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개점휴업 상태였던 인수합병(M&A)시장이 활기를 되찾고 있다. 시장에선 조 단위 매물이 연이어 나오기 시작했고 사모펀드(PEF)를 비롯한 자본시장 참가자들은 새로운 기회를 앞두고 채비를 갖추고 있다. 하지만 국내 대표 사모펀드 운용사인 한앤컴퍼니는 최근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키플레이어'로 꼽히는 한앤컴퍼니의 고전은 현재 M&A 시장을 반영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에 <IB토마토>는 한앤컴퍼니 사례를 통해 2024년 하반기 M&A시장을 진단하고 향방을 가늠해 보고자 한다.(편집자주)
[IB토마토 최윤석 기자] 한앤컴퍼니(이하 한앤코)가
남양유업(003920) 가치 회복을 이유로 본격적인 경영권 행사에 나섰다. 한앤코는 그간 기업 인수 후 동종 기업 합병을 통해 규모의 경제를 이루는 '볼트온(Bolt-on) 전략'으로 수익을 실현해왔다. 하지만 남양유업은 전 오너 일가 리스크로 인해 규모 확장보다 내부 정리에 우선 손을 댄 것으로 알려졌다.
고강도 쇄신안 발표…내부통제 강화
남양유업은 지난 16일 ‘준법·윤리 경영 강화’를 골자로 한 고강도 쇄신안을 발표했다. 쇄신안 핵심은 내부통제 강화다. 관리·감독 강화를 위한 준법지원인 직급을 기존 팀장에서 임원으로 격상했고, ‘준법경영실’을 신설해 실장으로 부장검사 출신 이상욱 전무를 영입했다. 이어 체계적인 내부통제를 위한 ‘준법통제기준’을 제정, 이를 바탕으로 상시 모니터링을 한다는 계획이다.
(사진=뉴시스)
한앤코가 남양유업 경영권 확보 이후 첫 행보로 내부통제에 나선 까닭은 그간 남양유업의 최대 리스크가 내부에 있었기 때문이다. 실제 남양유업은 한때 무차입 경영을 하는 국내 최상위급 우량회사로 평가받았다. 하지만 2013년 남양유업 대리점 상품 강매 사건 발발 이후 지속적으로 불매운동이 전개됐고, 오너인 홍원식 전 회장의 갑질 녹음파일 공개, 오너 방계 친족인 황하나 씨의 마약 사건 등이 이어지면서 회사 가치는 추락했다.
업계에 따르면 남양유업의 새 경영진은 더 이상 ‘남양유업’이란 브랜드는 소생 가치가 없다는 판단하에 회사명 교체를 비롯한 리브랜딩까지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아직 검토 단계지만 대표 상품인 ‘프렌치카페’, ‘17차’ 등은 유지하되 법인명 변경과 새 브랜드 론칭 등이 고려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업계 한 관계자는 “남양유업은 전 오너일가의 경영 기간 동안 수많은 추문으로 브랜드 이미지가 많이 추락한 것이 사실”이라며 “현재로서는 남양유업 운영인력과 새로운 경영진과 브랜드 신뢰 회복을 위해 여러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라고 말했다.
3호 펀드 성공, 남양유업 엑시트에 달려
한앤코는 남양유업 인수에 3호 펀드의 '드라이파우더'(투자 집행이 이뤄지지 않은 가용 자금)를 투입했다. 이 펀드는 2019년 10월 3조8000억원 규모로 조성돼 납입금 대비 분배율(DPI) 30%를 기록했고 내부수익률(IRR)은 31%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3호 펀드의 성공적인 마무리는 결국 남양유업의 엑시트에 달린 셈이다.
하지만 이제 막 경영권을 인수한 한앤코에게 남겨진 과제는 만만치 않다. 계속되는 우유업계 불황에 한앤코와 홍 전 회장 간의 분쟁으로 경영권 공백까지 생긴 상황이다.
