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금 확보 분주한 SK하이닉스, '비어가는 곳간' 고심
수익 줄고 투자는 그대로…순차입금 5년래 최고 수준
지난해 잉여현금적자 8조원 웃돌아…올 1분기도 유출 흐름 지속
공개 2020-07-20 09:10:00
[IB토마토 박기범 기자] 코로나19 여파가 언제까지 이어질지 모르다 보니 대부분 기업들은 현금 확보에 분주한 모습이다. 삼성전자(005930)에 이어 우리나라 시가총액 2위 기업인 SK하이닉스(000660)마저도 현금 확보 흐름에 동참하고 있다. 
 
17일 재계 관계자는 "SK하이닉스의 곳간이 예전만 못하다"면서 "SK하이닉스가 다양한 방식으로 현금 마련 방안을 모색 중"이라고 말했다. SK하이닉스가 현금 걱정을 한다는 것은 낯설다. 전 세계 세 손가락 안에 드는 메모리반도체 제조사로서 2018년 20조원이 넘는 영업이익을 기록했던 회사가 SK하이닉스다. SK하이닉스는 2018년 역사적인 이익을 낸 이후 실적이 줄고 있지만, 지난해 2조5000억원이 넘는 영업이익을 냈고 올 1분기 역시 7000억원이 넘는 영업이익을 기록했다. 
 
하지만 현금흐름 관점에서 보면 현금 마련이 왜 필요한지 이해가 된다. SK하이닉스는 지난해 8조원이 넘는 잉여현금적자를 냈다. 1조260억원의 배당금까지 고려할 경우, 적자 규모는 9조원이 넘는다.
 
회사에서 현금이 빠져나간 까닭은 수익이 줄고 있지만, 투자 기조는 이어지기 때문이다. 메모리 판가 하락, 수요 감소 등으로 2018년 말 27조 2721억원이었던 상각 전 영업이익(EBITDA)은 지난해 11조 2661억원까지 줄었다. 상각 전 영업이익은 영업으로 현금을 어느 만큼 창출했는지 측정하는 대표적인 지표다. 
 
 
 
현금 유입량은 줄었지만, 투자(Capex, 자본적 지출)규모는 큰 차이가 없었다. SK하이닉스의 지난해 투자 규모는 14조 5400억원으로 2018년 16조8350억원과 비교해 큰 차이는 없었다. 올해 역시 이 같은 추세는 이어지고 있다. 지난 1분기 3조원이 넘는 상각 전 영업이익을 기록했으나, 그에 상응하는 투자 집행과 5000억원이 넘는 운전자금 유출이 수반되며 6000억원 가량 현금이 회사에서 빠져나갔다. 염동환 나이스신용평가 연구원은 "2018 년 4 분기 이후 업황 부진에 따른 수익성 저하로 상각 전 영업이익 창출력이 크게 감소해 현금흐름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지난해 투자 기조를 유지했던 배경에는 올해 실적이 회복될 것이란 기대감이 수반돼 있었다.  2019년 당시 영국의 시장조사 기관인 IHS Markit은 올해 DRAM과 NAND플래시의 수요 대비 공급이 100%를 밑돌 것으로 전망했다. 쉽게 말해 메모리 반도체 수요를 제조사들이 맞추지 못할 것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하지만 코로나19는 전망을 뒤집어 놓았다. 미 시장조사회사 IDC에 따르면 올해 전 세계 스마트폰 출하대수는 전년 대비 12% 감소했다. 이는 사상 최대의 감소폭이다. 스마트폰 매장의 휴업으로 판매가 감소한 데다, 중국 등의 생산이 감소한 영향이다. 
 
반도체 산업은 대규모 장치산업으로서 공급이 비탄력적인 특성을 지닌다. 경기가 변동한다고 한 번 결정한 투자를 철회하기 어렵다는 의미다. 투자 속도를 조절할 수는 있지만 그 한계가 있다. 전반적으로 산업위험도 높다. 나이스신용평가 기준 나머지 지표는 최상위권에 위치해 있지만, 산업위험은 'BB'등급으로 거꾸로 두 번째에 위치해 있기도 하다.  
 
SK하이닉스 입장에서는 난감할 수밖에 없다. 투자는 여전히 요구되고 있고 수요 감소에 따라 현금창출력은 저하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 결과, SK하이닉스는 외부에서 현금을 끌어다 쓰는 모습이다. 
 
2018년 말 연결 기준 총차입금 5.2조원, 순차입금 기준 마이너스 (-)3조원이었던 SK하이닉스의 차입금은 올 1분기 말 연결 기준 총차입금은 13.7조원, 순차입금은 8.9조원까지 늘어났다. 순차입금은 근 5년래 최고치다. 리스부채가 1.2조원임을 고려할 때 지난해 회계기준 변경 효과는 크지 않아 보인다. 
 
차입금 의존도 역시 2.5배가량 늘었다. 2018년 말 8.3%에 불과했던 차입금의존도는 지난해말 기준 18.1%, 올해 1분기 말에는 20.3%로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다. 강교진 한국신용평가 연구원은 "빠르게 확대되는 수요에 대응하기 위한 시설투자가 이어지고 있다"면서 "NAND 사업의 경쟁력 유지와 DRAM 공정 미세화 난이도 상승에 따라 전반적인 투자부담이 증가하고 있는 점은 부담요인"이라고 지적했다. 
 
박기범 기자 partner@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