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B토마토 정준우 기자] 유럽위원회(EC)가
대한항공(003490)과
아시아나항공(020560) 사이의 합병을 승인할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미국과 일본 경쟁당국의 합병 승인 여부에 대해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일본의 경우 경쟁이 치열한 노선이라 경쟁제한 우려가 없지만 미국은 여객 분야에서 두 회사의 점유율이 높아 경쟁제한 우려가 나타날 수 있는 상황으로 파악된다. 현재 합병을 진행하는 두 회사 외에 미국 노선을 운항하는 국적항공사는 에어프레미아가 유일하다. 이에 미국 경쟁당국의 우려를 덜어내기 위해서는 에어프레미아가 미국 노선에서 여객 사업 경쟁력을 키워야만 미국 경쟁당국의 우려를 씻어낼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일본 무난·미국 우려 수면 위로 부상
17일 항공업계에 따르면 유럽위원회(EC)가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간의 합병을 승인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예상된다. 유럽 경쟁 당국이 두 회사의 합병을 승인할 경우 대한항공은 아시아나항공 지분 1억3157만8947주를 오는 3월31일 1조5000억원에 제3자 유상증자 방식으로 인수한다. 해당 유상증자는 지난 2020년 11월 결정되었으나, 유럽 경쟁당국의 독점 우려로 인해 심사가 지연되며 그동안 실현되지 못했다.
지난해 유럽 경쟁당국의 합병심사 과정에서 화물 사업의 독점 가능성이 제기됐다. 두 회사가 합병할 경우 한국과 유럽을 오가는 항공 화물 노선에서 사실상 대한항공의 화물 독점 체제가 구축된다는 것이 유럽 경쟁당국의 우려였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외 국내 국적항공사 중 유럽까지 갈 수 있는 항공기를 보유한 항공사는 에어프레미아와 티웨이항공이 유일한데 두 회사는 여객 사업이 주력이기 때문에 사실상 화물 사업 비중이 낮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지난해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항공 화물 운송 실적은 11만4462톤으로 전체 국적항공사 화물(21만2436톤)의 53.9%를 차지한다. 두 회사의 유럽 노선 화물 점유율은 더 높을 것으로 보인다. 아시아나항공의 화물실적(4만2386톤)을 제외할 경우 대한항공의 항공 화물 점유율은 33.7%로 낮아지며 독점 우려도 줄어든다. 대한항공은 아시아나항공 화물사업부 매각 등 내용을 담은 시정조치안을 유럽 경쟁 당국에 제출해 독점 우려를 불식시켰다.
유럽 경쟁당국의 합병 승인 가능성이 커지자 앞으로 미국과 일본 경쟁당국의 합병 승인 여부가 중요한 과제로 떠올랐다. 항공업계에 따르면 미국과 일본 역시 유럽과 비슷하게 독점 가능성을 우려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아시아나항공 화물사업부 매각 방침이 정해지면서 미국과 일본에서도 화물 독점에 따른 합병 승인 지연 가능성도 함께 낮아질 것으로 보인다.
다만 여객 분야에서 독점 가능성이 우려되고 있다. 일본은 독점 우려가 낮지만 미주 노선이 독점에 관련해 문제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일본은 가까운 데다 국내 저가항공사(LCC)들도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는 시장이다. 항공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1월부터 11월까지 일본 노선 승객 1572만3568명 중 점유율 1위는
제주항공(089590)으로 점유율은 20.3%를 기록했다. 시장 1위의 점유율이 20% 수준에 불과해 독점 우려도 낮다.
