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B토마토 이하영 기자]
SK이노베이션(096770)(SK이노) 배터리 자회사 SK온이 최근 튀르키예 합작공장 계약파기로 성장성에 의문이 제기됐다. 반면, 일각에서는 SK온이 이번 계약파기를 수율 상승 등 내실을 키울 수 있는 계기로 삼는다면 오히려 전화위복이 될 수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사진=SK온)
3일 배터리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3월부터 SK온이 미국 완성차업체 포드, 튀르키예 최대 기업 코치와 함께 추진하던 45기가와트시(GWh) 규모 배터리 합작공장이
LG에너지솔루션(373220)(LG엔솔)에 넘어갔다. LG엔솔은 지난달 22일 포드, 코치와 튀르키예 배터리 공장 설립과 관련해 3자합작 업무협약(MOU) 체결을 공식 발표했다. 이에 SK온의 성장성을 놓고 업계 평가가 갈리고 있다.
먼저 SK온의 성장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측은 투자금 조달을 가장 큰 문제로 손꼽는다. 블룸버그 등 미국 주요언론 보도에 따르면 3자합작 파기의 주된 이유가 SK온의 미흡한 투자비 조달에 있기 때문이다. 배터리업계 투자는 대부분 수주를 받고 공장을 증설하는 ‘선수주 후증설’ 방식으로 진행된다. 배터리사 입장에서는 물량 확보 후 공장을 건설하는 셈으로 신·증설 부담이 덜하다. 다만 배터리사는 초기에 막대한 공장 건설 비용을 감당해야 한다는 자금 부담이 있다. SK온이 이 자금을 마련하지 못해 3자합작 공장을 짓지 못한 셈이니 성장성이 의심된다는 논리다.
실제 SK온은 지난해 투자금 유치에 어려움을 겪었다. 회사는 지난해 초부터 상장 전 투자유치(프리IPO)를 통해 최대 4조원의 자금조달을 목표로 했으나, 기업가치 이견과 경기침체 등으로 2조8000억원을 모으는 데 그쳤다. 같은 해 LG엔솔이 기업공개(IPO)로 12조7500억원에 달하는 투자 재원을 마련한 것과 비견된다. LG엔솔은 IPO 당시 생산능력 확대를 위해서만 8조8450억원을 투자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또 다른 문제로는 낮은 공장 수율(생산제품 중 정상제품 비율)이 지적된다. 수율이 높아야 폐기율도 줄고, 재생산에 드는 원자재와 인건비 등도 줄어드는데 SK온은 타사에 비해 상대적으로 수율이 낮다는 평가다. 업계에 따르면 LG엔솔과 삼성SDI의 평균 수율은 90~95% 수준이다. SK온의 평균 공장 수율은 이보다 10~25% 낮은 70~80% 수준이다. 타사보다 수율이 낮은 만큼 배터리 제작에 더 많은 비용이 소요될 수밖에 없다.
이에 대해 SK온 관계자는 “프리 IPO외에도 투자 재원은 다양한 방법으로 마련하고 있다”며 “영업 본격화에 따른 현금흐름 창출, 투자하는 국가의 인센티브 및 정책금융, 국내외 공적수출신용기관 ECA를 통한 20억불 파이낸싱, 합작을 통한 파트너사의 분담 등이 있다”고 말했다. 또 “외부시각과 달리 현재 전체 평균 수율이 90%를 넘는다”고 덧붙였다.
(사진=SK이노베이션)
배터리업계 일각에서는 이번 MOU 파기가 SK온에 약이 될 수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MOU 파기로 투자비 부담을 덜어 자금조달과 인력 수급에 보다 여유가 생겼다는 계산이다. SK온은 전 세계에 속도감 있는 배터리 공장 확대로 사업 초기 선점 효과를 노려왔다. 그 결과 2016년 1.7GWh에 불과하던 생산능력을 지난해 연말까지 77GWh로 끌어올렸다. SK온은 생산능력을 2025년 220GWh, 2030년 500GWh까지 확대하겠다는 목표다. 향후 7년간 6배 이상 생산능력을 빠르게 증가시킨다는 계획이다.
SK온은 이미 급격한 투자 계획을 세운 상태다. 올해 모회사인 SK이노가 7조원 상당을 더 투자하기로 했고, 프리IPO로 1조~2조원 규모를 더 모집할 것으로 예상된다. SK온은 총 투자예정 금액인 23조원 중 올 초 미국 내에서 진행하는 블루오벌SK(약 2조원) 투자를 더해 11조원을 투입했다. 2030년까지 12조원을 더 투입해야 한다는 계산이다. 여기에는 튀르키예 건은 포함되지 않았다. 배터리업계에 따르면 생산공장 10GWh당 건설 비용이 3조원 규모다. 만약 3자합작 공장을 건설했다면 4조5000억원가량이 더 필요했을 것이란 예상이 나온다.
무엇보다 공장 증설 속도를 늦추며 수율을 끌어올린다면 빠른 흑자전환을 노릴 수 있다는 전망이다. SK온의 흑자전환이 어려웠던 1순위로 지목됐던 것이 바로 수율 저하로 인한 비용 지출이기 때문이다. 가파른 생산능력 확대로 동반상승한 고정원가는 SK온의 실적을 갉아먹는 주요 원인으로 지목된다.
SK온 실적을 보면 고정원가 영향력이 뚜렷하다. SK이노는 최근 2022년 잠정실적 발표에서 SK온의 연간매출액이 7조6000억원으로 전년(3조398억원) 대비 150% 증가했다고 밝혔다. 매출액은 늘었지만 동기간 영업손실도 2021년(6831억원) 대비 45.1% 증가한 9913억원을 기록했다. SK이노는 영업손실 확대 이유로 신규 생산시설 확장에 따른 고정비 증가를 손꼽았다.
최근 SK온 실적이 해외공장 상업가동 시기와 맞물려 널뛰는 것으로도 짐작할 수 있다. SK온은 2021년 1분기 중국의 EUE JV, SKOJ JV 1·2동 등 3개 공장의 상업가동 시작 분기 당시 매출 3분의 1 규모의 영업손실이 발생했다. 지난해 1분기 헝가리 2공장과 미국 1공장 상업가동에 앞서서도 마찬가지다. SK온에 따르면 2021년 4분기부터 지난해 1분기까지 공장 초기 가동 고정비 부담과 연구개발비 등의 증가로 영업손실이 2분기에 걸쳐 6000억원 규모로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SK온 관계자는 “(튀르키예 3자합작 무산은) 선택과 집중을 통한 전략적 투자 재분배”라며 “현재 신설 공장들도 램프업(생산능력 증가) 기간이 지나며 숙련도가 올라갈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말 기준 SK온의 수주물량은 290조원 규모다. 현대차·기아·포드 등을 고객사로 두고 있으며, 지난해 실적 발표에서 2024년을 영업이익 흑자전환 목표로 내걸었다.
이하영 기자 greenbooks7@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