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산업 몸담다 VC 접한 후 문화·콘텐츠 전문 VC로 활약최근 콘텐츠 투자 트렌드는 '인공지능·IP·웹 3.0'콘텐츠 분야 투자 위축에 "경쟁력 갖추기 위한 자구책 필요"
[IB토마토 정준우 기자] 오상민 로간벤처스 부대표는 로간벤처스에서 문화·콘텐츠 산업 투자를 담당하고 있다. 오 부대표는 영화 제작사 싸이더스를 시작으로 워너브라더스코리아·아이러브시네마 등 콘텐츠 업계를 거쳐 벤처캐피털(VC)로 넘어온 인물로, 지난 2021년 로간벤처스에 합류하며 투자에 있어서도 꾸준히 문화·콘텐츠 외길을 걸어오고 있다. 그 결과 로간벤처스는 설립 4년 만인 올해 운용자산(AUM) 800억원 규모의 VC로 성장했다.
문화 산업은 트렌드가 빠른데다 최근 투자 주도권이 바뀌고 있는 추세다. 막강한 자금력을 앞세운 넷플릭스 등 글로벌 OTT들이 컨텐츠 투자 영역에서 영향력을 키우고 있다. 이러한 환경 변화 속에서 오 부대표는 국내 콘텐츠 투자자 업계가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자체 플랫폼 확보를 바탕으로 투자 성과를 낼 수 있는 유연한 태도를 강조한다. <IB토마토>는 오상민 부대표로부터 문화·콘텐츠 투자의 경쟁력 강화 방안, 최근 콘텐츠 투자 트렌드와 함께 한국 문화·콘텐츠 산업의 발전 방안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오상민 로간벤처스 부대표(사진=로간벤처스)
다음은 오상민 부대표와의 일문일답이다.
-부대표님의 소개를 부탁한다.
△2000년 영화제작사인 싸이더스에서 경력을 시작한 뒤 워너브라더스코리아, IHQ에서 설립한 영화 투자 배급사인 아이러브시네마에서 영화 배급 업무를 담당했다. 2010년 VC를 접한 후 카이스트에서 MBA를 수료한 후 투자 업계에 들어왔으며, 이후 CJ인베스트먼트, KB인베스트먼트 등을 거쳐 2021년부터 로간벤처스에 합류했다.
VC 업계에 발을 들인 후 투자했던 영화는 7번 방의 선물·부산행·동주·강철비·리틀포레스트 등 영화에 투자했으며, 뮤지컬과 드라마에도 투자를 한 이력이 있다. KB인베스트먼트에서 콘텐츠 기업들에 대한 기술 투자도 진행했다. 로간벤처스에 합류한 계기는 싸이더스 시절부터 친하게 지냈던 박정환 대표와의 인연 때문이다.
-지난해 모태펀드로부터 GP 운용사로 선정되는 등 선전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에 대한 비결이 있다면?
△문화 투자 분야에서 꾸준하게 열심히 활동한 심사역들의 역할이 컸다. 구성원들이 콘텐츠 및 콘텐츠 기업에 가지는 관심과 애정이 많기도 했고, 최근 투자 실적이 풍부했던 점도 영향을 미쳤던 것으로 본다. 투자 실적이 많아야 정량 평가를 통과할 수 있기 때문이다.
-투자했던 회사나 작품 중 기억에 남는 사례가 있다면?
△플리카라는 회사가 기억에 남는다. 과거 중소벤처기업부 산하의 창업진흥원에서 추진하는 K-멘토링 프로그램을 통해 만난 회사로 2년 정도 이 회사에 멘토링을 한 적이 있다. 투자 결정하는 과정에서 투자할 회사와 같이 갈 수 있는지를 보는데, 그런 측면에서 플리카가 기억에 남았던 것 같다.
-투자의 기준이 있다면?
△회사의 비즈니스 모델이 구축되어 있어야 하며, 그 비즈니스 모델의 참신함과 매출 발생 가능성을 검토한다. 또한 유행을 좇는 비즈니스 모델은 선호하지 않는 편이다. 창업자가 잘 모르는 분야가 유행한다는 이유로 그 분야의 사람들을 데려와 투자를 유치하려는 사례들이 있다. 이러한 사례에 대해서는 투자를 지양하는 편이다.
결국 창업자 자신이 잘 아는 분야에서 자신이 가진 장점을 무기로 노력하는 회사를 선호하지만, 상황에 따라 전략을 유연하게 조정할 수 있는 ‘외길을 가지만 유연한 태도를 가진 사람’이 중요하다.
-최근 콘텐츠 투자 주도권이 넷플릭스 등 글로벌 OTT로 넘어가는 모습이다. 국내 콘텐츠 투자자들이 이에 대응하는 경쟁력을 갖추기 위한 방안이 있다면?
△우리만의 플랫폼이 있어야 한다. 웹툰이나 케이팝(K-POP)은 콘텐츠와 플랫폼이 함께 수출되고 있지만, 영화나 드라마 등 영상 산업은 자체 플랫폼이 없는 까닭에 IP(Intellectual Property, 지식재산권)가 글로벌 OTT로 넘어가고 있다. 이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우리만의 콘텐츠 플랫폼을 갖출 필요성이 있다.
