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철강업계도 전 세계적인 고금리 물결을 피할 수 없다. 10년간 이어져온 저금리 시대가 저물면서 기업들은 주머니를 닫고 있다. 기업들이 주머니를 닫으면서 철강업계도 매출 감소에 직면했다. 2021년과 2022년 상반기까지 역대급 호황을 맞았던 철강업계는 고금리에 따른 수요 급감에 공급과잉으로 전환되고 있다. 게다가 중국과 일본산 철강은 저가 철강을 찾는 국내 수요에 국내에서 세를 불리면서 한국 철강사들은 큰 도전에 직면했다. 이에 급변한 한국 철강시장의 상황을 짚어 보고 철강업계의 생존방법을 탐구해 본다.(편집자주)
[IB토마토 정준우 기자] 올해 들어 한국 철강시장에서 공급과잉 현상이 심화하고 있다. 고금리 현상이 지속되면서 기업들은 비용 절감을 위해 철강 소비를 크게 줄이고 있다. 반면, 철강업계는 지난 2년간 역대급 호황에 늘린 생산량을 줄이지 못하고 있다. 여기에 중국과 일본산 철강이 가격 경쟁력을 바탕으로 국내 철강 시장을 공략하면서 공급과잉 현상은 더욱 심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철강 생산 장면. 기사 내용과 무관함. (사진=포스코)
국내 철강 수요 감소에 따른 과잉공급
최근 국내 철강 수요가 감소하면서 재고량이 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 자동차, 건축자재, 가전 등 냉연강판의 원료가 되는 열연강판 재고량은 산업 전반의 수요를 가늠해 볼 수 있는 지표로 작용한다.
한국철강협회에 따르면 올해 1월부터 열연강판 재고량은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올해 1월 국내 열연강판 재고량은 63만5천톤을 기록했다. 3월부터 본격 증가세로 돌아선 열연강판 재고량은 지난 8월 81만4천톤으로 28.2% 증가했다.
가전, 자동차 등에 직접 출하되는 냉연강판 재고량도 증가세를 보이는 것은 마찬가지다. 지난 1월 국내 냉연강판 재고량은 59만2천톤으로 집계됐지만 증감을 거듭하며 지난 8월 68만4천톤으로 15.5% 증가했다.
국내 철강 제품 재고가 늘어나는 가장 큰 원인으로 전방산업 부진이 꼽힌다. 제품이 팔리지 않으니 철강 구매량도 줄어들면서 철강 재고가 쌓이는 것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올해 1월부터 8월까지 가전제품 누계 판매액은 3조853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판매액보다 6.4%나 줄었다.
반면, 철강 제품 생산은 지난해보다 전반적으로 성장세를 보였다. 열연강판 생산은 올해 1월부터 8월까지 증가 추세를 보이고 있다. 지난 1월 309만톤이었던 열연강판 생산은 지난 8월 324만2천톤으로 4.9% 증가했다. 냉연강판 또한 1월 73만7천톤에서 8월 78만9천톤으로 생산량이 7% 증가했다. 철강업계에서는 올해 수요가 줄어도 생산량을 줄이기 어렵다고 말한다. 포스코,
현대제철(004020) 등 고로를 가동하는 철강사들은 고로가 쉴 새 없이 돌아야 하기 때문에 감산을 쉽게 결정하지 못하고 있다.
철강업계에서는 올해 철강 경기를 ‘상저하고’로 전망했다. 상반기에는 생산과 수요가 침체를 겪지만, 하반기부터는 둘 다 회복세를 보일 것을 전망됐다. 그러나 예상보다 중국 경기가 쉽게 회복되지 못하면서 하반기 생산 및 판매 상황이 더 좋지 못한 상황이다. 고로 및 전기로 가동 문제로 쉽사리 생산량을 줄이지 못하는 가운데 경기 위축에 따른 수요 감소로 하반기 상황도 좋지 않다. 이에 업계 일각에서는 ‘상저하저’라는 말도 언급되고 있을 정도다.
중국과 일본의 한국 철강 시장 공략···공급과잉 심화
국내 철강 수요가 줄어들고 있지만, 보다 저렴한 철강을 찾는 움직임은 커지고 있다. 기업들의 비용 부담이 커지면서 가격 경쟁력을 갖춘 철강 제품에 대한 수요가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중국산 철강의 공세가 거세다. 중국산 철강은 석탄 발전으로 생산되기 때문에 가격 경쟁력이 높다. 이미 조선 등 철강 수요가 많은 산업에서는 중국산 철강 수입을 대폭 늘려 비용을 절감하고 있다.
