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B토마토 김태호 기자] 시스템 반도체 디자인하우스 에이디테크놀로지(ADT)가 거액의 유상증자를 통해 삼성전자 파운드리 사업부와의 거래를 본격화하고 있다. 삼성전자와의 협력을 위해 10년간 지속된 세계 최대 규모 파운드리 업체 TSMC의 우수협력사 자리를 내려놓은 만큼, 일각에서는 ADT의 매출 감소도 우려하고 있다. 그러나 회사 측은 당장의 매출감소가 없을 것으로 확신하고 있다.
21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에 따르면 코스닥 상장사
에이디테크놀로지(200710)는 587억원 규모의 주주배정 후 실권주 유상증자를 단행한다. 인수단은 한국투자증권과 신한금융투자다.
업계는
삼성전자(005930) 파운드리 사업부와의 거래 신호탄이 쏘아 올려진 것으로 풀이하고 있다. 일단 에이디테크놀로지(ADT)는 조달자금 중 100억원을 삼성전자 파운드리의 디자인 협력사인 에스엔에스테크놀로지(SNST) 지분 인수에 투입할 예정이다. ADT는 SNST 등의 지분 인수를 위해 은행으로부터 빌렸던 차입금을 유증대금으로 상환할 예정이다.
ADT는 올해 6월까지 SNST의 지분 62%를 40억원에 단독 인수하는 주식인수합의서를 작성한 상태다. 잔여 지분 매입도 계획하고 있다. 더불어 ADT는 올해 3월에 삼성전자의 디자인솔루션파트너(DSP), 즉 일종의 우수협력사인 시스템 반도체 레지스터 전송레벨(RTL) 설계 전문업체 ‘이글램’ 지분 100%도 30억원에 인수한 바 있다.
ADT는 일명 ‘디자인 하우스’로 일컬어진다. 디자인 하우스는 종합반도체회사(IDM)·팹리스(Fabless) 등 발주업체와 파운드리(Foundry)의 가교 역할을 하면서 매출을 낸다. 발주처로부터 받은 반도체 설계를 파운드리에 적합하게 최적화한 다음 생산을 의뢰하고, 이후 완제품을 받아 납품하는 구조다.
IDM과 파운드리 업체는 디자인 하우스를 활용해 주문형 반도체(ASIC) 등에 대한 생산효율성을 높일 수 있다. 특히 파운드리 업체는 영업적 측면에서 디자인하우스를 섭외할 필요도 있다. 발주물량을 가져오기 때문이다.
본래 ADT는 파운드리 업체로 대만의 TSMC만 이용해왔다. ADT는 지난 2009년부터 TSMC의 공식거래처, 즉 ‘가치사슬협력자(VCA)’로 있어왔다. 그러나 ADT는 지난해 말 TSMC와의 VCA 계약을 전면 해지했다. 10년가량 이어 온 세계 최대 규모 파운드리의 1티어급 협력사 지위를 스스로 내려놓은 셈이다.
업계는 삼성전자의 파운드리 사업이 본격화됐기 때문으로 보고 있다. 일단 ADT는 삼성전자와의 거래를 표면적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다만 ADT는 VCA 계약해지 사유로 “복수의 파운드리를 이용하기 위함”이라며 “국내 파운드리사와의 협력 파트너 관계 협의 진행 중”이라고 밝힌 바 있다. TSMC와의 관계를 대체할 수 있는 국내 파운드리사는 사실상 삼성전자가 유일하므로, 업계는 ADT-삼성전자와의 거래를 기정사실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에이디테크놀로지 홍보용 사진. 사진/ADT
일각에서는 삼성전자와의 협력으로 ADT 매출이 급감할 것이라는 전망도 내고 있다. TSMC 파운드리를 주로 이용하는
SK하이닉스(000660)와의 거래가 대폭 줄어들 것이라는 우려에서다. ADT의 지난해 연결기준 매출액의 약 87%는 SK하이닉스로부터 나왔다.
ADT는 이 같은 우려를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설명한다. VCA 계약이 체결된 디자인하우스는 통상적으로 TSMC로부터 미세공정 기술이전을 받아 선제적으로 사업을 진행하게 되는데, 현재 매출을 내는 물량은 이미 기술이전 등을 받아놓았기 때문에 금번 VCA 해지와는 별도로 취급해야 한다는 의미다.
오히려 ADT는 업황 개선 등으로 발주량이 증가해 매출도 단기적으로 늘어날 것으로 보고 있다. 실제 ADT는 금번 유상증자 대금 중 287억원을 원재료 매입 등 운영자금으로 사용할 예정이다. 통상 디자인하우스의 발주-완제품 납품 기간은 4개월가량 걸리는데, 디자인하우스는 그 사이에 파운드리 등에 원재료 대금을 선제 지급해야 하므로 두둑한 운전자금을 확보할 필요가 있다. ADT의 영업활동현금흐름과 재고자산의 변동성이 큰 이유이기도 하다.
ADT 관계자는 “현재 주 거래처의 양산은 올해에서 내년까지 계약상으로 이어지는 데다가 매출로 보면 작년보다 증가하는 추세”라며 “미세공정 기술 이전을 받지 못하게 되는 1~2년 후에는 TSMC와의 거래가 어려울 수 있지만 그때가 되면 대신에 국내 파운드리 업체로부터 기술이전을 받게 되므로 TSMC 관련 실적 감소는 결과적으로 상쇄될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증권업계는 삼성전자와의 거래가 이미 본격화됐다고 보고 있다. ADT 매출이 더욱 증가할 수 있다는 의미다. 실제 ADT도 “신규 양산 프로젝트 추가를 고려하면 올해 10월 이후부터 현재 예상하는 수준보다 큰 규모의 웨이퍼(Wafer) 매입이 필요할 가능성이 높다”라고 전망하고 있다.
최영산 이베스트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이미 국내 최대 파운드리 개발매출 인식이 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면서 “해당 매출 반영과 NAND 업황 변동성을 감안해 보수적으로 올해 ADT의 연 매출액을 3000억원 수준으로 추정한다”라고 분석했다.
김태호 기자 oldcokewaver@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