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석유화학산업은 중국의 공급과잉, 글로벌 경기 둔화, 유럽 및 동북아의 저효율 설비 폐쇄 가능성 등으로 어려운 시기를 겪을 것으로 예상된다. 여기에 트럼프 대통령의 재집권에 따른 보호무역주의 강화와 고환율 기조도 시장에 추가적인 변수가 될 전망이다. 이에 따라 국내 석유화학업체들은 구조조정, 사업 다각화, 재무 안정성 확보 등 다양한 전략을 모색하고 있다. <IB토마토>는 변화하는 산업 지형 속에서 국내 석유화학 기업들의 대응 방향을 분석하고, 지속 가능한 성장 전략을 살펴보고자 한다.(편집자주)
[IB토마토 권영지 기자] 국내 석유화학 업계가 글로벌 시장 변화와 구조적 한계 속에서 위기를 맞고 있다. 글로벌 경기 둔화와 중국의 저가 공세, 원자재 가격 상승이 맞물리며 수익성이 급격히 악화됐고, 신사업 분야에서도 기대만큼의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러한 경영 환경 속에서 주요 석유화학 기업이 유의미한 성과를 내기 위해 각자 전략을 가지고 업황 악화에 적극 대응할 것으로 전망된다.
(사진=연합뉴스)
석유화학 '빅4' 영업이익 전년비 99.7% 감소
4일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LG화학(051910),
롯데케미칼(011170),
한화솔루션(009830),
금호석유(011780)화학 등 국내 석유화학 '빅4'의 지난해 합산 영업이익은 82억원으로, 2023년(2조4681억원) 대비 99.7% 감소한 것으로 추정된다. 불과 2021년까지만 해도 7500억원에서 5조원 이상의 이익을 기록했던 것과 비교하면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 이는 글로벌 경제 둔화로 인한 석유화학 제품 수요 감소와 더불어 중국 공급과잉과 함께 저가공세가 지속된 결과로 보인다.
석유화학업계 한 관계자는 <IB토마토>와의 통화에서 "중국의 공급과잉과 저가 공세가 국내 석유화학 기업의 수익성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쳤다"면서 "이러한 흐름은 올해도 비슷할 것으로 예측된다"고 말했다.
중국은 연간 에틸렌 생산능력(CAPA)을 5000만톤 이상으로 확대하며 자국 내 수요를 초과하는 물량을 글로벌 시장에 공급하고 있다. 이와 함께 중동도 'COTC(Crude Oil to Chemicals)' 기술을 활용해 생산비용을 획기적으로 낮춘 석유화학 설비를 증설하고 있어, 국내 기업들의 경쟁력이 더욱 위축되고 있다. 중국 및 중동 업체들이 원료부터 생산까지 수직계열화를 강화하며 원가 절감 효과를 극대화하고 있는 반면, 국내 업체들은 비교적 높은 원가 부담으로 가격 경쟁력을 확보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원유 가격 상승 역시 업계 부담을 가중시키고 있다. 석유화학 제품의 원료인 나프타 가격이 상승했지만, 수요 부진으로 인해 가격 전가가 어려운 상황이다. 핵심 수익성 지표인 에틸렌 스프레드는 2022년 이후 지속적으로 손익분기점(톤당 250~300달러)을 하회했고, 2023년 말에는 톤당 200달러 수준까지 하락했다. 이는 수익성 확보에 있어 구조적인 어려움을 가중시키고 있으며 일부 기업들은 감산을 검토하는 상황에 놓였다.
지금 석유화학은 '사업 재편 중'
석유화학 사업뿐만 아니라 신재생에너지 분야에서도 중국의 영향력이 확대되고 있어 이 역시 쉽지 않은 상황이다. LG화학은 지난해 4분기 2522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하며 적자 전환했다. 특히 배터리 자회사인
LG에너지솔루션(373220)의 2255억원 적자가 주요 요인으로 작용했다. 한화솔루션 역시 석유화학과 태양광 사업의 동반 부진으로 3946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할 것으로 예상된다. 중국산 저가 태양광 제품이 시장을 장악하며 경쟁력이 악화된 것이 주요 원인이다.
이러한 가운데 정부는 국내 석유화학 기업들의 포트폴리오 조정 등 사업 재편을 모색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정부는 '석유화학 산업 경쟁력 제고 방안'을 발표해 석유화학 기업들이 기존의 범용 제품에서 벗어나 고부가가치 제품 생산을 강화하도록 유도하겠다는 계획을 내놨다. 정부는 이 같은 계획을 추진하기 위해 총 3조원 규모의 정책금융을 융자와 보증 등의 방식으로 제공해 기업들의 사업 재편을 재정적으로 뒷받침할 예정이다.
이와 함께 석유화학 산업의 근본적인 경쟁력 강화를 위해 고부가가치 제품 개발에 대한 연구개발(R&D) 투자를 확대한다. 정부는 내년 상반기 '2025~2030년 R&D 투자 로드맵'을 수립해 발표할 예정으로 고부가·친환경 화학소재 기술개발에 대한 예비타당성조사 신청을 추진하고 500억원 규모의 '고부가 스페셜티 펀드' 조성, 국가전략기술 및 신성장 원천기술 발굴 등을 통해 산업의 고도화를 지원한다는 방침이다.
익명을 요구한 석유화학업계 한 관계자는 <IB토마토>와의 통화에서 "정부가 업황이 악화된 석유화학업계에 정책적으로 지원에 나선 것은 긍정적으로 평가할 일"이라면서도 "다만 현재 대통령 탄핵 국면에서 해당 정책에 대한 구체적인 로드맵이 나오지 않고 있어 업계도 답답한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한편, 최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대중국 고관세 부과 정책을 발표하면서 중국 석유화학 업체들이 감산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영국 정유·화학산업 조사기관 ICIS에 따르면 중국은 최근 PE, ABS 등 석유화학 제품의 생산을 축소하거나 공장 가동을 중단하고 있다. 이에 따라 국내 기업들의 석유화학 제품 공급량이 중국산의 빈자리를 채우는 등의 반사이익이 기대되는 상황이다. 다만, 이러한 반등이 일시적인 흐름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 업계는 장기적인 전략을 마련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권영지 기자 0zz@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