올해 1월부터 9월까지 국내로 수입된 중국산 후판 물량은 82만1천톤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수입량(47만9천톤)보다 71.4% 증가했다. 반면 국산 후판 판매량은 줄어들고 있다. 올해 1분기 162만3천톤이었던 국산 후판 판매량은 2분기 161만톤으로 줄었다.
중국이 한국으로 철강 수출을 늘리는 이유는 자국 경기 침체가 지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2021년 말부터 헝다사태로부터 불거진 중국 부동산 시장의 위기가 심화되고 있다. 부동산 산업은 철강 최대 수요처로 전체 철강 수요의 40%가량을 차지하고 있다. 중국 국가통계국에 따르면 올해 1월부터 9월까지 중국 부동산 산업 투자액은 총 872억6919만 위안(한화 약 16조811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003억5585만 위안, 한화 약 19조827억원)보다 13% 줄었다.
반대로 중국 철강산업은 시장 위축을 우려해 생산 확대를 강행하고 있다. 올해 1월부터 9월까지 중국 조강 생산량은 10억2887만톤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0억585만톤)보다 생산량을 2.3% 늘었다.
자국 내 철강 수요는 줄어들고 생산은 늘어나면서 중국산 철강은 수출로 방향을 틀었다. 내수 수요 감소분을 수출로 메꾸겠다는 계산이다. 이에 지리적으로 가까운 한국으로 중국산 철강 수출이 크게 늘어나고 있다. 철강업계에 따르면 올해 1월부터 9월까지 중국산 철강 수입량은 665만3천톤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같은 기간(494만5천톤)보다 34.5% 증가한 수입량이다.
중국 철강사들은 한국으로의 수출 가격을 인하하며 공세를 한층 강화하고 있다. 철강업계에 따르면 일부 중국 철강사는 9월부터 품질이 가장 좋은 1급 철강 가격을 한 단계 아래 품질인 2급 철강 가격 수준으로 인하해 한국 시장 공략을 강화하고 있다. 해당 중국 철강사가 판매하는 냉연강판 가격은 지난 9월 톤당 660달러에서 650달러로 인하됐다.
일본산 철강도 올해 들어 수입량이 늘어나고 있다. 통상 일본 철강 산업은 내수 중심으로 시장이 형성돼 있기 때문에 국내 철강 시장에 미치는 영향이 크지 않았지만, 올해 역대급 엔저 현상이 나타나며 국내 유입이 가속화되고 있다. 30일 외환시장에 따르면 원·엔 환율은 902.04원으로 2021년 이래로 가장 낮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엔화 가치가 2021년 이래로 지속적으로 낮아지면서 그에 비례해 일본산 철강 수입량은 늘어나고 있다.
한국철강협회에 따르면 올해 1월부터 9월까지 일본산 철강 수입량은 434만9천톤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403만톤) 대비 7.9% 증가했다. 엔화 환율이 내려갈수록 일본산 철강 수입량은 늘어나는 현상이 관측되고 있다. 철강업계에 따르면 일본 철강업계는 거래처를 쉽게 확대하지 않지만 현재 역대급 엔저 현상에 한국으로 수출을 늘리기 위해 거래처 확대에 힘쓰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중국과 일본 두 나라에서 철강 수입이 늘면서 국내 철강 시장에서 두 나라가 차지하는 점유율도 늘어나고 있다. 올해 상반기 수입산을 포함한 국내 전체 철강 시장 규모는 4197만3천톤이다. 여기서 중국산과 일본산 철강이 차지하는 비중은 각각 11.1%, 일본산이 7.2%를 기록했다. 지난해 상반기 두 나라의 점유율 8.2%, 6.7%보다 모두 성장한 것으로 나타났다.
철강업계 관계자는 <IB토마토>와의 통화에서 “올해 상반기와 하반기에 걸쳐 중국산 및 일본산 철강 수입이 크게 늘어나고 있고, 현재 한국에 지사를 설립한 중국 철강사들 중심으로 수입이 늘어나고 있다”라며 “다만 세계 최대 철강사인 중국 바오우철강은 가격적이 비싸 국내 시장 진출을 가속화하지 않고 있는 상황”이라 설명했다.
정준우 기자 jwjung@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