반면 미국의 경우 상황이 다르다. 인천공항 기준 장거리 노선이기 때문에 국적 항공사 중 경쟁자가 1곳에 불과하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외에 경쟁자는 에어프레미아뿐이다. 에어프레미아는 지난해 기준 항공기 5대를 보유하고 있다. 이에 항공기 운용 규모가 작아 향후 대한항공 합병 이후 미주 노선에서 제대로 경쟁하기 어렵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항공업계에 따르면 뉴욕, 로스앤젤레스(LA), 시애틀, 샌프란시스코, 호놀룰루가 미국 경쟁당국(미국 법무부)의 독점 우려 대상 노선이다. 이 중 대한항공과 에어프레미아가 공통적으로 취항하는 노선은 뉴욕, LA, 호놀룰루다. 지난해 3분기까지 LA 노선 승객수는 56만명 수준으로 파악된다. 이 중 에어프레미아의 여객수가 13만명 수준으로 점유율은 24%를 기록했다. 그 외 점유율 76%는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통합 점유율로 해석된다.
두 회사가 합병될 경우 미국 경쟁당국의 여객 독점 가능성이 제기될 수 있는 부분이다. 이는 공정위 자료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2022년 두 회사 기업결합을 승인한 공정위 자료에 따르면 호놀룰루 노선의 두 회사 점유율은 78.3%, 샌프란시스코 노선 점유율은 79.4%로 경쟁제한 노선으로 언급됐다. 항공업계 일각에서는 공정위 승인 당시는 에어프레미아 취항전이라 지금은 경쟁제한 우려가 덜하다는 반론도 나오고 있다.
미주노선 여객 독점 우려 덜어낼 핵심
항공업계에 따르면 대한항공은 미국 노선의 독점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해 에어프레미아와 손잡을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에어프레미아가 미국 등 장거리 노선에 집중하고 있는 데다 장거리용 항공기를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적절하다는 평가다. 대한항공은 미주 노선 점유율을 낮추기 위해 에어프레미아에 노선뿐 아니라 항공기와 인력까지 넘기는 방안을 검토 중에 있다. 이를 통해 에어프레미아의 장거리 수송 능력을 빠르게 끌어올려 미국 경쟁당국의 독점 우려를 불식시킬 경쟁 상대로 키우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이에 에어프레미아가 앞으로 얼마나 항공기 운용 규모를 늘리는지가 대한항공의 합병에 있어 핵심이 될 것으로 보인다. 에어프레미아가 미주 노선에서 대한항공의 독점 우려를 불식시켜줄 정도로 성장해야 미국 경쟁당국의 합병 승인도 원활하게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에어프레미아도 자체적으로 항공기 규모 확대에 나선다. 에어프레미아는 올해 중장거리 항공기인 B787-9 4대를 도입한다는 계획이다. 항공기 도입이 예정대로 될 경우 에어프레미아의 항공기 운용 규모는 올해 9대, 2027년 15대, 2030년 20대로 늘어날 전망이다. 에어프레미아가 미국, 유럽 등 장거리 노선에 집중하는 전략을 통해 회사를 키우고 있기 때문에 향후 도입되는 항공기들도 대부분 장거리 노선에 투입될 것으로 보인다. 항공기 운용대수가 빠르게 늘어날수록 에어프레미아의 경쟁력도 강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항공업계에 따르면 5대의 항공기로는 정비, 지연 등에 대처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다만, 현재 대한항공이 에어프레미아와 구체적으로 어떻게 손을 잡을지에 대해서는 알려진 게 없다. 유럽 경쟁당국이 합병을 최종 승인한 이후 미국, 일본 경쟁당국으로 단계가 넘어간 이후에 개괄적인 윤곽이 잡힐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 경쟁당국은 지난해 자국 LCC 제트블루와 스피릿항공의 합병을 저지하기 위해 소송을 제기하기도 했다. 이에 관련 업계에서는 미국 경쟁당국이 소송이라는 최악의 카드를 꺼내기 전 대한항공이 서둘러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말도 나오고 있다.
대한항공 측은 <IB토마토>와의 통화에서 “(미국 경쟁당국의) 중복 노선 지적에 대해 미국 경쟁당국과 협의 중”이라 밝혔다. 이어 미국 경쟁당국의 소송 가능성에 대해 “미국은 항공 자유화 국가이기 때문에 이러한 점도 고려될 가능성도 있다”라고 말했다.
정준우 기자 jwjung@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