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가 '최고 신용등급' 상실한 까닭
내연기관차 축소 중 전기차 활황
공개 2019-12-03 09:10:00
[IB토마토 김태호 기자] 현대차가 6년 만에 '국내 최고 신용등급' 타이틀을 내려놨다. 내연기관차에서 전기차로의 대전환 과도기에서 산업 리스크가 부각되며 'AAA'의 지위를 잃은 것이다.
 
29일 국내 신용평가사 3사는 최근 현대차(005380) 장기신용등급을 AAA/부정적에서 AA+/안정적으로 한 단계 낮췄다. 
 
신평사는 등급 강등 핵심 사유로 업황 악화에 따른 수익성 하락 등을 일제히 지목했다. 그러나 현대차가 상징적인 등급인 AAA를 보유하고 있었다는 점에서 이번 액션은 단순 지표적 하락보다는 보다 근원적 측면의 변화에서 기인했다고 해석할 수 있다. AAA는 공기업, 시중은행, 그리고 기간통신사업자인 SK텔레콤(017670)KT(030200) 등만 보유하고 있다.
 
크레딧 업계 관계자는 “민간기업 특히 제조기업이 AAA 신용도를 보유하고 있다는 것은 곧 국가와 동일한 수준의 신용등급을 보유했다는 의미와 일맥상통한다”면서 “상징적 의미가 크기 때문에 액션도 신중할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이어 이 관계자는 “결국 민간기업 AAA는 기업환경이 산업적 리스크를 뛰어넘는 수준에 있다는 의미”라며 “결국 현대차의 AAA 반납은 산업적 리스크가 그만큼 부각됐다고 풀이해야 하며 재무제표만 놓고 보면 여전히 우수하다”라고 말했다.
 
DCM 관계자도 “상징적 등급이기는 해도 부정적 꼬리표가 붙었기 때문에 올게 왔다고 볼 수 있겠지만 대체로 기업 재무 상황에 문제가 있다고 보는 분위기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현대자동차 본사 건물 전경. 사진/뉴시스
 
일단은 세계 완성차 시장 성장 둔화 영향이 가장 컸다. 신용평가사 피치에 따르면, 2018년 세계 자동차 판매량은 직전연도 대비 1.5% 감소한 8060만대를 기록했다. 특히 미·중 무역분쟁 여파 등으로 세계 30% 규모를 차지하는 중국 자동차 시장은 28년만에 역성장을 기록한 바 있다.
 
성장 둔화는 더욱 고조되고 있다. 올해 세계 자동차 판매량은 전년 대비 4% 감소한 7750만대에 이를 전망이다. 10년래 가장 큰 폭의 감소세다. 업황 악화는 경쟁 심화로 이어지며, 곧 매출 감소뿐만 아니라 인센티브 확대, 원재료 판가 전이 지연 등 수익성 악화 요인으로 직결될 수도 있다.
 
한 발 더 나아가면, 자동차 산업 패러다임 대전환을 지목할 수 있다. 내연기관차 시장이 움츠러드는 반면 전기차 시장은 개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블룸버그NEF는 2025년 전기차 판매량이 1000만대를 돌파하고, 2040년도에는 5600만대를 기록하며 전기차-내연기관차 비중이 대략 5:5에 이를 것으로 봤다.
 
즉, 감소하는 자동차 시장 파이를 내연기관차와 전기차가 갈라 먹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물론 전기차 시장규모는 매우 작지만, 달리 말하면 전기차 투자를 지속할 경우 규모의 경제를 통한 손익분기점(BEP) 달성 전까지는 고정비 부담 등으로 인한 수익성 악화를 감당해야 된다는 의미로 볼 수 있다. 특히 주력시장이 위축되는 상황에서 그 부담은 가중될 수 있다. 과도기에 있는 셈이다.
 
고정비 부담 예로 연구개발비 지출을 들 수 있다. 현대차는 지난해 연구개발비로 매출의 6%가량 되는 2.6조원을 지출했으며, 올해는 그 금액을 전년 동기 대비 13%가량 늘렸다. 물론 해당 지출은 전기차 외 연구 비용도 반영된다.
 
특히 현대차는 후발주자라는 부담을 안고 전기차 관련 시장점유율을 급속히 확대하고 있다. 팔면 팔수록 손해를 보는 구조에서의 점유율 증가는 단기적으로 수익성 악화를 증폭시킬 수 있다.
 
IHS마킷 등에 따르면 지난해 하이브리드 제외 순수 전기차 판매량은 전년 대비 두 배가량 증가한 약 200만대를 기록했는데 같은 기간 현대차·기아차(000270)의 전기차시장 점유율은 직전연도보다 0.5%p 상승한 4.1%를 기록했다. 현대차그룹은 올해 상반기 점유율을 6.5%로 확대하며 순위도 9위에서 5위로 끌어올렸다.
 
제반 사유에 따른 수익성 부담은 실제 지표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매출원가 증가로 지난해 현대차 연결 기준 마진율은 4.7%에서 2.5%로 급감했고, 별도 기준으로는 44년 만에 연간 실적 적자를 기록했다.
 
현대차의 전기차 관련 지출 및 연구 대부분은 국내에서 비롯되는데, 별도 기준 매출 대비 원재료 및 상품사용액 비중은 그간 60% 내외를 유지하다가 2018년 67%로 증가했다. 금액으로 보면 지난해 별도 기준 매출이 1.6조원 늘어나는 동안 원재료 비용 등은 3.2조원 늘어난 셈이다.
 
올해도 다르지 않다. 올해 3분기 연결 기준 마진율은 소폭 상승했지만 여전히 3.1%에 불과하다. 원재료 등 비중도 66%에 이르고 있다.
 
정리하자면, 신용평가사들은 자동차 산업 패러다임 전환에 따른 산업 리스크 증가로 수익성 하락 위험 지속이 전망돼 등급 하향에 나선 것으로 볼 수 있다.
 
나신평은 “내연기관에 비해 채산성이 저조한 친환경차의 판매 비중을 확대해야 하는 부담이 존재하는 등 당분간 완성차 업계는 영업수익성 개선이 쉽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한신평은 “전동화 등 산업 패러다임의 급속한 변화와 환경규제 하에서 내연기관 차량에서의 수익창출력을 확보할 수 있을지 불확실하다”라고 분석했다.
 
한기평은 “새로운 자동차 시장 경쟁구도에서는 IT업체도 새로운 경쟁자로 대두되고 있어 자동차 업계 전반의 불확실성이 높아졌다”라면서 “업체 간 경쟁 심화, 미래에 대비하기 위한 비용 부담 등을 감안하면 수익성 개선이 쉽지 않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한편, 일각에서는 현대차의 수익 개선을 괴롭혔던 품질비용 이슈도 지속될 것이라고 보고 있다. 한국기업평가가 이 같은 내용을 특히 부각했다. 통상 신용평가사는 등급평정 시에 품질비용 관련 충당금 등을 일시적 요소로 반영한다.
 
한기평은 “소비자 기준이 높아지면서 품질 리스크에 지속적으로 노출돼있고 추가적 품질 이슈 발생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영업환경을 감안할 때 품질비용을 일회성으로 보기는 어렵다”라고 분석했다.
 
김태호 기자 oldcokewaver@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