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B토마토 전규안 전문위원] 미국과 중국의 갈등과 회계는 무슨 관련이 있을까? 얼핏 생각하면 아무 관련이 없을 것 같으나 미·중 갈등은 회계에도 영향을 미친다.
오바마 정부 때인 2013년 미국 공개기업회계감독위원회(PCAOB)와 중국 증권감독관리위원회(CSRC)가 체결한 회계 관련 양해각서(MOU)를 트럼프 정부가 폐기하기로 결정했다는 보도가 지난 7월에 있었다. 이 양해각서는 어느 한 쪽이 해지를 통보하면 30일 뒤에 종료된다. 양해각서에 따라 미국은 중국 기업에 대하여 미국의 회계 관련 규정 준수 의무를 면제했으므로 중국 기업은 미국에 진출하더라도 미국 대신 중국 회계 관련 규정을 따르면 되었다. 따라서 중국 기업은 미국의 회계개혁법안인 ‘사베인스 옥슬리 법(Sarbanes-Oxley Act, SOX)’을 준수하지 않아도 미국 증시에 쉽게 상장할 수 있었고, PCAOB의 조사를 받아야 할 중국 기업이 있는 경우 PCAOB가 직접 조사를 하지 않고 해당 기업을 조사한 내용을 중국의 CSRC로부터 통보받았다.
그러나 이 양해각서는 중국 기업이 미국 회계와 공시 규정을 우회하는 수단으로 악용된다는 비판을 받았다. PCAOB는 중국 회계법인들을 조사할 수 없었고, CSRC는 자국법이나 자국 이익을 이유로 자료 제출을 거부하기도 했다. 따라서 PCAOB와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는 중국 당국이 정보제공 요청을 받아들이지 않아서 미국에 상장된 중국 기업의 회계를 파악하기 어렵다는 불만을 계속해서 제기해왔다.
이러한 논란에 불을 지핀 것은 지난 4월 나스닥 상장기업이면서 ‘중국판 스타벅스’로 불리던 중국 루이싱커피(瑞幸, luckin coffee)의 회계부정 사건이다. 2019년 나스닥에 상장한 루이싱커피는 2019년 매출액을 22억 위안(약 3,800억원) 과대계상하였음을 인정하고 2020년 6월29일 상장폐지되었다.
왜 양해각서 폐기 논란이 벌어진 걸까? 양해각서 폐기의 표면적인 이유는 투자자 보호와 뉴욕증시의 신뢰성 확보다. 회계부정으로 나스닥에서 퇴출된 루이싱커피의 사례처럼 불투명한 중국 기업이 뉴욕증시에 상장되면 미국 투자자가 피해를 보고 뉴욕증시의 신뢰성이 하락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중 간 무역전쟁과 홍콩 자치권 논란,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 등을 두고 미·중 갈등이 커지는 가운데 나왔다는 점에서 순수한 회계문제만으로 인식하기 어렵다는 시각도 있다. 회계는 “정치적 과정의 산물”이라는 말도 있고, 회계는 기본적으로 이해관계자들의 정치적 협상의 결과라는 성격도 있기 때문이다.
양해각서가 실제로 폐기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첫째, 중국 기업의 뉴욕증시 상장이 어려워질 것이다. 미국의 엄격한 회계 관련 규정과 법규를 지키고 미국 PCAOB의 직접 조사를 받아야 한다면 뉴욕증시에 상장하는 중국 기업은 많지 않을 것이고, 이는 미국 투자자로부터 자금을 조달하고자 하는 중국 기업이나 중국의 우수한 기업에 투자하려는 미국 투자자 모두에게 손해가 될 것이다. 둘째, 뉴욕증시에 상장된 중국 기업의 회계보고 비용이 증가할 것이다. 우리나라는 2011년 국제회계기준(IFRS)을 전면적으로 도입한 반면에 미국은 미국 고유의 회계기준(US GAAP)을 채택하고 있고, 중국은 독자적인 회계기준에 국제회계기준을 보완하여 사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미국과 중국의 회계기준은 다르다. 미국이 어떤 입장을 취할지 아직 모르지만, 만약 중국회계기준을 국제회계기준으로 인정하지 않는다면 뉴욕증시에 상장된 중국 기업은 중국 회계기준으로 작성된 재무제표를 국제회계기준이나 미국회계기준으로 재작성하는 비용을 지불해야 할 것이다. 이 과정에서 예상하지 못한 회계 이슈가 미·중 간에 제기될 수도 있다.
미·중 갈등은 여러 방면에 영향을 미치며, 회계도 예외는 아니다. 아직은 미국이 국제회계기준을 도입하고 있지 않지만, 도입하는 경우에는 국제회계기준도 지금보다 더 많은 변화가 있을 것이고 우리나라도 많은 영향을 받을 것이다. 미·중 갈등이 주위에 건설적인 영향을 주어 주변국들이 불필요한 피해를 보지 않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