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쏟아지는 한계기업 '생존기로')①위태로운 한국기업, 위기 탈출구 있나
2019년 상장사 중 20%는 '한계기업'
코로나19 장기화로 기업 경쟁력 둔화
국내 사정 고려한 회사채 시장 문화 조성 필요
공개 2020-06-16 09:30:00
최근 우리 기업들은 경쟁력 약화라는 기저질환에 코로나19 사태로 경영여건이 악화되면서 국내 대표 기업들도 속절없이 한계기업으로 추락하고 있다. 영업활동으로 벌어들인 이익으로 이자도 못 갚는 이른바 '좀비기업' 규모가 사상 최대라는 불명예도 안게 됐다. 코로나19가 장기화할수록 기업의 자금난이 가중되면서 디폴트(채무불이행) 공포에 직면, 생존을 위협받는 기업은 더욱 속출할 것으로 우려된다. <IB토마토>는 디스플레이·전자·반도체·유통·외식·건설·항공·해운·조선·석유·화학·자동차·부품·철강 등 다양한 산업군의 기업들이 처한 심각한 한계상황과 이중·삼중고의 경영난을 극복할 수 있는 생존전략을 함께 살펴보고자 한다.(편집자 주)
 
[IB토마토 박기범 기자] 한국 경제에 '빨간불'이 들어왔다. 경쟁국인 중국의 경제 성장이 위협요인으로 작용하는데다 글로벌 경기 침체가 장기화되면서 지난해 말 기준 상장기업 중 한계기업은 모두 143개에 달했다. 상장기업의 20.8%에 해당하는 규모다. 2015년 전무했던 3년 연속 한계기업 상황에 놓인 상장기업도 57곳에 이른다. 
 
올 초 전 세계를 강타한 코로나19는 국내 한계기업들의 시험대가 됐다. 면세·항공·여행·호텔업이 주업인 기업부터 시작이었다.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미국, 중국, 인도, 사우디아라비아, 브라질, 이탈리아 등은 한차례 이상 '국경 봉쇄'란 초강경 정책을 사용했다. 
 
하늘길이 막히며, 지난 5월 인천공항을 이용한 승객은 전년 대비 98% 줄었다. 아시아나항공(020560)은 지난 1분기 5490억원의 당기순손실을 내며 부채비율이 1만 6872%까지 치솟았다. '하늘길 통로'에서 장사하는 면세점도 직격탄을 받았다. 매출은 전년 대비 1.9%로 크게 줄었다. 작년 이맘때 100원을 팔았다면, 올해는 2원도 못 판다는 의미다.   
 
글로벌 경기가 위축되자 후방산업도 큰 타격을 입었다. 정유업계도 창사 이례 가장 큰 타격을 받았다. SK이노베이션(096770), GS(078930)칼텍스 등 정유 4사는 지난 1분기 4조 4000억원의 영업적자를 냈다. 글로벌 경기 둔화와 감산에 대한 주요 산유국의 갈등으로 대규모 재고평가손실이 났기 때문이다. 정유 4사는 매년 1조원 이상의 현금을 창출해내며 그룹의 기둥 역할을 하는 곳이다. 
 
1분기 정유사들의 적자 폭. 단위 : 억원. 출처/금감원 전자공시
 
글로벌 소비도 둔화됐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5월 자동차 수출은 전년 대비 57.6%가 줄며 9만 5400대를 기록했는데, 월간 수출 대수가 10만대를 밑돈 것은 16년 10개월 만에 처음이다. 후방 산업인 자동차 부품사 역시 큰 타격을 입었다. 
 
중국의 경제 발전은 국내 기업을 위축시키는 또 하나의 악재다. 대표적인 산업 군은 디스플레이다. 중국 최대 디스플레이 업체 징둥팡(BOE)의 약진으로 주요 한국 기업들은 액정표시장치(LCD) 산업에서 철수했다. 공급 과잉으로 가격이 크게 약화돼 채산성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LG디스플레이(034220)의 경우 지난해 2조 8000억원가량의 당기순손실을 내며 신용등급은 2018년 'AA/안정적'에서 'A+/부정적'까지 두 단계 떨어졌다. 
 
