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쏟아지는 한계기업 ‘생존기로’)⑤수익기반 흔들리는 정유·화학…화두는 '불안한 미래'
정제마진 13주 연속 마이너스…'팔 수록 손해'
파라자일렌(PX) 중국 공급과잉 우려…증설분 국내 총 생산량과 맞먹어
공개 2020-06-22 09:30:00
최근 우리 기업들은 경쟁력 약화라는 기저질환에 코로나19 사태로 경영여건이 악화되면서 국내 대표 기업들도 속절없이 한계기업으로 추락하고 있다. 영업활동으로 벌어들인 이익으로 이자도 못 갚는 이른바 '좀비기업' 규모가 사상 최대라는 불명예도 안게 됐다. 코로나19가 장기화할수록 기업의 자금난이 가중되면서 디폴트(채무불이행) 공포에 직면, 생존을 위협받는 기업은 더욱 속출할 것으로 우려된다. <IB토마토>는 디스플레이·전자·반도체·유통·외식·건설·항공·해운·조선·석유·화학·자동차·부품·철강 등 다양한 산업군의 기업들이 처한 심각한 한계상황과 이중·삼중고의 경영난을 극복할 수 있는 생존전략을 함께 살펴보고자 한다.(편집자 주)
 
[IB토마토 김태호 기자] 전 세계를 휩쓴 코로나19가 정유·화학 산업 전반에도 심각한 피해를 안겨주고 있다. 석유제품 수요가 감소하고 공급은 넘치는데 국제 유가가 폭락하며 정제 마진이 급감하고 있다. 비싼 값에 사놓은 석유 재고 평가 손실까지 더해지며 3중고에 빠졌다. 파라자일렌(PX) 스프레드도 우하향 곡선을 그리고 있다. 업계는 제반 이유에 따른 스프레드 하락이 중기적으로 지속될 가능성이 있다는 불안한 전망을 내놓고 있다. 국내 정유·화학사의 수익기반이 흔들리고 있는 셈이다.
 
19일 정유업계에 따르면, 6월 둘째 주 싱가포르 복합정제마진은 배럴 당 마이너스(-) 0.4달러를 기록했다. 13주 연속 마이너스로, 역대 최장기 불황을 이어가고 있다.
 
정제마진은 석유제품 가격에서 원유가격·수송비 등을 뺀 것으로, 국내 정유사의 수익성을 좌우한다. 정제마진이 1달러 하락할 경우, SK이노베이션(096770), S-Oil(010950), GS칼텍스, 현대오일뱅크 등 국내 4개 정유사의 합산손익은 지난해 기준으로 연 1조2000억원 감소하게 된다. 손익분기점은 기업마다 다르지만 보통 배럴당 4~5달러 수준으로 알려져있다. 즉, 현 수준의 정제마진으로는 ‘팔수록 손해’가 나는 셈이다.
 
정제마진은 유가와 석유제품 수요-공급 곡선에 의해 결정된다. 즉, 수요가 적고 공급이 많으면 정제마진이 하락하는 구조다. 현재 세계 석유제품 수요는 미·중 무역분쟁과 코로나19 확산 여파 등으로 극히 위축된 상황이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올해 세계 원유 수요가 일일 평균 810만 배럴 감소할 것으로 전망했다. 11년 만의 마이너스 성장이다.
 
세계 석유제품의 약 60%가 운송용 원료로 사용되므로, 석유제품 수요는 세계 경제성장률과 대체로 비례한다. 특히 국내 정유 4사는 매출의 55%가량을 아시아 중심 수출에서 창출하고 있으므로, 수익성이 중국 경제성장률에 많은 영향을 받는다.
 
세계 경제성장률이 저성장 기조와 코로나19 확산 여파로 크게 위축되고 있다. 최근 OECD는 올해 세계 경제성장률을 마이너스(-) 6%로 전망하고, 코로나19의 2차 확산이 발생할 경우 -7.6%까지 떨어질 것으로 봤다. 중국 경제성장률은 마이너스 2.6%에서 -3.7% 사이에 머물 것으로 봤다. 중국의 지난해 경제성장률이 6.1%였다는 것을 감안하면, 거진 9~10%포인트가 하락하는 셈이다.
 
SK이노베이션 울산 CLX에 준공한 VRDS. 사진/SK에너지
 
공급과잉 우려도 부각되고 있다. 업계는 코로나19 확산이 정체되면 석유제품 수요는 곧 회복될 것으로 전망하지만, 공급과잉은 다소 지속될 수 있다는 예측을 내고 있다.
 
한국신용평가에 따르면, 세계 석유제품 정제설비 신증설 규모는 지난해 기준 연간 2.0mb/d로 직전연도인 2018년의 0.5mb/d 대비 크게 증가했다. 이 같은 기조는 당분간 지속돼, 올해 1.5mb/d, 내년 1.7mb/d의 글로벌 설비 증설이 예정돼 있는 상황이다.
 
세계 석유제품 수요 2위인 중국이 적극적인 자급자족 정책을 펼치고 있는 탓이다. 이 경우, 국내 정유사들은 단기적으로 가동률을 조정하고, 중기적으로는 정제설비 투자를 축소하는 전략 등을 고려할 수밖에 없다.
 
