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지주, 지배력이냐 주주환원이냐…자사주 소각 '딜레마'
자사주32.51%…주요 상장 지주사 중 최고
주주환원율 확대 등 밸류업 공약 반년째 답보
이재명 정부 압박에 상반기 중 시행 여부 관심
공개 2025-06-19 06:00:00
 
[IB토마토 김규리 기자] 이재명 정부가 자사주 소각 의무화를 주요 공약으로 내세운 가운데 국내 지주사 중 자사주 보유 비중이 가장 높은 롯데지주의 실행 여부에 시장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롯데지주는 지난해 기업가치 제고 계획을 통해 주주환원율 확대와 자사주 소각 가능성을 공식화했지만, 이후 반년 넘도록 구체적인 이행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지주사 구조상 자사주가 오너 지배력 유지에 핵심 수단으로 작용하는 만큼 실제 이행 시기를 두고 그룹 내부의 고심이 깊어지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사진=롯데지주)
 
움직이지 않는 롯데지주…밸류업 공약 이후 ‘속 빈 강정’
 
17일 투자은행 업계에 따르면 롯데지주는 지난해 11월 발표한 기업가치 제고 계획에 따라 자사주 소각 및 매각 시기를 조율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 롯데지주는 ▲ 주주환원율 35% 이상 달성 ▲ 중간배당 도입 검토 ▲ 자사주 매각 및 일부 소각 등의 내용을 담은 3개년 주주환원 정책을 내놓은 바 있다.
 
그러나 반년이 넘도록 구체적인 실행 방안을 내놓지 않으면서 시장과 주주들의 불신이 커진 상황이다. 올해 3월 공시된 분기보고서에서도 롯데지주는 자사주 활용 방안에 대해 "다양한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짧게 언급만 했다. 그룹 전체로 봐도 최근 10년간 자사주 소각 사례는 지난해 10월 롯데렌탈이 유일할 정도로 주주환원에 인색하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롯데그룹이 지주사 차원에서 자사주 소각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못하는 데에는 오너 지배력 문제가 연관돼 있다. 일반적으로 대기업 지주사는 총수 일가의 지배력을 떠받치는 핵심적 역할을 한다. 자사주는 상법상 의결권이 없지만 경영권 방어 및 내부 지배구조 강화 수단으로 유효하게 활용될 수 있다. 유사시 백기사에 매각하거나 다른 회사와의 주식 교환을 통해 경영권 방어의 실탄으로 활용될 수 있는 전략적 자산으로 여겨진다.
 
 
(출처=롯데지주가 발표한 기업가치 제고 계획 보고서)
 
자사주를 통한 지배력 유지 성향도 뚜렷하다. 현재 롯데지주는 총 발행주식의 32.51%(3410만3937주)를 자사주로 보유 중이다. 이는 5대 그룹 지주사 중 가장 높은 수준이다. 비중이 많은 자사주를 섣불리 소각할 경우 총수 일가의 지분율은 희석되지 않더라도 외부 공격에 대응할 수 있는 중요한 카드를 잃게 된다는 불안감이 작용할 수밖에 없다.
 
롯데그룹 측은 <IB토마토>와의 통화에서 “지난해 기업가치 제고 계획에 있는 주요 내용들을 이행하기 위해 내부적으로 적절한 시점을 논의 중”이라며 “높은 자사주 수치는 지난 2017~2018년에 걸친 그룹 지주사 출범에 필요했던 자회사 분할 및 합병 과정에서 취득한 것으로 보유한 자기주식을 소각하는 것이 잠재 매도물량(오버행) 리스크 감소로 주가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 주주환원에 도움이 된다는 점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대통령과 대기업 총수 면담…롯데 자사주 소각 주목
 
정치권 움직임도 롯데지주를 압박하는 환경 중 하나다. 이재명 정부가 상장사 자사주 소각 의무화를 주요 공약으로 추진하고 있다는 점 역시 롯데지주를 둘러싼 부담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게다가 지난 13일 이재명 대통령은 최근 대기업 총수들과의 간담회에 5대 그룹 회장을 모두 초청한 바 있다. 이 자리에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도 참석했다. 새 정부 출범 이후 신 회장의 첫 공식 대면 자리였다는 점에서 정부 정책에 대한 롯데의 향후 행보에 더욱 이목이 쏠리고 있다.
 
시장 일각에서는 롯데가 상반기 내 가시적인 소각 계획을 발표하며 정부 정책에 화답하는 모양새를 취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특히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첫 공식 면담까지 마친 상황에서 롯데가 자사주 소각과 같은 상징적인 조치 없이 주주환원 공약을 계속 미룬다면 정책 기조를 외면한다는 부정적 시선도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한 금융투자업 관계자는 <IB토마토>와의 통화에서 “주주환원에 시장 기대가 커진 만큼 기업이 자사주 소각을 확대하거나 그에 상응하는 조치를 내놓을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IB토마토>와의 통화에서 “일반 주주들(기관투자자 포함) 사이에서도 자사주 소각 요구가 높아지는 분위기에서 기업 입장에서도 시장의 요구를 외면하긴 어렵다"며 "배당과 자사주 매입·소각 등은 대표적인 주주환원 정책으로 기업들도 이러한 분위기에 동참하려는 분위기는 확산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규리 기자 kkr@etomato.com
 

김규리 경청하고 질문하는 기자가 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