폴리실리콘 산업도 마찬가지다. 중국 기업의 저가 공세를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태양광 기초소재인 폴리실리콘을 생산하는 OCI(010060)는 국내 공장의 태양광용 폴리실리콘 생산을 중단했고, 이에 관한 유형자산 손상차손을 7505억원 냈다. 한화솔루션(009830) 역시 연내 철수할 예정이다. 
 
철강 산업도 피해 갈 수 없다. 중국은 정부 주도로 인수합병(M&A)이 활발하게 진행 중이다. 중국 1위 철강기업인 바오우철강은 마강집단, 충칭강철 등을 인수하며 연간 조강생산능력은 1억톤을 넘길 전망이다. '빅딜'이 쉽게 이뤄지는 까닭은 중국 철강회사의 지분을 대부분 지방정부가 보유했기 때문이다. 포스코(005490)의 연간 생산량이 4000만톤 수준임을 고려할 때 국내 철강 산업의 국제경쟁력은 중국의 약진으로 감소할 우려가 상당하다. 
 
구조적 한계로 인해 반도체, 은행업을 제외한 대부분 산업의 업황은 꾸준히 악화됐다. 지난해 말 기준 우리나라 기업 3곳 중 1곳은 한계기업이다. 한계기업이란 영업으로 번 돈으로 이자를 감당하지 못하는 기업으로, 주로 이자보상비율 100%를 기준으로 좋고 나쁨을 판단한다. 한국은행과 한국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지난해 이자보상비율이 100% 미만인 기업은 34.1%로 전년대비 2.8%p 증가했다. 상장기업 기준으로는 20.8%로 2.9%p 늘었다. 
 
코로나19로 한계기업들은 현금 잔고까지 동나고 있다. 이상호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국내 상장기업 중 3.22%가 현금 소진 위험에 직면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자본잠식기업의 경우 6개월 이내 보유 현금을 소진할 확률이 최대 17.91%로 추정된다"라고 설명했다. 
 
한계기업들의 자금 수혈은 쉽지 않다. 특히 신용등급 BBB등급의 기업들이 대표적이다. BBB등급은 자본 시장에서 소외받고 있다. IMF 당시 연쇄 부도 쇼크가 아직까지도 이어지기 때문이다. 김필규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투자자들은 국내 하이일드(고수익)채권 구입 선택권이 생기고, 기업들은 자금을 쉽게 조달할 수 있다"면서 "선행돼야 할 조건은 많지만, 시장이 형성될 경우 효과는 상당하다"라고 설명했다. 
 

한국 기업들의 시대별 이자보상배율. 출처/LG경제연구원
 
국내 기업과 금융사들의 재무의식은 90년대와 비교해 크게 향상됐다. 김준경 한국개발연구원(KDI)국제정책대학원 교수와 한국은행에 따르면 90년대 200% 미만이었던 우리나라 기업들의 평균 이자보상배율은 지난해 전 360.85%까지 늘었다. IMF 시대에는 평균 100%를 밑돌았다. 
 
또한 이자비용 관리도 타이트해졌다. 송태정 LG경제 책임연구원은 "제조업의 경우 IMF 이전 0.22였던 투자에 대한 이자보상배율의 민감도가 IMF 이후엔 3.21로 급격히 높아졌다"라고 말했다. 
 
추광호 한국경제연구원 경제정책실장은 "만성적 한계기업이 증가한 상황에서 코로나19로 인해 한계상황까지 내몰리는 기업은 더 늘어날 전망"이라면서 "존립의 기로에 서있는 기업들이 위기를 버텨낼 수 있도록 자금 지원이 절실하다"라고 강조했다. 
 
박기범 기자 partner@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