남양유업은 올해 상반기 실적에서 영업손실 234억원을 기록한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는 평가다. 올 상반기 매출액도 4787억원으로 1년 전에 비해 4.5% 감소했다. 게다가 2020년 이래 줄곧 영업적자를 이어오고 있다. 일반 소비자들의 불매운동이 지속되는 가운데 주력인 우유·분유 제품 수출마저 감소세로 접어들었기 때문이다.
이와 더불어 홍 전 회장과의 법적 분쟁도 좀처럼 마무리되지 않고 있다.
지난 6월 홍 전 회장은 남양유업을 상대로 서울중앙지방법원에 퇴직금 지급 소송을 제기했다. 홍 전회장이 주장한 퇴직금 규모는 총 444억원으로 남양유업의 자기 자본 6.54%에 해당하는 규모다. 이에 남양유업의 새 경영진도 지난 2일 홍 전 회장 등 임직원 3인을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위반(횡령) 등의 혐의로 고소하기도 했다.
남양유업, 제2의 웅진식품 될까
현재 거론되는 남양유업 정상화의 롤모델은 웅진식품이다. 한앤코는 지난 2013년 적자를 이어가던 웅진그룹의 웅진식품을 1150억원에 인수했다.
한앤코는 웅진식품 인수 후 사업 구조조정을 통한 수익성 향상에 집중했다. 주력제품임에도 수익성이 낮았던 냉장주스 생산을 중단하는 한편 원재료 납품업체 선발방식을 경쟁입찰로 바꿨다. 2014년에는 동부그룹의 음료회사 동부팜가야 지분 94.35%를 140억원에 인수한 데다 대영식품도 품에 안으며 제과시장에도 뛰어들었다. 동종 기업이나 연관 업종 기업을 합병해 규모의 경제를 꾀하는 '볼트온 전략'이다.
전략은 성공했다. 인수 1년 뒤인 2014년 흑자전환에 성공했고 이듬해인 2015년 매출 2136억원을 기록한 이후 2016년 2235억원, 2017년 2258억원, 2018년 2443억원으로 꾸준히 덩치를 키웠다. 같은 기간 영업이익도 105억원에서 202억원까지 늘렸다.
이 같은 성과에 힘입어 한앤코는 2018년 대만 유통기업 퉁이그룹에 웅진식품을 2600억원에 매각할 수 있었다. 인수 5년 만에 두 배가 넘는 차익을 실현한 셈이다.
하지만 웅진식품 건과 달리 남양유업은 규모를 키우기에 앞서 내부 정리가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새 경영진 사이에서 형성됐다. 사실 볼트온 전략은 인수 기업과의 시너지가 핵심인데, 그만큼 원 뼈대가 되는 기업의 가치 회복이 선행돼야 한다는 판단에서다.
실제 남양유업은 전 오너 일가의 회사 자금 사적 유용으로 도마 위에 오른 적이 있다. 2021년 당시 남양유업은 차량 리스비로만 매달 1100만원이 넘는 회사 돈이 지출됐다. 내부 문건에서도 홍 전 회장 부인과 장남 홍진석 전 상무의 자녀 생일 파티에 각각 100만 원이 넘는 돈을 쓴 것으로 드러났다. 새 경영진도 경영권을 넘겨 받은 뒤 재무 자료에서 각종 비용 명목으로 불필요한 지출이 이뤄진 것을 확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금융투자업계에서는 전 오너 일가 때문에 발생한 불필요한 비용을 줄이는 것만 해도 성공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비용 절감은 필연적으로 부작용이 발생하지만 이 경우 부작용 없는 수익성 개선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금융투자업계 한 관계자는 <IB토마토>에 "우유 사업은 성장성은 크지 않지만 그만큼 안정적이다"라며 "비용 절감만 이뤄져도 수익성 개선이 확실해지는 만큼 현재 한앤코는 전 오너 일가에 투입된 비용을 확인 중이고 이를 없애는 것을 경영 정상화의 첫걸음으로 여기고 있다"라고 말했다.
최윤석 기자 cys55@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