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특례상장 요건 강화로 바이오 VC들 회수 어려워져투자 심사역 전문성 강화해야…대형 제약회사 SI들과 협업도 필요스타트업, 사업 초기부터 상업화 고민해야…IR 강화로 해외 투자 유치 강조
[IB토마토 홍인택 기자] 고금리 환경과 불확실성 확대로 바이오 스타트업에 투자한 벤처캐피탈(VC)들이 고전하고 있다. 특히 국내에서는 바이오 업체들이 자금 조달 루트로 사용했던 기술특례상장제도 요건이 강화됨에 따라 기업공개(IPO) 장벽이 높아졌다. VC들은 자금회수 대신 지분 매각까지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강화된 기술특례상장 요건에는 회사가 기존에 보유하고 있는 파이프라인(연구개발(R&D) 중인 신약개발 프로젝트)에 대한 라이선스아웃(L/O;기술·지식 재산권이 들어간 상품의 생산과 판매를 타사에 허가해 주는 것) 실적을 증명해야 하는 요건이 생겼다. 즉, 바이오 벤처가 매출을 일으켜야 한다는 의미다.
바이오 시장 자체가 얼어붙은 가운데 국내 유망 벤처·스타트업과 투자자를 잇는 시도는 계속 이어지고 있다. 최근 바이오테크를 주제로 오픈 이노베이션 플랫폼 '모닝피치 아시아'를 개최한 딜로이트 안진이 대표적이다.
이해섭 딜로이트 안진 파트너는 VC들의 투자 심사역의 전문성 강화를 강조하면서도 대형 제약회사들로 대표되는 전략적 투자자(SI)들과의 협업 등 다양한 전략을 제시하고 있다. 스타트업들도 사업 초기부터 상업화를 고민해야 하고, IR을 강화해 라이선스인(L/I; 기술도입)을 원하는 해외 투자자들을 노리거나 시너지를 창출할 수 있는 인수·합병(M&A)도 고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이해섭 딜로이트 안진 파트너와의 일문일답이다.
딜로이트 안진 이해섭 파트너 (사진=딜로이트 안진회계법인)
-딜로이트 안진에서 맡고 있는 업무에 대한 소개를 부탁한다.
△딜로이트 코리아 그룹의 생명과학과 헬스케어 리더를 맡고 있다. 재무자문본부에서 기업 금융 자문 담당 파트너로 일하고 있다. 6월1일부터 재무자문본부의 전략책임자(CSO)로도 겸직하게 됐다.
-최근 바이오 관련 VC시장 자금조달과 투자회수가 어렵다는 이야기가 많은데, 최근 시장 동향에 대한 견해가 궁금하다.
△기술특례상장 요건이 강화되면서 VC입장에서는 포트폴리오 자금회수가 굉장히 어려워졌다. 신규 투자도 예전만큼 활발하지 않다. 앞으로 임상에 대한 결과와 실제 상업화에 대한 가시성이 확보되지 않은 신약 개발 회사에 대해서는 계속 투자가 어려울 것이다.
두 가지 양상이 나타날 것으로 보인다. 어느 정도 L/O를 통한 상업적인 성과를 낼 수 있는 회사들을 중심으로 선별해서 투자가 이루어지거나 과거 개발 경험을 갖춘 기술진이 있는 회사 중심으로 투자가 집중화될 것이다.
미주 시장과 비교했을 때 국내는 구주를 판매할 수 있는 세컨더리펀드 시장 활성이 부족하다. 패밀리 오피스와 같이 구주를 받아갈 수 있는 주체들이 많지 않기 때문에 VC로서는 회수를 위한 경로가 제한적일 수 있다.
-세컨더리펀드 시장 활성화를 위한 방안은 무엇인가?
△단기적으로 해결하긴 어렵다. 새롭게 기술특례상장에 대한 요건이 나왔으니 요건에 맞춰서 스타트업들이 준비해야 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L/O 활성화와 상업화 단계를 축소시킬 수 있는 방안에 대한 고민을 스타트업들이 치열하게 할 필요가 있다.
L/O도 국내는 제한적일 것이다. 해외 시장을 공략할 필요가 있는데 아무래도 스타트업들이 해외 시장의 기회를 감지하는 능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딜로이트는 스타트업들의 요구를 어떻게 도와줄 것인지에 대한 방법을 고민하고 있다. 해외 SI들에게 경쟁력 있는 가격으로 국내 스타트업들로부터 L/I를 확보할 수 있는 기회를 알리는 방법도 강구하고 있다.
-바이오 VC가 유독 부진한 이유는 무엇인가?
△매크로 요인으로 불확실성이 확대됐고, 상장 요건이 강화가 되다 보니까 회수 기간이 일반 스타트업들에 비해서 늘어날 수밖에 없다. 결국 스타트업 중에서 어떤 파이프라인을 가지고 연구하고 있는지, 상업화 시 잠재적 수익성이 최대 얼마나 되는지, 개발 기간과 투입될 자금이 어느 정도 규모인지 세밀하게 예측해야 한다.
