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3일 롯데그룹 2인자인 황각규 롯데지주 부회장이 물러났다. 롯데그룹이 연말 정기 인사가 아닌 임시 이사회를 열고 고위급 인사를 하는 것은 이번이 창립 이래 처음이다. 재계는 이번 인사를 두고 사상 초유의 실적 부진을 맞게 된 롯데그룹의 문책성 인사로 풀이하고 있다. 실제 내부에서는 위기감이 감도는 분위기다. 외부에서 보는 롯데에 대한 시선도 예전만 못하다. 이에 <IB토마토>는 롯데의 역사와 주요 계열사의 실적을 집중 분석하고, '혁신'에 대한 IB전문가들의 의견을 담아 미래를 전망해보고자 한다.(편집자 주)
[IB토마토 박기범 기자] '재계 5위'의 유통공룡 롯데그룹이 심상치 않다. 최근 몇 년간 롯데그룹은 내우외환으로 제자리걸음을 하며 경고등이 켜진지 좀 됐지만, 문제 해결보다는 실적 개선을 찾아보기 어려운 답보상태가 오히려 심각해지고 있다. 롯데그룹은 양과 질 측면 모두에서 성장 정체라는 파도가 덮친 셈이다.
14일 <IB토마토>가 금감원 전자공시와 나이스신용평가의 데이터를 바탕으로 2017년 이후 롯데그룹 주요 계열사의 매출액 변화율, 영업이익과 같은 주요 실적을 집계한 결과, 지난 3년간 롯데 주요 계열사들은 대부분 한국 평균 기업들의 실적을 밑도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내기업과 롯데그룹 주요 지표 비교. 출처/한국은행, 금감원 전자공시
한국은행에 따르면 국내 기업들의 3년 평균 매출액 증가율과 영업이익률은 각각 4.4%, 6.3%다.
롯데제과(280360)와
롯데케미칼(011170)을 제외하고 3년 평균 매출액증가율이 4.4%에 미치지 못했다. 매출액 증가율은 매출액이 전년도에 비해 당해 연도에 얼마나 증가했는지를 나타내는 비율이다. 김철중 홍익대 경영학과 교수는 그가 쓴 '재무제표를 활용한 기업분석'에 "매출액증가율은 기업의 외형적 성장률을 판단하는 대표적인 비율"이라고 설명했다.
롯데제과의 경우, 2017년 지배구조 개편에 따라 줄어든 사세를 회복하는 과정이었다는 점을 고려할 때 한국 평균 기업보다 매출액이 더 늘어난 계열사는 롯데케미칼밖에 없다.
롯데케미칼의 매출액증가율도 '착시'가 있다. 롯데케미칼의 2017년 매출액 증가율은 20%다. 이는 2016년 삼성그룹으로부터 롯데첨단소재,
롯데정밀화학(004000)을 인수한 효과가 반영됐기 때문이다. 롯데의 품에 들어온 이후 롯데케미칼은 2018년 1.3%, 2019년 -5.9%, 2020년 1분기 -12%(전년 동기 대비)을 기록하며 역성장 중이다.
'영업의 질'을 대변하는 영업이익률 역시 마찬가지다. 롯데케미칼을 제외하면 대부분 4% 수준에 머물렀다. 롯데케미칼 역시 영업이익률이 빠르게 줄어들고 있다. 고정원가비율이 높은 화학산업 특성상, 매출액 감소에 따른 타격이 변동원가비율이 높은 타 산업보다 높을 수밖에 없다.
다만, 국내 기업들의 3년 평균치는 다소 오차가 있다. 강창구 한국은행 금융계정부 기업통계팀 팀장은 "매년 통계를 내는 데이터베이스가 다르다 보니 산술평균한 평균 데이터가 100% 정확하지는 않다"라고 데이터의 한계를 설명했다.
변화 없는 ROA…저성장의 일상화
총자산 순이익률(ROA) 지표를 기준으로 판단한다면 롯데그룹의 주요 계열사들의 비효율적 경영은 고착화돼있다. 총자산 순이익률이란 자산을 얼마나 효율적으로 운용했느냐를 나타내는 지표로서 산업의 성격마다 다르지만, 통상적으로 100%를 중심으로 판단한다.
