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쏟아지는 한계기업 ‘생존기로’)④팬데믹에 직격탄 맞은 항공·해운, 생존 걸린 '버티기' 돌입
아시아나·이스타·에어부산, 자본잠식 상태
자본잠식기업 6개월 내 보유 현금 소진 확률, 최대 17.91%
공개 2020-06-19 09:30:00
최근 우리 기업들은 경쟁력 약화라는 기저질환에 코로나19 사태로 경영여건이 악화되면서 국내 대표 기업들도 속절없이 한계기업으로 추락하고 있다. 영업활동으로 벌어들인 이익으로 이자도 못 갚는 이른바 '좀비기업' 규모가 사상 최대라는 불명예도 안게 됐다. 코로나19가 장기화할수록 기업의 자금난이 가중되면서 디폴트(채무불이행) 공포에 직면, 생존을 위협받는 기업은 더욱 속출할 것으로 우려된다. <IB토마토>는 디스플레이·전자·반도체·유통·외식·건설·항공·해운·조선·석유·화학·자동차·부품·철강 등 다양한 산업군의 기업들이 처한 심각한 한계상황과 이중·삼중고의 경영난을 극복할 수 있는 생존전략을 함께 살펴보고자 한다.(편집자 주)
 
[IB토마토 박기범 기자] #스튜어디스 A씨(29)는 하루하루가 두렵다. 지난해에도 일본과의 무역 마찰로 항공사가 힘들었지만 이 정도는 아니었다. 지금은 회사로 출근하는 날보다 유·무급휴가로 쉬는 날이 더 많다. 바빴던 날이 언젠지도 기억이 가물거린다. 코로나19 사태가 빨리 종결되길 바라지만 기약이 없다. 그는 밤마다 정리해고 통보를 받는 꿈을 꾸지 않기만을 바라며 잠을 청한다. 
 
항공업계가 수년간 고사 위기를 맞고 있다. 지난해에는 유례없는 과열 경쟁까지 점화됐다. 18일 업계에 따르면 2019년 3월 플라이강원과 에어프레미아·에어로케이 등이 국토교통부로부터 저비용항공사(LCC)라이선스를 받았다. 항공사가 난립하며 항공업계는 구조적 공급과잉 우려가 제기됐다. 미·중 무역갈등에 이어 일본의 정치 리스크까지 가세하며 항공 수요는 여객운송과 화물운송을 가리지 않고 증발했다. 
 
이미지 출처/뉴시스
 
아시아나항공(020560), 이스타항공 등은 한계기업으로 분류될 수준으로 지난해 말 실적이 악화됐다. 특히 이스타항공은 지난해 908억원의 당기순손실을 기록, 완전 자본 잠식 상태에 놓였다. 이스타항공은 부족한 경쟁력 탓에 대내외 악재를 이겨내지 못하며 2011년부터 2016년까지 완전 자본 잠식에 빠졌다. 에어서울 역시 사정은 유사하다. 5년간 451억원의 결손이 누적되며 완전 자본 잠식 상태다. 
 
이 같은 상황에서 코로나19 사태로 국가 간의 하늘길이 막히며 항공수요는 완전히 사라져버렸다. 지난 5월 인천공항을 이용한 승객은 전년 대비 98% 줄었다. 아시아나항공은 지난 1분기 5490억원의 당기순손실을 내며 부채비율이 분기 말 기준 1만6872%까지 치솟았다. 아사아나항공은 2018, 2019년 부진한 실적에 코로나19까지 겹치며 부분 자본 잠식 상태에 빠졌다. 
 
상황이 크게 악화된 탓에 통상적으로 한계기업을 판단하는 지표인 이자보상비율은 일반 기업들과 다른 수치가 나온다. 이자보상비율은 통상 100%를 전후로 판단한다. 150%를 넘을 경우, 빚을 갚을 능력이 충분하다고 판단하며 100% 미만이면 한 해 번 돈으로 한 해 이자도 다 갚지 못하는 잠재적 부실기업으로 간주한다. 3년 연속 이자보상비율이 100% 미만인 경우, 한계기업으로 판단한다. 
 
