배구조 개편을 위한 실탄 마련으로 풀이했다. 현재 실적은 미미하지만 현대차그룹의 전폭적인 지원으로 이른바 '한 방'을 노리는 셈이다.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현대차그룹은 5대 그룹 가운데 유일하게 순환출자 구조를 끊어내지 못했다"면서 "정의선 회장이 현대모비스 등 주요 계열사 지분이 적기 때문인데 최근 보스턴 다이내믹스 지분 인수에 직접 나서는 것도 결국은 기업 성장을 통한 지분 가치 상승, 이를 통한 원활한 지배구조 개편 작업으로 볼 수 있다"라고 말했다.
 
현대차그룹은 같은 날 계열사 현대오토에버(307950)가 현대엠엔소프트와 현대오트론을 흡수 합병토록 하는 안건도 처리했다. 현대오토에버는 정의선 회장이 현대글로비스(23.29%)와 현대엔지니어링(11.72%) 다음으로 가장 많은 지분(9.57%)을 갖고 있는 회사다. 이 역시 정 회장의 보유 지분 가치 상승에 업계의 이목이 쏠렸다. 
 
국내 신용평가사들은 긍정적으로 평가했지만 현대엠엔소프트 합병 비율은 논란의 여지가 있다. 현대엠엔소프트 소수주주 측은 현재 1 대 0.96으로 결정된 현대오토에버와의 합병 비율이 잘못됐다고 보고 있다. 핵심은 현대엠엔소프트가 비상장사이기 때문에 시장가치로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다는 것이다.
 
특히 합병 비율 논란은 2018년 지배구조 개편 실패를 떠올리게 한다. 현대차그룹은 2018년 현대모비스를 인적분할해 모듈과 애프터서비스 사업부를 현대글로비스와 합병한 후 현대모비스 존속법인을 그룹 지배회사로 두는 개편안을 내놓았다. 하지만 현대글로비스와 현대모비스 분할 법인 간 합병 비율(1 대 0.61)이 문제였다. 총수 일가 지분이 많은 글로비스가 합병 회사의 더 많은 지분을 가져가 모비스 주주는 상대적 손해를 보는 구도였다.
 
현대차·현대모비스·기아차 지분을 각각 2% 남짓 보유하고 있던 엘리엇은 현대차와 현대모비스를 합병한 후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해 복잡한 지배구조를 간소화하라고 요구했다. 8조3000억원 규모의 배당도 요구했다. 합병 비율에 대한 문제 의식은 세계 최대 의결권 자문기관 아이에스에스(ISS)와 국민연금의 의결권자문사인 한국기업지배구조원도 다르지 않았다. 참여연대는 "기존 순환출자를 해소한다는 점에서는 긍정적이지만 지주회사 관련 규제를 피하기 위한 방안이다"면서 "총수 일가의 이해관계만 반영된 개편안이라는 점과 합병에 따른 지분율에 대해 검증이 필요하다"라고 비판했다.
 
출처/메리츠증권
 
투자업계에서는 다양한 지배구조 개편 시나리오가 쏟아져 나온다. 정 회장이 갖고 있는 핵심계열사인 현대모비스, 현대차, 기아차 등의 지분이 미미하기 때문이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기준 정 회장은 현대차(2.62%), 기아차(1.74%), 현대모비스(0.32%)의 지분을 갖고 있다. 아버지 정 명예회장의 지분인 현대차(5.33%), 현대모비스 (7.13%)을 물려받아도 지분율이 10%에 못 미친다. 물론 최대 60%에 달하는 상속·증여세를 감안하면 지분율은 더 떨어진다.
 
다양한 지배구조 개편 시나리오 속에서도 2018년에 시도했던 현대모비스를 중심으로 이뤄지는 지배구조 개편안이 여전히 유효하다. 현대모비스는 그룹의 핵심회사인 현대차 지분 21.43%를 갖고 있는 최대주주이기 때문이다. 오너 일가→현대모비스(존속법인)→현대차→기아차 등의 구조로 이어지는 방안이 어렵고 복잡한 다른 방안을 하는 것보다 정공법이라는 판단이다. 
 
 
 
문제는 돈이다. 이 순환출자를 끊는 가장 심플한 방법은 정 회장이 현대모비스로 향하는 순환출자 지분 23.7%(기아차(000270) 17.3%·현대제철(004020) 5.8%·현대글로비스 0.7%)을 직접 매입하면 된다. 메리츠증권에 따르면 약 5조2000억원이 필요한데 현재 총수 일가(정 명예회장·정 회장)가 보유하고 있는 지분가치(비상장 포함)는 약 8조5000원이다. 김준성 메리츠증권 연구원은 "그룹 핵심 계열사인 현대차와 현대모비스를 제외하면 약 4조원으로 하락하고 여기에 지분 매각 과정에서의 주가 하락, 세금 등을 감안하면 오너가의 가용 현금은 약 3조원 내외인 셈이다"면서 "필요한 5조2000억원 대비 턱 없이 부족한 액수로 현대차그룹 입장에선 신의 한 수가 필요할 수밖에 없는 현실적 이유다"라고 분석했다. 
  
핵심 계열사의 정 회장 지분을 올리기 위해서는 기업가치 제고가 절실하다. 미래 모빌리티 청사진은 정 회장의 지분가치 상승과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지배구조 개편을 서두른다고 그럴 수 없는 이유다. 현대차그룹은 지난 10일 'CEO 인베스터 데이'를 개최하고 대대적인 미래 청사진을 밝혔다. 2025년까지 총 60조1000억원을 투자한다. 자동차부문 영업이익률 8% 확보, 글로벌 점유율 5%대 달성 등 중장기 재무목표도 공개했다. 현대차그룹 관계자는 "지배구조 개편에 대해 확인해 줄 게 없다"면서 "미래 모빌리티 청사진을 달성하기 위해 모든 임직원이 최선을 다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노태영 기자 now@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