투자 심사역들의 역량도 중요하다. 각 VC에 있는 투자 심사역들이 시장에 대한 전문성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제약회사들과 같은 SI들과 함께 투자를 하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다. 과거에는 제약회사들이 유한책임출자자(LP)로 참여를 했었는데 최근에는 직접 투자하는 방법도 많이 모색하고 있다. 일부 대형 제약사에서 CVC도 출범했기 때문에 그들의 움직임을 VC들도 지켜볼 필요가 있다.
딜로이트 안진 이해섭 파트너 (사진=딜로이트 안진회계법인)
-바이오 업체들의 부진이 이어지고 있는데 투자자 유치나 매칭 서비스에 어려움은 없는가?
△지속적으로 어려움이 있을 것이다. 다만, 코로나19를 통해 수익을 창출한 진단업체, 항생제 파이프라인을 확보한 업체, CDMO 회사들처럼 현금 여력이 있는 회사들이 투자처를 모니터링하고 있는 상황이다. 과거에 VC 중심의 투자가 이루어졌다고 하면 지금은 SI들 중심으로 투자 기회를 찾아보는 게 유효할 것으로 생각한다.
-옥석 가리기 과정이 중요할 것 같은데, 유망 스타트업 발굴 기준이 궁금하다.
△개발하려는 신약 시장 규모와 잠재적인 경쟁자가 누가 있는지, 경쟁자는 어느 단계까지 개발을 진행했는지, 대상 회사는 경쟁구도에서 어느 정도 지위에 있는지, 개발 진도는 어디까지 진행했는지를 더 깊게 보고 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신약 개발 성공 여부와 당초 계획했던 효능이 나올 수 있는 제품인지 판단하는 부분은 굉장히 어렵다. 바이오 산업 기술 평가를 할 수 있는 외부 기관들과 협력할 필요성도 있다. 딜로이트 생명과학 조직에서는 기술실사(TDD) 최근에 많이 하고 있다.
-그동안 경험했던 자문 중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크로스보더 자문을 많이 하고 있다. 일본 줄기세포 시약 관련 기업이었는데 아시아 전체 시장을 타깃으로 시작하는 스타트업이었다. 단순 투자 유치뿐만 아니라 사업 개발 측면에서도 지원해 줬으면 좋겠다는 요구가 있었다. 고객이 현금 여유가 있었기 때문에 사업 개발을 하면서 해외 유통망을 구축했다. 밸류에이션을 극대화 시켜서 목표치보다 더 높은 밸류에서 투자를 받을 수 있게 해줬던 사례가 있다. 단순하게 투자 유치에 기여한 게 아니라 회사의 성장과 고객이 원하는 목표치를 달성하는 과정을 설계해주고 참여했다는 점에 의미를 두고 있다.
-최근 개최했던 모닝피치에서 어떤 성과, 혹은 가능성이 보였는지 궁금하다.
△대기업들과 스타트업의 교류를 위해 개최했다. 회사별로 투자 유치, 파트너십, 판매 채널 확보, 조인트벤처(JV), 해외 진출 등 다양한 요구가 있었다. 오픈 이노베이션을 위해 만들어진 플랫폼이다. 딜로이트를 구심점으로 국내 스타트업들을 아태지역 투자자들과 대기업들에게 노출시키자는 취지로 개최했다.
스타트업들의 만족도도 높았고 한국 기업에 관심을 갖고 있었던 해외기업들로부터도 좋은 반응을 이끌어냈다. 후속 지원도 하고 있다.
-바이오텍 VC를 비롯한 전체 VC의 전망은 어떻게 보고 있나?
△당분간은 어려울 것이다. 어려운 시기를 겪고 지금은 실제 수익을 창출하고 있는 회사들이 스타트업들을 가장 잘 이해하고 있다. 그들로부터의 투자 유치나 협력을 생각할 필요가 있다. IPO 전 단계에서 이미 상각 전 이익(EBITDA)이 플러스로 전환되거나 실제 순수익을 창출하고 있는 회사들도 많이 있다. 그런 회사들은 새로운 성장 동력을 이어가는 차원의 투자 기회를 분명히 찾고 있다.
또 모태펀드가 조금 줄어든 상황에서 해외 투자유 기회도 봐야 할 것이다. 국내 스타트업들은 해외 투자자를 대상으로 하는 IR이 취약하다. 사업에 대한 준비와 사업 모델, 실제 R&D 역량은 아시아 평균에서 상당히 높은 수준이라고 생각하지만, 본인들의 역량과 사업성과를 표현해내는 능력은 해외 기업들과 비교했을 때 부족한 편이다. 회사를 투자자들의 입장에서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에 대한 고민이 치열해져야 한다. 시장이 어렵기 때문에 이제는 투자자들을 찾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상업화에 대한 고민도 초반부터 이루어져야 한다. R&D 기간을 오랫동안 이어가면서 투자금을 시리즈에 따라 축적하는 이상적인 구조가 지속가능할지에 대한 의구심을 가져야 한다. L/O에 대한 청사진을 치열하게 고민해야 할 때다.
우리나라는 스타트업들 간의 M&A가 굉장히 적은 편이다. 파이프라인 간의 호환성을 바탕으로 시너지 창출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AI 회사들과 신약을 개발하는 협업도 고민할 필요가 있다.
홍인택 기자 intaekd@etomato.com