오유나 한국신용평가 선임연구원은 “석유제품 공급과잉 상태가 장기간 지속될 것으로 전망한다”면서 “예정된 증설규모 중 아시아 증설이 약 70%를 차지한다는 점이 국내 정유사에 불리하게 작용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어 오 연구원은 “수급환경 영향으로 2019년 이전의 정제마진을 기대하기 어렵지만, 업계 대응에 따라 최소한 손익분기점 이상의 정제마진은 회복할 가능성이 크다”라고 덧붙였다.
 
정유사 ‘효자’ 파라자일렌도 중국발 공급과잉 우려
 
국내 정유사와 한화토탈이 주력으로 생산 중인 파라자일렌(PX) 역시 중국발 공급과잉 우려에 놓여있다.
 
국내 최대 PX 생산능력 보유 업체인 한화토탈(연 200만톤)은 매출의 약 30%를 PX, SM 등 중간제품군에서 창출하고 있다. 그 뒤를 잇는 S-Oil(연 190만톤)은 매출의 16%를 PX 등 석유화학 부문에서 내고 있다. SK이노베이션 종속회사인 SK종합화학(연 133만톤)은 PX로만 매출의 22%를, SK인천석유화학(연 130만톤)은 26%를 확보하고 있다. GS칼텍스(연 135만톤)도 매출의 8%가 PX에서 나온다.
 
현대오일뱅크는 공동회사인 현대코스모(연 118만톤)를 통해 PX를 생산하므로, PX 관련 실적을 영업이익 하단의 지분법이익으로 반영해 당기순이익을 낸다. 현대오일뱅크는 지난해 현대코스모로부터 421억원의 지분법 이익을 반영했는데, 이는 법인세비용차감전순이익의 약 10% 규모였다.
 
PX의 원재료인 나프타와 PX제품의 가격 차이를 나타내는 PX 스프레드는 지난해 2분기부터 약세를 보이고 있다. 현재 톤당 200달러 초반대를 하회하는 수준에 머물고 있으며, 지난 12일에는 160달러까지 주저앉은 바 있다. 업계에 따르면, 정유사 기준 PX 스프레드의 손익분기점은 250달러 내외로 추정되고 있다. 현재 지표만 놓고 보면, PX 역시 팔아도 손해인 상황인 셈이다.
 
 
PX 스프레드 축소 또한 중국 자급률 증가 정책 등에서 비롯됐다. 중국은 올해와 내년에 걸쳐 900만톤 이상의 PX 생산시설을 증설할 계획이다. 지난해 기준 국내 총 PX 생산능력이 1050만톤이므로, 중국은 국내 생산량과 맞먹는 규모의 증설을 계획하고 있는 셈이다.
 
한국의 대 중국 PX 수출비중은 무려 90%에 이른다. PX가 석유제품 대비 수익성이 높아 정유사의 ‘효자’ 노릇을 톡톡히 해왔다는 점을 감안하면, 중국의 공격적인 PX 증설은 결과적으로 국내 정유·석유화학사의 영업이익률을 짓누를 수도 있다. 게다가 PX는 기초 원료제품이라 제품의 질적 차별화도 어렵다.
 
코로나19 여파로 수요 또한 급감한 상황이다. PX는 테레프탈산(TPA)의 원료가 되고, TPA는 의류, 페트병 등 다양한 생활 필수품에 투입되므로, PX 수요 또한 세계 경제성장률과 밀접하다.
 
오유나 선임연구원은 “올해 중국 업체들의 PX 증설이 이어질 것으로 보여 제품 수급 저하와 마진의 하향기조는 유지될 것으로 예상된다”라고 분석했다.
 
업계 관계자도 “중국의 대규모 증설 영향으로 파라자일렌 공급과잉이 올해 이후 심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수익성 하락에 재무건전성 악화…정유사, 신용등급 전망 하락
 
수익 창출력 감소로 대규모 투자를 선제적으로 집행했던 일부 정유사들의 재무부담이 늘어났다. 이는 곧 신용등급 전망 하향의 원인이 됐다.
 
나이스신용평가, 한국신용평가, 한국기업평가 등 국내 3대 신용평가사는 최근 신용등급 정기평가에서 SK에너지, S-Oil, 한화토탈의 장기신용등급 전망을 ‘안정적’에서 ‘부정적’으로 조정했다.
 
SK에너지는 감압잔사유 탈황설비(VRDS)투자 등과 맞물려 지난해 말 조정순차입금/상각전영업이익(EBITDA)이 3.7배까지 상승했다. 나신평과 한신평은 등급전망 안정적 복귀 트리거 중 하나로 3배를, 한기평은 1.5배를 제시했다.
 
S-Oil 또한 약 4조8000억원이 투입된 RUC&ODC 투자 등으로 지난해 연결 기준 순차입금/EBITDA 배수가 5.4배까지 상승했다. 한화토탈도 수익성 저하 여파로 지난해 별도 기준 순차입금/EBITDA 2.6배를 기록하는 등 안정적 요건을 충족하지 못하게 됐다.
 
이인영 나이스신용평가 수석연구원은 “SK에너지는 2021년 이후 이익창출력 일부 회복에도 순차입금/EBITDA 3~4배의 수준을 기록하며 높아진 채무부담 수준이 지속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판단된다”면서 “S-Oil은 중기적으로 순차입금/EBITDA 3.5~4배 수준에 머물 것으로 예상된다”라고 분석했다.
 
김태호 기자 oldcokewaver@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