조사 대상 기업들은 대부분 음수다. 영업손실을 낸 탓이다. 에어서울은 영업을 개시한 이후 지난해를 제외하고 매년 이자보상비율이 마이너스였다가 올해 플러스(+) 전환에 성공했지만, 여전히 이자비용도 갚지 못하는 수준이다. 여타 다른 회사도 사정은 비슷하다. 2018사업연도부터 지난 1분기까지의 영업이익을 통산할 경우, 흑자인 기업은 없다. 즉, 3년으로 시야를 넓혀봐도 이자보상비율이 0% 이상인 기업이 없다는 의미다. 
 
해운 업계도 사정은 비슷하다. 공급 과잉이 만성화됐다. 2000년대 후반부터 2010년대 초반 건화물선·유조선·컨테이너선을 가릴 것 없이 물동량보다 많은 공급량을 기록했으며, 2009년 말 우리나라의 세계 상선대 보유 순위는 5위까지 도약했다. 해상 운송 서비스의 공급량이 늘어나며 선주와 화주 사이의 가격 싸움에서 선주가 이기기 어려워졌다. 유가 변동에 따른 가격 상승분을 전가하기 쉽지 않게 됐다. 또한 악성 용선계약으로 고정비도 높아 적자가 만성화됐다. 
 
 
흑자가 나기 어려운 구조 탓에 업계 1위 선사였던 한진해운은 경영난으로 2017년 파산 선고를 받았다. 현재 국내 1위인 HMM(011200)도 마찬가지다. 실적이 좋아졌다고 하지만 20분기 연속 영업적자다. 9년 평균 원가율이 101%에 이르며 4조5662억원의 결손금을 쌓았다. 자본잠식률은 34.8%에 이른다. 해운업계 5위인 흥아해운(003280)은 2016년 이후 누적된 적자로 자본잠식률이 43%에 이른다. 결국 지난 3월 흥아해운은 채권 금융기관의 공동관리(워크아웃)신청을 결정했다. 두 기업 모두 2016년 이후 영업이익을 기록한 적이 없어 이자보상비율이 항공업계 주요회사들과 마찬가지로 마이너스다. 
 
전문가들은 항공·해상 운송 주요 기업의 생존 방법을 쉽게 제시하지 못했다. 일반적인 기업들이 한계 상황을 고민한다면, 항공·해상 운송 주요 기업들은 이미 한계 상황인데다가 코로나19 여파를 가늠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상호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모든 산업 군 중에 현금 소진 위험이 가장 높은 산업군으로 항공ㆍ해운업 등이 포함된 운송업을 꼽았다. 이 연구원은 "자본 잠식 기업의 경우 6개월 이내 보유 현금을 소진할 확률이 최대 17.91%로 추정된다"면서 "항공·해운업 등이 포함된 운송 산업의 유동성 위기 가능성이 가장 높을 것"으로 예상했다. 
 
출처/자본시장연구원
 
일부 연구원은 코로나19의 완전 종식을 전제로 깔기도 했다. 마지황 하나금융경영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코로나19의 세계적 유행으로 항공업계 역사상 최대 위기에 봉착했다"면서 "코로나19 사태가 완전히 종식된 이후에나 업황이 회복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국내 항공업계는 항공 수요가 회복하기 전 인수·합병(M&A)으로 산업 구조 재편이 일어날 가능성이 크다"라며 정부 지원 확대 여부, 코로나19 사태 장기화 여부 등을 주요 변수로 꼽았다. 
 
추광호 한국경제연구원 경제정책실장은 "만성적 한계기업이 증가한 상황에서 코로나19 경제위기로 인해 한계상황까지 내몰리는 기업은 더 늘어날 전망"이라면서 "존립의 기로에 서있는 기업들이 위기를 버텨낼 수 있도록 자금 지원이 절실하다"라고 말했다.
 
박기범 기자 partner@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