주요 롯데 계열사의 ROA는
롯데푸드(002270)를 제외하면 모두 100% 미만이다. 특히 호텔롯데는 35.5%에 그쳤다. 100원의 자산이 있을 때 35원의 매출을 일으킨다는 의미다. 참고로 한국은행에 따르면 호텔업이 속한 숙박업의 ROA는 45%였다.
백화점 주요 3사 실적 비교. 출처/나이스신용평가
하지만 점포수가 많다 보니 감가상각비는 다른 곳보다 상당하다. 그렇기에 상각 전 영업이익(EBITDA)으로 판단할 경우, 롯데쇼핑이 압도적이다. EBITDA는 감가상각비와 같은 상각비를 비용처리하지 않은 수익성 지표다. 롯데쇼핑의 별도 기준 지난해 EBITDA는 1조3500억원으로 신세계와 현대백화점의 EBITDA보다 9000억~1조원가량 높다. 물론 롯데마트가 포함돼 있기에 감가상각비가 다른 두 기업보다 높을 수밖에 없지만, 그렇다고 영업이익과 EBITDA의 차이를 최소 18~최대 33배까지 차이를 낼 정도는 아니다.
투자은행(IB) 업계 관계자는 "롯데쇼핑의 백화점과 마트는 영업이익이 나기 어려운 지역까지 확장하다 보니 수익성이 낮다"면서 "비효율적인 자산이 많다 보니 인수·합병(M&A) 관점에서 본다 하더라도 역시 신세계와 현대백화점과 비교할 때 매력이 떨어진다"라고 설명했다.
신동빈 시대, '변화보다 안정' 트렌드 이어질까?
또 하나의 문제는 이 상태를 고착화하려는 경향도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호텔롯데, 롯데칠성음료, 롯데케미칼 ROA의 '표준편차 대비 평균'은 10 이상이다. 해당 지표가 10 이상일 경우, 평균을 유지하려는 성향이 높다는 의미다. 롯데쇼핑도 7.2를 기록했다.
문제는 매출액증가율이 둔화된 가운데 해당 지표가 10 이상일 경우, 그 기업은 정체돼 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일례로 지난 3년간
롯데칠성(005300)음료 ROA의 '평균/표준편차'는 15.12, 매출액증가율은 2.3%다. 매출액이 미미하게 늘어나는 까닭은 음료나 주류 산업이 성숙기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특별한 변화를 주고 있지 않다. 지난 3년간 롯데칠성음료의 총자산은 3조2000억~3조4000억원 사이를 횡보했다. 현금성자산과 감가상각에 따른 유형자산의 변화 수준이다. 긍정적으로 본다면 '성숙'했고, 부정적으로 본다면 '정체'된 것이다. 또한 ROA 수준도 업계 평균인 65~67%를 소폭 웃도는 70% 정도에 그치고 있다.
강현기 DB금융투자 연구원은 "재무비율이 좋은지 나쁜지를 판단하는 기준을 마련하는 것이 중요한데, 평균보다는 평균/표준편차를 제안한다"면서 "이것이 높다면, 수익성, 효율성이 우수하면서도 시기에 따라 그 편차가 적기에 해당 기업은 경쟁 우위 요소가 확립돼 있으며, 이는 쉽게 깨어지지 않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정체된 롯데'에 대한 불안감은 그룹 내부에서도 포착된다. 롯데그룹의 한 임원은 "롯데그룹 내의 계열사 중에서 자신 있게 1등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 현재 없다"면서 "하지만 신동빈 회장은 혁신을 추구하는 스타일이다"라고 말했다. 이어 "만약 신동빈 회장이 각 사업부문 임원들에게 '1등 기업이 되는 방안을 내놓아라'라는 미션을 내린다면 특별한 아이디어를 내놓기 어렵다"면서 "롯데온 서비스가 현재 롯데그룹의 상황을 대변하는 대표적인 사례"라고 덧붙였다.
IB업계 관계자는 "세상은 변화하는데 롯데그룹은 정체돼 있다"면서 "4차 산업으로 변화하는 흐름에 특이점이 온다면 롯데 그룹은 주요 대기업 중 가장 큰 타격을 받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박기범 기자 partner@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