케이팝(K-POP)의 경우 위버스를 통해 콘텐츠가 공급되면서 플랫폼과 컨텐츠가 함께 성장하고 있다. 그에 반해 드라마 등 영상 분야는 플랫폼이 없기 때문에 글로벌 OTT의 투자 주도권이 강화되고 있는 것이다.
물론 플랫폼을 구축하는데 비용과 시간이 들겠지만, 경쟁력 강화 방향은 자체적인 플랫폼 구축으로 가야 할 것으로 보인다. 드라마 제작비는 200억~300억원에 달해 플랫폼 시작 단계에서 제작비를 회수하기는 힘들다. 따라서 처음에는 제작 부담이 적은 숏폼(Short-Form) 콘텐츠로 시작 후, 차츰 미들 폼(Middle-Form)과 롱 폼(Long-Form)으로 콘텐츠 영역을 확장하는 방법도 있다.
동남아시아의 선두 OTT인 뷰(Viu)가 대표적인 사례로 제작 부담이 없는 숏 폼으로 자체 콘텐츠를 제작한 후 제작비를 회수하면서 매출을 키우고 있다.
-최근 눈여겨보고 있는 콘텐츠 투자 영역이 있다면?
△인공지능·IP·웹 3.0이다. 인공지능은 자동 생성과 버추얼(Virtual, 가상 콘텐츠)이 두 축의 테마다. 자동 생성은 텍스트로 이미지를 설명하면, 챗GPT 등 인공지능이 이미지를 생성해 준다. 인공지능의 역할은 콘텐츠 영역에서 큰 변혁을 일으키고 있다. 또 다른 테마는 버추얼로 가상 아이돌 등이 있다. 최근 플레이브라는 버추얼 아이돌 그룹이 인기를 끌고 있고, 버추얼에 대한 저항감도 없어지고 있다.
둘째로 IP다. 과거에는 하나의 제작사들이 양질의 세계관을 가진 IP를 많이 생산하는 게 핵심이었다면, 지금은 IP를 다른 미디어나 콘텐츠로 확장할 수 있는지가 중요하다. 넷마블 출신이 만든 플랫폼 디오리진이 그러한 예로 많은 투자를 받았다. 디오리진은 게임의 세계관을 만들면서 자체적인 현금흐름을 창출해 내고 있다.
아울러 IP를 차별화하기 위한 캐릭터의 역할도 중요하다. 게임의 수준이 전반적으로 높아지면서 회사들이 IP의 브랜드 파워를 높이기 위해 캐릭터를 활용해 인지도를 높이고 있다.
마지막으로 웹 3.0이다. 웹 3.0은 탈중앙화 기반의 개인과 개인(P2P) 간 정보 교류가 핵심이다. P2P 거래가 활발해지면서 스토리프로토콜이라는 회사가 주목받고 있다. 이 회사는 IP를 최소 단위로 쪼개어 판매한다. 과거 웹소설 플랫폼 래디쉬를 창업했던 이승윤 대표가 재창업한 회사로 시드 투자 단계에서만 700억원을 투자받았다. 이에 유사한 비즈니스 모델을 추진하는 회사와 현재 접촉하고 있다.
-최근 고금리 등으로 VC 업계가 위축되면서 수익률이 높은 분야에 자금이 몰리는 현상이 나타난다. 문화 산업도 마찬가지인지?
△그렇다. 당연히 돈이 되는 쪽으로 투자가 몰리고 있고, 최근 들어 이러한 경향이 심해지는 것 같다. VC에 대해 수익성을 내야 한다는 압박이 강해지면서 업계의 자생력이 강화되는 분위기가 강해지고 있다. 그래서 성과가 나오는 분야로 투자가 집중되는 현상은 이어질 것 같다.
-앞으로의 목표나 바람이 있다면?
△개인적인 목표는 앞으로도 콘텐츠 투자 심사역으로 꾸준하게 일하는 것이다. 최근 콘텐츠 분야의 투자 수익률이 떨어지다 보니 이 분야에 몸담은 심사역들이 힘들어하는 경우가 많다. 콘텐츠 분야의 심사역들이 좀 더 예우를 받으며 마음 편하게 일할 수 있는 환경이 되면 좋겠다.
동시에 투자 받는 콘텐츠 산업에서도 자생력을 강화하기 위한 노력이 동반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콘텐츠 업계가 현재 어렵지만 자구책을 마련하는 등 업계 경쟁력 강화를 위한 노력을 이어가야 이에 상응하는 다양한 지원도 나올 것으로 생각한다.
아울러 투자 유치를 확대하기 위해서는 콘텐츠의 수익 배분 구조도 개선할 필요가 있다. 영화의 경우 수익 배분을 6대4로 주로 하는데, 4가 제작사의 몫이다. 수익이 날 경우 40%를 제작사가 분배 받다 보니 투자 수익률이 떨어지는 경우가 발생한다. 이를 8대 2나 9대 1로 바꾼다면 투자자만 유리한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있지만, 오히려 투자 확대로 산업이 활성화되는 여건이 조성될 수 있다.
정준우 기자 jwjung@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